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아다니는 바다를 본 적이 있으신지.
낡은 그물코 한 올로 몸을 가린 섬을 본 적이 있으신지.
이 섬에 가려면 황토길 삼십 리 지나 한 달에 한두 번 달리는 바깥세상의 철길을 뛰어 넘고 다시 소금밭 둑길따라 개금재 듬성듬성 박혀 있는 시오리 길을 지나면 갯마을의 고샅이 보일 거예요.
이 섬으로 가려면 바다를 찾지 마셔요. 물 없이 떠도는 섬, 같은 바다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그지 않는 섬, 이 섬을 아무도 보질 못하고 돌아온 것은 당신이 찾는 바다 때문이어요.
당신의 삶이 자맥질한 썩은 눈물과 토사는 이 섬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뜨려 놓을 거예요.
십톤짜리 멍텅구리배 같은 이 섬을 만나려면, 당신 몫의 섬을 만나려면,
당신은 몇 번이든 길을 되풀이해서 떠나셔요.
당신만의 일박(一泊)의 황토길과 바깥 세상의 철길을 뛰어 넘고 다시 소금밭 시오리를 지나……
-김종철, 오이도, 문학세계사, 1984
오이도, 비극의 한 이름
이름이 주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딘가에서 나의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강원도에 있는 한 소도시를 떠올린다. 어떤 마을의 이름은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어떤 마을의 이름은 달동네의 대명사다. 오이도, 하면 떠오르는 기억 하나. 작년 1월의 오이도 지하철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해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 94년 오이도와 대부동을 잇는 방조제를 쌓아 만든 인공호수, 시화호는 또 어떤가. 애초의 계획이었던 농업, 공업용수 공급은 간데 없이 주위 생태계 오염만 이끌다 결국 바닷물 호수로 남게 되었다. 개발과 생태계 복원에 7년 동안 들어간 돈은 1조 원대에 달한다. 그러나 여전히 시화 인근 간석지는 개발 대상이다. 최근의 오이도 선사유적지 선정과 관련, 수자원공사에서는 개발 지역은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가히, 비극적으로 떠올릴만한 이름들이다.
4호선 한 끝 오이도 역에 내리자마자 계단 주위부터 살피게 된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공사 중 딱지를 붙이고 서있다. "시설물 부적격 판단을 받아 시설 수리 중…양해 바람…".
섬이 아닌 섬
이 섬으로 가려면 바다를 찾지 마셔요. 물 없이 떠도는 섬, 같은 바다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그지 않는 섬, 이 섬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당신이 찾는 바다 때문이어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烏耳島). 이름은 섬이지만, 육지와 이어져있다. 일제시대, 일인들이 염전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은 후부터라고 한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 20분 정도 갔을까. 너무도 싱겁게 바닷가와 만난다. 아니, 바다가 보이는 갯벌과 만난다. 늦은 오후건만, 아직도 해가 높다. 방파제 주변에 매어있는 배들은, 오늘 발 적셔줄 새로운 바다를 기다리고 있다.
남한 땅 해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군 초소들. 방파제 안쪽에 모래주머니로 쌓여있는 디귿자 모양 초소들은 '작전지역, 접근하지 마시오'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없다. 바닷바람을 피해 초소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해산물과 소주를 벌려놓고 허한 웃음을 날린다.
서해의 비린내는 갯벌 내음이다. 조개를 캐내는 사람들에게서 진득한 흙냄새가 풍긴다. 날라오는 바람도 소금기보다 더한 끈적함으로 온몸을 적신다.
바람을 쐬러 나왔을까. 나와 함께 버스에서 내린 노인들이 소소한 언쟁을 벌인다. "물 때는 아직 멀은 거여?" "아녀, 이제 들어오잖아. 저기, 저렇게 물이 밀리면 물이 들어오는 거여."
바람에 날아다니는 바다를 본 적이 있으신지/낡은 그물코 한 올로 몸을 가린 섬을 본 적이 있으신지
시인의 말에 작은 탄성을 지른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바다. 스멀스멀 갯벌로 다가서는 바닷물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가물거리는 낙양
마침 흐린 날. 안개가 잦은 바닷가는 더욱 부옇기만 하다. 황금빛으로 높던 태양이 점점 추락하면서 달아오르고 있다. 조수는 달과 관계가 있다던데, 마치 해가 바닷물을 지휘하는 것 같다. 저 끝에서 붉어지는 해가 떨어지면서 방파제로 물이 밀려온다.
"안 나가?" "으잉, 오늘은 안혀." 작은 고깃배에 어부들이 오른다. 바닥에 쩍 붙어있던 배들은 한자리에서 물 위로 오른다. 갯벌을 배회하던 새들도 갈 곳을 찾아 선회를 반복한다. 고깃배는 어느덧 방파제 끝까지 나아갔다. 배가 수면에 닿으려는 해와 만날 무렵, 돌연 채 지지 않은 해가 실종됐다. 수면 위 안개는 해를 먹어버리고, 달아오르던 붉은 바다는 이내 잠잠해진다. 노을도 어둠도 없는 저녁 바다는 적막이다. 적막을 향해, 배들이 노를 젓는다.
내일을 다시 꿈꾸고 사는 것들은/ 너희들의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껴안고/ 눈물을 입으로 절망은 눈으로 노래하는 것밖에 없더라/ 새는 날개로 날아다니지만/ 너희들은 주기도문의 꿈 밖을 헛날고 있더라
-'떠도는 섬' 중에서
시인은 '당신 몫의 섬'을 만나기 위해 몇 번이든 길을 되풀이해 떠나라 한다. 너희들은 주기도문의 꿈 밖을 헛날고 있다며, 섬을 만나려거든 바다를 찾지 말라고 한다. 비극적인 느낌을 주는 섬의 이름에 마음 아리다가, 섬이 아닌 섬에 신기해하다 이내 잊고 바다만 바라보다 돌아오는 저녁, 아무 것도 만나지 못한 저녁, 언제 다시 길을 되풀이할 수 있을까 중얼거리며 잠이 든다.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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