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란 열사의 죽음... 그리고 49제...

이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최옥란 씨가 미처 다 외치지 못한 장애해방·민중복지 쟁취를 위하여...

2002년 3월 26일 새벽. 그녀는 죽었다.

그녀는 누구인가?
- 이름 : 최옥란
- 나이 : 37살
- 성별 : 여성
- 장애여부 : 뇌성마비 1급 장애인
- 결혼여부 : 이혼
- 자녀 : 아들이 하나 있으나 이혼 후 경제력을 이유로 양육권을 빼앗겨 만나지 못함.
- 소득 : 월 28만원(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로 국가에서 나오는 돈임.)
- 지출 : 월 63만원(교통비, 약값, 임대아파트 관리비 등)

여자이면서 이혼녀이고, 장애인이면서 빈민이고 아이를 빼앗긴 여인.

그리고 소득보다 지출이 월등히 많았던 그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소득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말에 운영하던 노점도 접었던 그녀에게 국가에서 주었던 돈은 단돈 28만원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했다. 정당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외쳤고, 국가에서 받는 그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작년 12월 매서운 바람 앞에서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과산화수소 한통과 수면제 20알은 물론, 그녀의 손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떠밀었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도 여기저기에 떠다니고 있다. 현실에서의 어떠한 몸짓도 그녀의 생활을 달라지게 할 수 없었다. 몸의 병은 깊어지고, 빚은 쌓여만 갔다. 아들을 찾기 위한 소송과정은 노동능력이 없고 중증장애인인 그녀에게 쥐꼬리만한 수급권마저도 반납하기를 요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통장에 잔고를 채워 소송에 유리하고자 몸부림을 치던 중, 수급권자 재선정을 위해 재산조사를 하겠다는 동사무소의 고지서를 받아들던 날.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밤 극약을 마신 그녀는 병원에 실려와 한달 동안을 병원에서 치료받다 3월 26일 새벽,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2002년 3월 28일부터 지금까지 경찰의 폭력으로 그녀는 두 번, 세 번 죽어가고 있다. 3월 28일 장례식에서, 3월 29일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에서, 3월 30일 민중대회장 분향소에서 경찰들은 폭행과 폭언과 불법적인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여러 명이 감금되고, 다치고, 연행되고, 물품을 빼았겼다. 그녀가 살아서도 보장받지 못한 이동권, 죽어서도 편히 가도록 경찰들은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를 한 번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녀의 죽음 앞에 난도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사십구제는 열사를 그저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기기 위함이다. 다가오는 5월 13일은 최옥란 열사의 사십구제이다. 이때는 유가족들과 장지를 가는 것뿐만 아니라, 최옥란 열사를 기리기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행사 내용은 최옥란 열사 홈페이지 http://okran.jinbo.net ) 최옥란 씨는 살아가기에 너무도 참혹한 이 땅보다 죽음으로써 모두가 평등해진 저 세상에서 더 행복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 그녀가 바랬던 것은 살아서 행복한 세상이 아니었던가? 신체적 이유로, 경제적 능력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그런 세상 아니었던가? 이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최옥란 씨가 미처 다 외치지 못한 장애해방·민중복지 쟁취를 위하여...

한진 보건복지민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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