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르펜 전선에 참여한 한 프랑스 디자이너의 포스터에는 <인종경멸의 복귀…… 5월 5일 안돼! 라고 말하십시오>라는 글귀와 대선 1차투표 후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르펜의 얼굴과 유럽 신나찌 스킨헤드족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있다
Non !!! Le Pen !!!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민족전선(Front National) - 르펜이 일으킨 초강도의 지진 이후, 프랑스의 상황을 한 마디로 압축하라면 바로 이것이다. ‘르펜 !!! 절대 안돼 !!!’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형성된 안티르펜 전선의 이 슬로건은 두 가지 국민행동을 포함한다. 첫째는 최대한 기권표를 막는 것, 둘째는 오로지 기호 1번, 시락만을 찍는 것이다. 이번 선거로 프랑스인들은 선거권을 포기하는 것이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그 생채기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최대한 르펜의 표를 막음으로써 아직도 그들의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은 건재하다라는 것을 국민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르펜의 2차 투표 진출 발표 직후,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네티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안티르펜’ 페이지로 개조한 후, ‘바스띠유에서 모이자’라는 즉각적인 시위를 제안했고, 이 소식은 인터넷과 핸드폰 등의 빠른 통신매체를 통해 퍼짐으로써 4월 22일 0시, 바스띠유 광장에 5천여 명이 집결하는 첫시위가 시작됐다. 그후, 프랑스 각지에서는 안티르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프랑스인들의 안티르펜 시위를 연일 주요기사로 다루었고, 지속적으로 벌어진 시위의 양상은 계층, 계급, 직업, 남녀노소녀를 불문하고, 적게는 몇 명으로부터 수 만명이 모이는 시위가 매일 계속됐다. 안티르펜운동은 플랭카드, 피켓, 콘서트, 비디오, 사진, 예술작품 등 거의 모든 매체가 동원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을 동반하고 시위에 참여한 한 프랑스 부부는 두 딸과 함께 ‘똘레랑스(관용)’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함께 나왔다고 했으며, 한 노부부는 그들의 손자손녀들은 피부색이 그들과 다르기도 한데 어떻게 이 아이들을 몰아내자라는 국민전선을 참을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예술가들도 퐁피두센터 앞에 모여 성명서를 냈으며, 몇몇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심란함과 불안을 달래는 유일한 길은 5월 5일 까지 안티르펜 작업을 하는 것이라며, 안티르펜 티셔츠 문양과 포스터 작업을 하여 인터넷에 익명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대학내에서는 이번 대선의 이변을 놓고 토론회와 강연회가 벌어졌다. 지하철 안에선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안티르펜을 외치며 신문을 나눠주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퍼졌다. 4월 13일부터 4월 29일 까지의 봄방학을 끝낸 파리의 학생들은 29일 월요일 아침, 학교가 아닌 거리로 나섬으로써 개강을 시작했다. 경찰에 의하면 아침에는 4만여명의 고등학생 조합, 학생 조합 등이 참여하였는데 오후에는 10만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은 목청을 높여 « 제일, 제이, 제삼 세대 !, 우린 모두 ! 이민자의 아이들 !! »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 FN ! 절대 안돼 ! »라고 적힌 마분지 피켓을 들고 행진을 했다. 이들은 시민 안전을 담당하는 공화국 보안 기동대가 30 미터씩 후퇴할 때 마다, ‘우리가 이들을 두렵게 했다, 이런 식으로 르펜을 이길 수 있다’며 즐거워 하기도 했다. 이 날 시위는 특별한 사고없이 해산됐다.
안티르펜전선의 행동을 실천하기 위해, 좌파정치그룹 내에서도 시락에 대한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은 잠시 금기시되고 있는 듯하지만, 인터넷에선, ‘5월 5일 2차 투표일에는 ‘장갑을 끼고 투표하자, 코에 빨래찝게를 꼽고 투표하자, 장례식의 의미로 검은 옷을 착용하자’는 등의 (시락의) 악취와 소음에 반대하기 위한 상징적 제스쳐를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5월 5일 시락을 지지하는 이유는 극우파에 타격을 주기 위함이지 시락 자체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voteravecdesgants.free.fr(장갑끼고투표하기.com), mai2002.cjb.net(2002년5월.cjb.net), lapincealinge.org (빨래찝게.org) 등이 쇼킹한 슬로건들을 제안하고 있고, commentvoterchirac.com(어떻게시락을찍을것인가.com)에서는 « 시락을 지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이라는 주제로 여러가지 의견을 제안해 놓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 장갑끼고 투표하기»가 가장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인터넷 덕으로 선거기간의 이러한 상징적인 제스쳐들이 법률적으로 지닐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심의도 확산되고 있다. 선거권과 관련하여 연구를 하고 있는 법률가 브누아 타바카는 그의 « 프랑스 법률 활동 조사 »라는 개인 사이트에서 " ‘ 장갑끼고 투표하기’ 등의 상징과 함께 투표를 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단지 극우파의 상승에 반대하기 위해 대통령직을 퇴임하는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이것은 본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비개인적인, 압력에 의해 행해진 표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문제와 관련된 프랑스령 폴로네시아에서의 최근 판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웹에서는 신중하자라는 분위기도 번지고 있는데, Votezavecdesgants(장갑끼고투표하기)에서는 이 법률가의 글을 게재하였고 다른 사이트에서는 경고와 주의를 Commentvoterchirac(어떻게시락을찍을것인가)에선 ‘간결한 한 표’를 ‘간결한 표’로 바꾸기도 했다. 브누아 타바카는 또한 이러한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투표권을 포기하는 유권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리오넬 죠스팽 사이트에선, ‘많은 투표소에서 무효화가 난다는 것은 선거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고, 이 경우 새로운 선거가 있을 수 있다’라는 의견도 보인다. 이와 관련된 판례는 아직까진 없지만, 헌법재판소는 상징적 제스쳐들로 인해 2차 투표의 결과를 무효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혀 배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2차 투표 상징화하기 운동은 방향을 바꾸긴 했어도 약화되고 있지는 않다. 시락 사이트에선 4월 30일, 6657명의 네티즌들이 ‘시락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화국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지지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시락에게 보내는 편지에 사인을 했고 ‘5월 5일의 투표는 안티르펜 국민투표’라는 내용이 들어간 녹색당의 노엘 마메르의 청원엔 1337명의 네티즌들이 사인을 했다.
zetud.net 이라는 학생사이트에서는 "프랑스는 오늘 당신이 공화국을 구해낼 수 있도록 당신을 뽑은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당신에게 투표함으로써 공화국을 구해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이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결과를 책임지는 법을 알기를 희망하며 당신이 당신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를 바란다"라는 쟈크 시락에게 보내는 편지 모델을 올려놓기도 했다. 한편 르펜 투표용지를 시락에게 보내는 프랑스인들도 있었으며, 공화국 대통령에게 주의를 주는 편지엔 우표를 붙일 필요가 없다라고 상기시켜주는 글도 올라왔다.
1998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의 월드컵 승리로 함성을 지르며 많은 유색인종들로 구성된 프랑스 국가 대표팀을 인종을 넘어선 프랑스의 승리로 받아들이며 모두 어깨를 걸고 잔치를 벌였었다. 월드컵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아랍계 천재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을 포함한 대표팀들의 얼굴은 개선문에 가득 영사되었고, 화려한 영사술과 음악에 취하며 ‘지단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축국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말이 없고 조용한 지네딘 지단도 TV에 출연해 ‘(민족전선은) 프랑스의 가치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 당’이라고 고발하고 나섰다.
안티르펜 운동에 참여한 유명인들은 지단만이 아니다. 랩그룹 IAM의 리더인 아케나톤, 영화배우인 제라르 드빠르디유, 프랑스인들이 가장 유능한 샹송 작곡가라 칭하는 쟝 쟈크 골드만, 누와르 데지르의 가수들, 그룹 NTM의 쿨 쉔, 감독인 마튜 카쏘비츠 그리고 그외 20여명의 예술가들과 스포츠인들이 « 민족전선을 쓸어내기 위한 » 비디오에 출연했다. 6만개의 이 카세트들은 이번 목요일부터 민족전선이 1차 투표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은 20여개의 도시에 무료로 배포된다.
지금까지의 대선 기간 동안, 르펜이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물’중심의 선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난 선거에서 사회당 여성당원을 할퀴고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어느 순간 미디어로부터 사라졌나 했더니, 그 사이 은밀한 물밑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술 더떠 국민은 폭력적인 것은 싫어한다는 것을 안 르펜은 180도 달라진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의 ‘지혜로운‘ 르펜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세계화와 유럽연합으로 인해 프랑스인들이 지니게 된 프랑스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9.11 뉴욕테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학살극, 그 파장으로 보이는 프랑스내에서의 시나고그 테러사건 등을 그는 ‘똘레랑스 0 ‘와 ‘프랑스인 먼저’ , ‘외국인을 추방하자’,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라는 등의 단순무식한 모토로 선동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르펜의 이런 이미지를 보며 프랑스를 구원하고 강력하게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역시 단순무식하게 보이는 프랑스인들은 그를 선택했다. 극우파에겐 정책이 없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정신의 모토를 나치와 협력했던 마레샬 페탱의 ‘노동, 가정, 애국’으로 지멋대로 바꿔치기하여 다시 외치며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한 다음, 자신있게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자이고, 정치적으로 공화주의자이며, 민족적으로 프랑스인이다.’ 여기서, 프랑스인들도 할 말을 잃고 만다.
대선토론에 나오는 그들의 궁색한 전략을 보자.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대선토론 프로의 기자가 프랑스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조금 있다가 그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아주 정중하게). 그 전에, 일이차 투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에 의한 우리당의 침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일차 선거전에선 ‘공평성’이라는 명목으로 참아왔던 기자들도 이젠 르펜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안티 르펜을 외치며 전국 거리에 나와있는 국민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족전선 왈, "아, 그거야 배후조정자들에 의해 혹한 자들이죠.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죠" 정책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앞서, 민족전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일 것 같은 것에 대해 미리 이의를 제기하여 항의하고 언쟁을 벌인 다음, 민주주의도 평등도 자유도 없다라고 자신을 희생자화한다.
오늘은 노동절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프랑스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말 그대로 ‘모든’이다. 물론 1만 여명의 민족전선도 오후 1시, 파리의 오페라 광장에서 프랑스 안티르펜전선의 약속된 시간인 오후 3시보다 앞선 시간에 독자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마르세이유, 릴, 스트라스부르그, 몽뻴리에 등 프랑스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파리로 올라온 40만명의 함성과 힘에는 비교될 수가 없었다. 프랑스인들은 르펜은 환영받지 못하는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68년의 5월과 62년 알제리 전쟁만큼이나 중요한 뭔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극우파와 충돌이 있을 경우, 르펜에게 표가 돌아가버린다는 우려를 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사고없이 즐겁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시위는 끝이났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 전국에 걸쳐 100만명이라는 프랑스인들이 오늘 ‘거리’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르펜에게 Non!!! (안돼!!!)이라고 외치기 위해.
* 필자는 '프랑스 디종에서 공간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웹디자이너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인터넷신문 대자보 양인숙 [Artem9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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