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2030 힘을 내]김환태-독립영상 프로덕션 '다큐 이야기' 대표

네모난 상자 안에 기억을 담는 이야기꾼

91년 4월 26일, 구로 공부방을 가기 위해 학생회실을 막 나서는데 '따르릉'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선배는 오늘 집회에 나갔던 1학년 친구 하나가 죽었다고 했다. 나는 당장 가방을 내던지고 그 친구가 있는 신촌 세브란스로 달려갔다. 그때의 슬픔과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친구 경대
김환태 감독은 강경대 열사를 '친구'라 부른다. 91년 강경대 열사는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김환태 감독은 명지대 국문과 1학년이었다. 꿈 많고 순수했던 새내기. 하지만 둘은 얼굴 한 번 맞댄 적 없는 사이다.
"91년 5월 투쟁을 통해 저는 경대라는 친구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지치면 혼잣말로 경대한테 물어봅니다. 나 이렇게 사는 거 맞니, 하고."
91학번이라면 누구나 그랬겠지만 김 감독 역시 '막 살게 하지 못하는 무언가'로, '자신을 지탱하는 힘'으로 강경대 열사를 담아두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친구는 언제나 삶의 버팀목이 돼 주었다. 지난해 6월 완성된 다큐멘터리 '1991년 1학년'과 28분 짜리 단편 '내 친구 경대'를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열사 강경대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웃고 떠들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젊은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해는 친구가 떠나간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10주년이라 서였을까. 영화는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저는 단지 남겨진 사람들이 1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려 하는지를 담고 싶었어요. 선생님, 웹 기획자, 노동조합 상근자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91학번 10명의 삶을 통해 강경대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거죠."

91년,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91학번. 그들은 어느새 언론에 의해 '고등학교 때 전교조 운동을 경험하고, 91년 새내기로 5월 투쟁을 겪고 졸업할 때쯤 IMF 실업자가 된' 불쌍한 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김환태 감독도 역시 그 91학번 중 한 사람이었고, 기억은 오래 지속되었다.
"'1991년 1학년'이라는 작품은 2년 가까이 작업했어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혼재되어 있는 옛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 힘들더군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랬고, 영화의 내용과 기술, 재정적인 부분 모두요. 마지막 장면에 저까지 포함해 11명이 다같이 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안 됐고……."
하지만 91년 뜨거운 봄의 기억은 10년을 훌쩍 넘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 군대에서 제대했을 때만 해도 김 감독은 뭘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막연히 노동 현장으로 들어가겠다던 생각도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그때 불현듯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으로 맨 처음 떠오른 건 역시 경대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동호회, 프로덕션을 통해 영상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00년 6월 독립해 '다큐이야기' 집단을 만들었다.

'파업전야'와는 다른 다큐영화
"95-6년 인디포럼 등을 접하면서 다큐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파업전야'와 다른 영화의 가능성을 본 거죠. 그러려면 프로덕션에서 형식적인 기술을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내용의 중심은 잃지 않으려 했고."
운동으로서의 다큐 영화. 그게 김 감독이 생각하는 중심이었다. 영상매체에 관심 있는 후배들을 데리고 대여섯이 독립영화프로덕션을 차렸다. 시작도 그랬지만,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은 없고, 전문적인 영역이 나뉘지 않아 할 일은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작품만도 3가지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다룬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가제)' 연출, 기지촌 여성의 삶을 다룬 'Let me speak' 프로듀서, 여성부의 호주제 폐지 영상물 제작까지. 틈틈이 제작비 마련을 위해 웨딩 촬영까지 뛰어야 하는 판이다.
"독립 영화에서 다룰 만한 내용이 방송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어서 정체성 고민이 되죠. 대신 저는 다양한 영역을 고민하고 싶어요. 방송과 달리 다큐 영화는 길게 바라보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알려지지 않은 열사들의 죽음을 다루는 기획은 오래 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잘 알려진 열사들의 죽음 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단다. '죽음'이라는 모티브를 완결 짓고 싶어서다.

몽상가의 꿈
"관객을 많이 만나고 싶은데,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어서 문제예요. 상영회 만으로 비용 충당이 안 되는 구조니까. 비디오 제작을 해도 50개도 채 안 팔려요. '푸른 영상'처럼 회원 체계를 두거나 KBS '열린 채널' 참여로 지원을 받는 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몽상가의 아주 현실적인 고민이다. 김 감독은 fantast21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 올 초 '다큐이야기' 사무실 게시판 맨 위에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라고 적어 놓은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층위의 고민에 접근해 들어가고 싶다는 것. 하지만 그런 몽상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내용을 생각할 때뿐이다.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는 젊은 이야기꾼의 소임을 가슴에 새겨, 네모난 상자 안에 새 시대, 새로운 희망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 감독도 리얼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순수했던 분노의 기억을 잃지 말자.'

다큐이야기: www.docustory.com

대학생신문 황예랑 newseditor@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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