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노동조건, 강제추방 - 이주노동자 투쟁 대중화
불법체류 집중단속에 항의하는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아간 김대중 정권
▲(왼쪽) 4월 7일 서울에서는 이주노동자 1천여명이 모여 정부의 ‘불법체류 종합방지대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오른쪽) 4월 12일 국내체류 중국동포 5백여명이 정부의 고용허가제와 자진신고제 실시에 항의, 무기한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삭발하고 있다
“우리가 쓰다 버리는 나무젓가락인가?”
4월 28일,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집회결사의 자유 쟁취와 추방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가 신원만 파악하면 곧바로 추방 명단에 오르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출국까지 각오하고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월드컵 앞두고 ‘고용허가제’ 미명 하에 이주노동자 집중단속·강제추방
현재 국내에 있는 이주노동자는 34만 명이고 그 중 26만 명이 미등록 노동자, 즉 ‘불법체류자’로 찍혀 집중단속과 강제추방 대상이 되어 있다.
최저임금을 약간 넘어서는 저임금,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상습적인 임금체불, 이탈 방지를 위한 기숙사 감금과 신분증 압류, 온갖 욕설과 구타, 성폭행, 인종적 편견 등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은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 왔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정부는 지난 3월 12일 ‘불법체류 종합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3월 25일부터 5월 25일까지 ‘불법체류자 자진신고 기간’을 두고 자진신고하는 불법 체류 미등록 노동자와 그 고용주에게 체벌 면제와 최장 1년의 출국 준비 기간을 주겠다고 밝혔다.
또한 노동부는 오는 6월에 법령 개정을 통해 산업연수생 제도와 함께 ‘고용허가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이 제도의 내용을 뜯어보면 이주노동자들에게 또다른 족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고용허가제 전단계로 실시하는 자진신고제는 인권침해를 예고하고 있다. 많은 사장들은 이전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월급도 안주고 산재보험도 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자진신고를 할 경우 1년간의 출국 준비기간을 부여해 준다고는 하나, 본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공장을 옮길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사장이 월급, 산재보험에 대해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또한 자진신고 기간이 끝나는 5월 25일부터는 집중단속을 시작해 신고하지 않은 미등록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 강제추방 작전이 전개된다.
5월 25일은 월드컵 시작 직전, 즉 ‘선진 월드컵’을 빌미로 골칫덩어리인 이주노동자를 강제추방하겠다는 것이다. 3월 25일부터 4월 25일까지 자진신고한 미등록 노동자가 총 26만명 중 1만명을 겨우 넘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자진신고제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법제화될 고용허가제 또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주는 칼자루를 사장이 쥐게 되며, 고용중지나 고용기간 연장을 이유로 쟁의도 할 수 없도록 정부가 보장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용주가 일방적으로 해고(고용중지)를 하여도 ‘14일 이내에 고용중지 당한 자는 출국’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들어 있어, 불법해고라 하여 법적으로 어떠한 저촉도 받지 않게 되며 이주노동자 스스로 법적인 구제절차를 신청할 길조차 가로막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는 각종 불합리한 조건을 부과하지만, 사업주들에게는 마음에 안 들거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안정된 고용의 탄력성”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한 현실, 강제추방 각오한 대중투쟁으로 이어져
4월 7일, 서울 중구 훈련원 공원에는 어디서들 모였는지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피켓과 국기를 든 이주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지부장 이윤주) 주최로 ‘미등록노동자 일제등록 거부와 합법화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집회에는 예상치를 훨씬 넘는 1천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해, 주최측조차 놀랄 만큼 불법체류 방지대책에 대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를 짐작케 했다. 지방에서는 5천원씩을 모아 관광버스까지 빌려서 온 곳도 있었다. 그만큼 등록과 단속으로 계속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앞선 3월 26일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에도 조선족 출신 1천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정부의 불법 체류자 방지 종합대책을 규탄하는 집회와 촛불시위를 벌였다. “불법 체류자가 자진 신고하면 1년간 귀국 준비 기간을 주는 대신 그 이후엔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사실상 23만명에 달하는 중국동포들을 국내에서 추방하겠다는 최후통첩”이라며 이 교회 서경석 담임목사는 26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단식농성 18일차 서 목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조선족 출신 이주노동자 5백여명이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너무나도 열악한 노동환경에 소수 산업연수원생들이 산발적인 저항을 벌인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대중투쟁으로 불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고용허가제와 자진신고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추방대기표를 나누어주는 것에 다름아니란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마저 빼앗긴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 돌입
4월 7일 대중집회를 성공시킨 평등노조 측은 4월 21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 일제 등록거부, 단속-추방 반대, 합법화 쟁취 2차 결의대회’를 열어 정부 방침을 규탄하는 자리를 가지려 했으나, 집회가 공고된 이후 국정원, 출입국관리소, 경찰 등이 합동단속반을 꾸려 “집회에 참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을 각 지역에서부터 검문하여 전원 연행, 강제 추방하겠다”는 강경 대응 방침을 세워 이주노동자들은 집회에 참석해 하소연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말았다.
집회 전날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4월 7일의 집회를 기억하고 이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24시간 연속근무 후 주야교대를 바꾸거나, 핸드마이크를 빌리고, 피켓을 만드는 등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4월 28일 이주노동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강제추방을 각오하고 명동성당 농성에 돌입했다.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고용허가제와 자진신고제 실시를 중단하고 노동3권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 그리고 최소한 5년 동안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동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대로, 월급을 뺏기면 뺏기는대로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던 노예들이 아니라는 점을 당당하게 선언한 것이다. 지금 명동성당에서는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지난 91년부터 들어온 후 11년 동안 쌓인 이주노동자의 한과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는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단체와 인권단체들이 펴낸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백서’에 나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등록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1시간으로 국내 법정 근로시간 44시간보다 20시간이나 많다.
이들 대부분이 잔업과 특근을 하고, 심지어 36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례도 많다. 산업재해에도 무방비 상태여서 1998년부터 2001년 8월까지 모두 3,585명이 산업재해를 당해 이 중 130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안산소재 (주)산성에서 일하던 산업연수생 야르(28)가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쪽에 휴가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동료들이 이에 항의, 작업거부와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4명의 연수생을 해고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인륜마저 무시하는 일도 벌어진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나 산업연수생에 대한 성추행 및 성폭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강제추방 등을 두려워 해 피해사실을 밝히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사용자 대부분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 소속인데, 중기협 측은 “불법체류자의 80% 이상은 관광비자를 갖고 입국한 뒤 불법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산업연수생에서 이탈한 불법체류자는 5만여명에 불과하다”며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중기협 간부들이 필리핀 노동자 93명을 불법입국시킨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에서 보듯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기업 관계자나 브로커들이 “한국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라는 말만 믿고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로 몰리는 것이지, 스스로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불러놓고 이제와서 나가라면 어떻게 합니까?”
피부색만 다를 뿐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이다. 그들의 요구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이다.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인간으로 대접해 달라는 것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