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현(한신대 교수, 노동자의 힘 회원)
요즈음 두 가지 에피소드가 우리 사회의 정치 무대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첫번째는 대통령의 아들의 비리라는 구태의연한 주제이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옷 로비 사건으로 고위층의 청탁 비리가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진승현 게
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이 시리즈로 연달아 터
져 나와 어느 놈이 어느 놈에게 무엇 때문에 무엇을 준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
도로 정신을 어지럽게 하더니 급기야 대통령의 아들이 각종 이권 청탁에 개입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이 사과 표명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통령
의 아들이라는 표제는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김영삼 정부 말기의 김현철
사건과 기본 스토리 전개는 똑 같아 재상영임을 직감하고 있는 일반 국민은 별
로 새로울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입지가 점차 좁아지던 야당이 세를
반전시켜볼 요량으로 정권퇴진(!)을 외치며 가두 시위를 하는 등 온갖 법석을
떨어도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경유착은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이지 않았는가? 부르주
아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내적인 결합과 외적인 분리에 의해 특징지워
지지 않았는가? 부르주아 정치는 계급 중립적인 외양을 취하고 있어서 그것의
계급적 내용을 은폐해오지 않았는가? 국가의 존망과 나라의 살림 전체를 걱정
하지 않는 정치가가 어디 있었으며, 실제로는 자본으로부터 자금을 받지 않는
부르주아 정치가가 어디 있었는가? 쉽게 말해 정치가와 기업가는 겉으로는 서
로 상관없는 양 형식적으로만 분리되어 있을 뿐 한통속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정경유착이 없는 부르주아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것이어서 소위 부르주아적 합리성 내에서 정
치 자금 문제는 법 제도적으로 규제가 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자금의 흐름
을 투명하게 한다든지, 그 규모와 사용처 등을 제한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 자금 시비는 끊이지 않으나 우리나라처럼 불법이 정상이 되
어 있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 막론하지 않고 모두가 불법을 자행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치의 전근대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노동자 정치는 폭로된 비리에 대한 공격에서 출발해서
은폐된 계급적 정경유착으로까지 공격을 확대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르주아적 개혁은 부르주아지의 과제이고 정경유착을 해결하
는 것은 노동자들과 상관없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노동자 정치
의 목표가 부르주아적 개혁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봉건적 요소에 견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역사의 진보일 뿐더러 노동자 정치를 위한 유효한 공간의 확
대이다. 봉건 귀족과 부르주아지가 쟁패를 겨루던 시기 이래, 부르주아적 개혁
은 부르주아지를 위할 뿐이라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은 봉건 귀족의 이해와 역
사적 반동에 기여할 뿐이어서 일찍이 봉건적 사회주의로 불리워진 바 있다. 어
떠한 의미에서는 실제로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권은 모두가 비리에 연루되어 있
고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 개혁조차 이로부터 자
유로운 노동자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합리성에 비추
어 볼 때조차 도가 지나친 정경유착에 대한 공격, 그것에서 출발해 부르주아
정치의 필연적인 계급성 (은폐된 계급적 정경유착) 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확대
하는 것은 노동자 정치의 핵심적 요소이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여당을 무대로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 노무현 후보가 선출
되는 과정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세칭 노풍이 불어 이인제의 대세론
을 잠재운 것이다. 노풍이 없었다면 정말로 우리의 정치무대는 한물간 옛 작품
들을 재상영하는 재미없는 판이 될 뻔하였다. 이회창과 이인제 두 후보, 즉 성
씨, 출신 학교, 출신 배경, 정치적 성향까지 똑 같은 이 재미없는 쌍둥이의 머
리끄댕이 잡는 저질 싸움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징그러운 한 해가 될 뻔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노풍은 민주당만 위기에서 구한 것이 아
니라 우리나라의 제도권 정치 전체를 위기에서 구한 구세주인 것이다.
노동자 계급 정치는 아직도 우리의 과제
노풍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노무현의 좌익성 논란이었다. 노풍을 잠재우기 위
해 이인제는 전가의 보도처럼 준비해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좌익성 시비를 걸
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인제는 노무현이 보여준 서민적 풍모와 다른 후보와
비교했을 때 보다 진보적 이미지, 즉 그가 공격하려는 바로 그 좌익성 때문에
국민이 노무현을 좋아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국민이
좌익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어떤 일이 있었길래 우리나라 정치에 뿌리깊은 반
공주의, 지역주의가 일거에 힘을 못쓰고, 좌익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바뀌
었을까? 흔히 노 후보의 승리의 원인으로서 여러 가지 후보간 비교 우위, DJ
의 지지, 이인제의 안이한 대응, 네티즌의 등장 등을 이야기하나 사실은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 민영화 반대 여론이 국민의 80% 이상으로 뒤바뀌면서
근본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간과하면 안될 것이다. 민영화 반
대 여론이 다수로 확인되었을 때 이미 노풍의 근거는 드러났으며, 노동자 대중
의 투쟁으로 변화된 지형 속에 지도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항복을 하면서 노
동자 투쟁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수렴해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민
영화 문제에 대해 단호하지 않은 노 후보에게 지지가 몰린 것은 당연한 결과라
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2-3월의 발전 노동자 투쟁이 그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총
괄 평가와 관련되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노풍은 그간 국내외 독점 자본
의 이해관계만이 관철되어온 구조조정 과정에 피해를 보아온 노동자, 서민의
분노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개혁성은
재벌과 보수 언론에 대한 비판적 언술 수준으로 노동자들의 조직직인 정치 기
반에 바탕을 둔 계급적 노동자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지금 세계는
미국에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래, 독일, 프랑스에서 연이은 선거에 사회당, 사
민당이 대패하면서 우파가 득세하는 중이어서 차기 대통령은 필경 내부의 반
발 뿐 아니라 외압에도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노무현
후보의 좌익성은 실체는 없이 단순한 이미지, 선거 시기의 정치 공방에 그칠
공산이 짙다. 이미 민주당의 지지기반과 선거표수를 염두에 두고 노무현 후보
진영은 우선회를 하면서 말조심을 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 대중 투쟁을 바탕
으로 한 공장과 가두의 정치, 그것의 연장선상에서의 선거 전술의 구사 등 노
동자 계급 정치는 아직도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전개되고 있는 첫번째 에피소드는 우리나라 정
치의 전근대성과 관련하여, 대통령 후보의 좌익성을 둘러싼 두번째의 에피소드
는 우리나라의 정치의 미래상과 관련하여 그것의 전개과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정치의 향방을 점쳐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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