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여론 의식 기공식 없이 몰래 착공
우리가 공사 현장을 찾은 것은 5월 2일, “박정희 기념관이 몰래 착공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른 지 일주일 가량 되었을 때다.
‘기습착공’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공사현장은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과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공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었던 탓에 우리는 마을버스 종점까지 가서 되돌아오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
“잘못 내렸네. 공사 현장은 저 윈데. 다시 타요. 그 앞에서 내려 줄테니” 마을버스 기사 말에 따르면 원래 예정지는 마을버스 종점 앞이었는데, 옮겨졌다고 한다. 버스에 다시 오르자 기사의 말이 이어진다. “거긴 무신 일로 왔어요?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박정희 기념관은 무슨”
마을버스에서 내려 앞을 보니 산을 허무는 공사가 한창인 그 곳에는 ‘상암택지개발사업지구’라는 글자가 산 중턱에 한 자씩 박혀 있다. 발주자는 서울시다. 아직 그 주변은 도로만 있을 뿐,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그 곳 관할 정보과 형사에게 들은 얘기로는 주변 10만평이 10년 동안 개발될 예정이다.
공사장의 외벽은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곳까지 약 500m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는데, 시공 회사가 ‘태영’으로 되어 있다. 조감도에 ‘디지털미디어시티’라 해서 그 일대 개발 계획이 다 그려진 것으로 보아, 박정희 기념관은 미디어시티 한 쪽에 위치하게 될 모양이었다. 위치는 금방 알 수 있었지만 기념관이 그려져 있지는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가건물에서 누가 나온다. 현장소장이었다. 그는 흔쾌히 우리를 들어오라고 했다. 시공회사는 삼성건설이고, 태영은 협력업체라고 했다. “이게 최고의 엘리트들이 만드는 거요. 나만해도 96년부터 99년까지 말레이시아에서 102층짜리 지었소. KLCC라고 유명한 건물이지. 빅토리아 빌딩 알죠? 그거 지은 데서 이 공사 하는 거요” 정태식 소장은 공사를 어떤 사람들이 하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흔쾌히 들어오라던 태도와는 달리 말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게 여러가지로 복잡해요. 우리는 그냥 공사만 할 뿐이예요.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용서해 준거 아니예요? 그럼 됐지, 왜 그렇게들 말이 많아.”
“공사시작? 언제 했는지도 까마득해요.” 시작한 지는 오래 됐으나 재정 지원이 제 때 안돼 진척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산을 깎아내린 뒤 옹벽을 치고 있는 단계니 기초 공사도 안 끝난 셈이다. “언제 끝날지 몰라요. 건설비 지원은 정부에서 하는 거니깐” 애초에 박정희기념사업회는 기부금을 받아서 짓겠다고 했으나 전적으로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터가 옮겨졌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한 3천평에서 천 몇백 평으로 팍 줄었지” 박정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591평의 땅에, 건평은 650평에 달한다. 현장 소장은 건물을 넓히고 줄이는 것도 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더 축소하라 그러면 우린 못 해. 30억, 50억짜리를 어떻게 해. 100억 이하급 짜리는 삼성에서 짓지를 않아” 행정자치부에 확인한 결과, 이미 국회에서 통과한 200억을 기념사업회에 지원했고, 집행이 잠시 유보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깐 사업회에서 모금한 15억까지 합하면 215억짜리 공사다.
얘기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누가 들어온다. “어이, 조형사 어서 오시오” 이틀에 한 번씩 온다는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다. “이런 건 하나의 역사여. 왈가왈부 할게 아니지.” 그의 첫 마디다. “우린 사실 확인하러 왔을 뿐이예요. 그런데 기공식도 안했다 그러더라구요?” “ 돈 들어가니깐 안 했지” “푯말도 안 세워져 있구요” “왜 안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그래. 푯말 세웠으면 반대하는 사람들 뻘건 걸로 칠하고 그럴거 아냐. 바로 옆이 월드컵 경기장인데 데모하는 모습 보여주는 게 좋아요?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돼.” 나중에 박정희기념사업회에 물어보니, “안 세울 이유가 없다. 월드컵 끝나면 세울 것”이라고 했다.
조형사는 사실확인을 하러 온 우리들에게 연신 기념관의 정당성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며, 사실 기념관은 말만 그렇지, 주민들을 위한 부대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반대여론을 매우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자금이 묶여 공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역시 반대여론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확인한 것은, “5년 뒤엔 여기 명당이여. 센터란 말이여”라는 조 형사의 말에서 기념관이 완공된다면 박정희는 ‘명당’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당 기관지 공동취재·이현주, 장성희 / 사진·양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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