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방용석 장관, 자꾸 이러실겁니까?

87년 대투쟁 이전의 노동운동사를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방용석, 섬유노련 원풍모방 지부장이었던 그는 상급단체 회의 때마다 노조탄압의 실상을 거침없이 폭로하며 민주노조의 상징으로 기억됐다. 공안기관원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지켜봐도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주위사람 하나 동의하지 않아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할말은 하는 사람, 민주노조운동의 산증인.

불의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아름답고, 어떤 상황에서도 할말은 하는 용기라면 그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돋보이던 과거를 '상표'로 달고 노동부장관에 오른 지금, '못할 말'까지 서슴지 않고 쏟아내는 그를 보는 심정은 그래서 더 씁쓸하고 안타깝다.

방 장관은 지난 5월6일 전국기관장회의를 소집해 모든 사업장에서 '월드컵 노사평화선언'을 채택하도록 유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방 장관은 또 6월말까지 '월드컵 대비 노동상황실'을 가동해 '분규'가 발생하면 신속히 '대응'하도록 했다. '신속한 대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김대중 정부 들어 구속된 7백48명의 노동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방 장관의 '못할 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발전파업이 한창이던 3월24일 노조와 발전회사, 산자부 사이에 잠정합의가 거의 이뤄진 시점에 돌연 '협상결렬 성명'을 발표해 노조의 뒤통수를 때렸다. 어디 그뿐인가. 4.2사태 직후, 민주노총의 위기상황을 틈타 노사정위에서 노동법 개악안을 합의시키려 한 것도 다름 아닌 노동부였다.

지금 노사·노정관계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주범은 분명 정부다. 53명의 노동자가 '노동자의 축제'인 노동절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냈으며, 발전노조원 3백여명 해고 또한 정부의 작품이었다. 공무원노조 지도부는 지금도 인천 산곡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고, 대우자판노조 간부 17명에게는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노사평화선언' 주문은 뺨 때린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격이다. 월드컵조직위나 문광부장관도 아닌, 노동자 편에 서야할 노동부장관이 할 말이 못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월드컵을 의식해 매년 6월께 치러오던 임단협 집중투쟁을 5월말과 7월초로 변경했다. 하지만 노사·노정관계는 늘 상대적이다. 정부가 노조를 '잠재적 사회불안요소'로 취급해 자극하면서 '평화'를 바라는 것은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다.

이승철 keeprun@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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