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창]"공화국을 지키자"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프랑스 대선이 자크 시라크 현대통령이 극우 국민전선당의 장마리 르펜을 82:18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르펜 자신 30% 득표를 목표로 했던 만큼 시라크의 당선은 1백% 예상된 일이었지만, 르펜은 1차투표에서 브뤼노 메그레 등과 함께 얻은 극우파 총득표율도 얻지 못했다. 좌우를 뛰어넘은 반극우 공화주의 연합전선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앵똘레랑스 세력에 대한 똘레랑스 세력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본디 ‘지지투표’의 성격을 갖는 1차투표에 비해 ‘반대투표’의 성격을 갖는 2차 투표에서 시라크는 우파 지향의 유권자보다 좌파 지향의 유권자에게서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좌파 지향 유권자들의 표는 실상 시라크를 지지한 표가 아니라 르펜에게 반대한 표였다.

따라서 82%의 막대한 득표율로 당선했다고 하더라도 시라크의 승리는 시라크 개인이나 우파의 승리가 아니라 르펜에 반대한 프랑스 공화주의의 승리였다.

르펜에 반대해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청년들은 “공화국을 지키자”고 외쳤다. 좌파가 오랜 동안 집권해 온 나라에서 급진적 경향을 가질 수도 있는 청년들이 거리에서 고작(!) “공화국을 지키자”고 외쳤던 점은, 극우-수구 헤게모니가 여전히 작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헌법 제1조에, ‘공화국’ 중에서도 ‘민주공화국’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공화국이 사회구성원들의 사회투쟁의 열매로 획득한 것이라면, 우리의 그것은 그냥 얻은 것으로서 실상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도 프랑스에선 공화주의에 관련된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공화주의를 이미 획득했다고 여겨서인지 이에 대한 논의조차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수 천년 동안 지속된 봉건적 신분질서체제의 유제가 헌법 제1조에 ‘민주공화국’을 천명했다고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아무튼 프랑스인들은 공화국을 건지자는 요구에 호응하여 좌든 우든 시라크에게 몰표를 주어 극우 르펜의 약진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 사회에 합리적 보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점은 진보세력에게 합리적 보수와 경쟁하는 경험을 갖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부정당하거나 부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군사독재자들에게서 물리적 탄압을 받아온 이래 나와 타자의 관계를 서로 부정하는 관계로만 설정했고 서로 인정하는 속에서 경쟁하는 관계 설정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타자는 모두 부정의 대상, 즉 극복 대상으로 여기게끔 타성과 습속이 자리잡혔을 수 있다. 가령 우리들에게 르펜 극복을 위해 “공화국을 지키자”고 외쳤던 프랑스의 좌파 청년들은 개량주의자들이고 현실 추수주의자들이었을까.

사회 곳곳에 극우-수구 세력이 헤게모니와 물적 토대를 움켜쥐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혹시 헌법 제1조가 보장하고 있는 공화주의에 대해 천착하지도 않은 채 사회민주주의를 뛰어넘자고 외치면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신자유주의자라는 점에서 똑같다면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정리하면 여러 모로 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경쟁 대상과 극복 대상을 구분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 87호] 5.13 ~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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