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파업노동자 자녀들은 보호받을 자격없다?

어린이날의 분노

정경섭 jks@kdlpnews.org
올해도 변함없이 ‘어린이 날’을 맞이해 민관 주도의 각종 행사가 열렸다.

어린이 날인 5일, 파업 2백86일째인 금속노조 시그네틱스지회 여성노동자들은 자녀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피멍이 든다. 기혼여성이 전체 직원 중 80%에 이르는 시그네틱스 여성 노동자들은 96년 간절한 바람이었던 ‘어린이집’을 사측과 함께 설립했다.

3교대(새벽6시, 오후 2시, 오후 10시)의 근무조건, 월 60~70만원의 급여 때문에 마땅히 자녀를 맡길 곳이 없었던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이 풀어지는 듯했다.

사내에서 결혼한 부부의 경우 맞교대를 하며 아이들을 돌봤기 때문에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다 ‘어린이집’ 설립 이후에는 회사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운영은 노조가 담당했고 사측은 시설과 노동부로부터 나오는 운영보조금을 ‘어린이집’에 제공했다.

하지만 2001년 노조가 공장이전 등의 문제로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안색을 바꿨다. 60여명의 어린이가 다니고 있던 ‘어린이집’을 폐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측의 눈에는 파업노동자의 자녀는 어린이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사측은 강서구청에 ‘어린이집’ 폐쇄신고를 내고 한전과 가스공사에 물과, 전기, 가스를 끊어버리도록 하는 이성을 상실한 행동을 보였다. 폐쇄 협박에 ‘어린이집’ 교사들도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다.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기들을 향한 사측의 막가는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사측은 2월 5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철거용역직원을 동원해 ‘어린이집’을 외벽만 남겨둔 채 모두 허물었다. 강서구청은 “어린이에 대한 대책이 없이 폐쇄할 수 없다”고 사측에 통보했지만 사측은 거꾸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신고만 하면 되는데 구청에서 월권을 행사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노동부는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나오는 지원금을 중단하는 것으로 사측을 거들었다.

‘어린이집’이 철거된 것을 몰랐던 노조 남성숙 총무부장은 ‘어린이집’ 폐쇄 당일 폐허가 된 건물을 보고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을 가지고 회사가 어린이집까지 깨부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 ‘어린이집’은 다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는 못하다. 깨진 창문에 비닐을 덮어놔서 날씨가 더워지는 걸 반길 수 없고, 허물어진 벽면에 합판을 임시로 대어서 방음이라곤 기대할 수 없다. 10명이었던 교사도 떠났다. 차마 어린이들의 딱한 처지를 외면하지 못한 4명의 교사만이 힘들게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파업 노동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하루아침 사이에 건물이 바뀐 것을 알 리가 없는 어린이에게 부모는 어떤 설명을 할 수 있을까.
[ 86호] 5.6 ~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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