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dodani@kdlpnews.org
그에게는 따라다니는 애칭이 많다. ‘골리앗 전사’, ‘외로운 늑대’, ‘돼지발톱’…. 비타협적이고 꼿꼿한 그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애칭들이다.
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후 87년 현대중공업노조 초대 대의원, 89년 현대중공업 1백28일 파업 비상대책위 상황실장, 90년 골리앗투쟁 비상대책위 의장, 93년 8대 노조위원장, 94년 현총련 의장, 98년 민주노총 2대 위원장 등 그동안 그에게 붙여진 직책들은 노동자 이갑용(44·사진)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준다.
90년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들먹이며 노동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현대중공업에서도 한판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위원장, 수석부위원장이 구속되고, 뒤이은 비상대책위 의장들이 사퇴하는 등 탄압과 회유로 지도부 전체가 무너졌다. 이때 끝까지 남았던 이가 바로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이갑용이다.
그는 조합원들과 함께 1백28미터 고공 골리앗에 올라갔다. 14일만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내려와 2년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89년 파업 지도부로 구속된 데 이어 두번째 구속이었다.
93년 현대중공업노조는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또한번 고비를 맞는다. 그러나 어떻게 세운 민주노조인가. 이갑용은 홀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단식에 들어갔다. 22일간의 단식 끝에 조합원들의 열망으로 민주노조가 재건됐다. 복직 후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갑용은 다시 94년 LNG선상에서 두달이 넘는 기간동안 총파업을 벌였다. 이로써 세번째 구속. 그는 지금도 해고자 신분이다.
98년 민주노총 2대 위원장에 당선된 이갑용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타협’보다는 ‘투쟁’을 중심에 놓고 민주노총을 이끌어갔다.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마치고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이갑용은 2000년 총선에서 현대 재벌과의 싸움에 뛰어들었다.
지난 수년간 회사측의 탄압과 현장통제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동구에서 4.13총선을 ‘자본가 대표 정몽준과 노동자 대표 이갑용의 한판 대결’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희망’을 발견했다.
이번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이갑용 후보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선가능성 1위’, ‘지지도 1위’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최초의 ‘노동자 구청장’이 생겼다는 자부심과 희망을 만들겠다”는 그의 각오가 이제 동구에서 ‘현실’로 만들어지고 있다.
[ 87호] 5.13 ~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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