파키스탄의 허구적 국민투표에서 무샤라프가 대통령으로 승인받다
[세계사회주의웹사이트], 2002/05/07, 빌라니 페이리스
파키스탄 당국은 지난주 국민투표에서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이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압도적으로 승인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결과는 어느 누구도 놀라게 하지 않았으며, 1999년 10월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독재자를 더욱 신뢰할 수 없게 하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속임수였다.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장에 따르면, 6천3백만 유권자의 70%인 4천 4백만 명이 4월 30일 국민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36%를 밑돌았던 지난 1997년 총선 투표자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이다.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 97.7%가 무샤라프에 "찬성" 표를 던졌다고 위원장은 주장했다.
주요 정당들은 유권자들에게 투표를 보이콧할 것을 호소했고, 국민투표 결과는 사기라고 비난했다. 그들의 추산에 따르면, 유권자의 5∼10% 정도가 투표했다고 한다. 쫓겨난 수상 나와즈 샤리프가 이끄는 파키스탄이슬람연합(PML)의 대변인 사파르 알리샤는 "파키스탄에서 투표자가 36%를 넘은 적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투표 결과는 "완전한 사기"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인민당(PPP) 대변인 라지 라바니는 "무샤라프는 연임할 도덕적·정치적 권위 가 없으며 즉각 물러나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HRCP) 의장인 아프라시압 카탁은 "민중들은 민주주의 부활로 가는 길에 던져진 불길한 그림자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경고했다. 그의 단체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을 투표하게 강요한 방식과 선거 과정에서의 악명 높은 각종 부정은 민주적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를 면목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새벽, 네이션, 뉴스와 같은 유명한 신문들 모두가 국민투표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 삼았다. 네이션은 "이번 국민투표는 지아(1988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군부 출신의 전(前) 대통령. 그는 1977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984년 국민투표를 통해 5년 간 집권기간을 연장했다 -옮긴이) 시절에 진행되었던 것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前) 독재자 지아 울 하크에 대한 언급은 예리한 지적이다. 1984년 지아는 국민투표를 치뤄 그의 집권을 합법화시키려 했다. 유권자의 5%만이 투표에 참여했지만, 그 정권은 절대 다수가 찬성했다고 선언했다.
지아처럼, 무샤라프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있는 그의 정치적 국면에 힘을 주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9.11 이후, 그는 워싱턴의 강력한 압력 속에서 탈레반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의 대(對)아프간 전쟁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정으로 무샤라프는 과거 자신이 의존해왔던 군과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와 단절했다.
지난주 투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뒤에서 조정된 것이었다. 무샤라프는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확고히 하기 위해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무샤라프 장군이 민주주의 재건에 전념할 사람이자 개혁과 "분파주의·극단주의의 제거"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엄청난 선전 캠페인에 수백만 루피(파키스탄 화폐단위-옮긴이)가 투입됐다. 투표 용지에도 똑같은 메시지가 드러났는데, "찬성" 칸이 이슬람과 파키스탄 국기의 색깔인 녹색으로 되어 있었다.
보이콧에 대응하고 투표자 수를 늘리기 위해 투표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춰졌고 투표소 수는 거의 87,00개에 달하도록 10배나 늘어났다. 이코노미스트는 "가짜 정치 행사들이 진행되듯이, 이번 것도 사기였다. 투표는 선거 명분없이 진행되었고, 신분증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일반 투표소에 기차역, 사무실, 길모퉁이, 호텔 등에 수십만 개의 임시 투표소가 추가되었다. 회사와 정부 관리들은 그들의 모든 피고용인의 투표를 확실하게 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라고 언급했다.
부정 투표와 복수 투표에 관한 고발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사람들이 한번 이상 투표하고, 정말 보잘 것 없는 신원확인만으로도 투표를 하는 등의 부정행위가 보고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운전면허증과 기타 사진 첨부된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되어있었으나, 어떤 투표소에서는 관리자가 한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손으로 쓰여진 쪽지를 받아 들이기도 했다..."
"투표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무원들이었으며 무샤라프 장군의 덕목을 찬양하는 데 거의 주저하지 않았다. 국민들을 독려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최근에 대통령의 사진이 건물을 뒤덮고 모든 가로등에 부착되었으며, 축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군용 무개차가 국기를 펄럭이며 애국적인 음악을 쾅쾅 울리면서 도시의 주요 도로인 지나가(街)를 따라 지나다녔다."
워싱턴포스트는 "정부는 무샤라프에 대해 열광적인 지지가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보부는 소수의 외국인 기자를 헬리콥터로 페샤바르와 압보타바드라는 북서 국경의 지방 도시에 있는 투표소로 싣고 갔다. 그곳에서의 풍경은 모두 똑같았다. 즉, 거리에서 악사들이 방문객의 도착을 알렸다. 페샤바르에서는 북 치는 사람들이, 압보타바드에서는 피리부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린이들은 꽃잎을 뿌렸다. 고위 관료들은 미소를 지었다. 지지 유권자들의 줄은 20 혹은 30명 정도 되었는데, 희망에 가득찬 얼굴을 하면서 엄격한 군대식으로 방문객을 바라보고 있다. 페샤바르에서는, 여성들이 베일을 내리고 갑자기 박수를 치기도 했다. "
AFP에 따르면 "야당은 선거 명부가 없어 복수 투표가 발생하고, 많은 투표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여러 번 줄서면서 부정투표가 정당화될 것에 대해 우려한다. 한 투표소에서는 한 여성이 60번이나 투표했고, 다른 투표소에서는 18세 이하의 여학생들이 투표하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투표자의 손가락에 붙여진 잉크는 매우 쉽게 지워진다는 게 증명되었다. 한 투표자는 AFP에 "그 잉크를 지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8번이나 투표했다. 투표소 여러 군데에서 어떤 문제도 없이 투표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은 북서부 지방에서 "국가 기관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증거가 그날 내내 나타났다.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투표를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몇몇 투표소에서 관리들과 경찰 간부들이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찬성표를 던지라고 독려하거나 투표함을 열어 기표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언급했다.
서구의 암묵적 지지
전국적으로 선거 과정을 비공식으로 모니터한 미 대사관 외교관들과 영연방 고등판무관들은 위의 모든 것들을 고의적으로 무시했다. 시드니 모닝헤럴드에 따르면, 작은 선거 부정 사건은 있었지만, 선거 과정을 조작하기 위한 조직적인 캠페인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수준에서 조작은 확실히 없었다. 우리는 광범위한 수준에서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한 외교관이 말했다.
워싱턴은 국민투표에 대한 완전한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국무부 대변인 리차드 바우쳐는 "나는 수치들에 대한 어떤 독립적인 확인이 실제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나라를 민주적인 시민 통치체제로 복귀시키는데 국민투표가 어떤 의미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파키스탄 국민들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는 "우리는 10월 지방선거 및 총선을 주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거들이 이 나라를 민주적 통치체제로 복귀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말들은 미 행정부가 민주주의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시는 군부 독재자(무샤라프-옮긴이)를 미국의 대(對)아프간 전쟁 동안 편리한 동맹으로 포용했으며 무샤라프가 유용하다고 증명되는 한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바우처의 언급은 조작됐다는 사실이 뻔한 선거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샤라프는 미국이 그려놓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그는 부시가 묘사한 "엄청난 용기와 확신을 갖고 있는 지도자"에서 국제적인 언론들에 의해 비민주적 조폭으로 비난받으면서 정치적 부랑아로 아주 급속하게 전락할 수도 있다.
무샤라프는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국민투표 이후 짧은 텔레비젼 연설에서 그는 IMF가 요구한 경제 개혁 조치들을 이행하겠다고 다짐했고 "앞으로 새로운 대테러리즘 캠페인을 선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샤라프는 이미 미국 압력에 굴복했으며, 미 특수부대 군인들이 아프간 국경을 따라 파키스탄 군대와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부족민들 사이에서 성난 저항을 촉발시키고 있다.
10월 선거가 실제로 치뤄질 지는 의문이다. 투표가 비록 진행되고 선출된 정부가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무샤라프는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국가안보위원회(NSC)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권력은 정부를 운영하는 힘이다... 수상과 내각은 그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국가안보위원회는 잘못된 행위를 점검하는 권력을 갖는다... 나는 쉬면서 테니스와 골프나 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수상)가 정부를 잘못 운영하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샤라프의 입지가 확고한 것은 전혀 아니다. 국민투표 과정에서, 파키스탄인민당(PPP)와 파키스탄이슬람연합(PML)이 군부 체제와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주요 정당들을 고립시켰다. 그는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미 군대가 파키스탄에서 군사작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동시에 IMF 조치들의 이행은 보다 높은 실업을 야기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보다 반정부 적대감을 증폭시킬 것이다.
결국 무샤라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립될 것이다. 그의 정권은 군부와 국가 관료 내의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협소한 층에 기반하고 있으며 워싱턴의 지속적인 경제 원조와 정치적 지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장수를 위한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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