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노동조합의 역사(10)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과 노태우의 비자금 파문
미국은 1995년 한국차의 미국시장 점유율과 미국차의 한국시장 점유율의 불평등을 문제삼아 본격적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장개방 압력을 해 온다. 그 당시 한국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9%인데 비해 미국차의 한국시장 점유율이 0.17%에 불과해 그 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95년 대미무역적자는 70억불에 이를 전망이었다. 특히 농산물의 수입개방 압력은 심각할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이 더 이상 대미 흑자국이 아니기 때문에 대미통상협상에서도 이를 무기화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굴욕적 태도로 협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한편, 정치권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부정축재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하고 남은 돈이 1,700억원이라고 발표되었다.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모든 세력과 노동조합들은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 소지를 일소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노태우와 그와 관련한 사건들을 처벌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하여 이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도둑놈의 구속을 촉발하는 사건이 된다.
우리의 희망 민주노총 드디어 출범하다
19995년 11월 11일 노동자들은 연세대에서 드디어 역사적인 민주노총 출범을 위한 대의원 대회를 가졌다. 총 대의원 366명중 328명이라는 압도적인 참석으로 대회선언, 강령, 규약을 제정하고 권영길동지를 초대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본격적인 대정부, 자본 투쟁을 할 조직적 중앙지도부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이후 김영삼 정부의 안기부법·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 정치적 총파업을 만들어 내면서 민주노총의 위력을 발휘한다.
96임투와 자본의 단협축소에 대항한 보충협약 투쟁의 시작
96년 3월 8일 중집에서는 95년 단협에서 신설한 보충협약 요구안을 노사간 가장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결정한다. 3월 22일 대의원대회에서 96임투 요구안은 확정된다. 3대 집행부때 자본의 억지에 의해 중단 되었던 단체협상이 보충협약이라는 이름으로 조합원들의 가슴에 깊히 새겨지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또 다시 시작된다.
임금요구안과 보충협약안
96임금 요구안은 95년까지의 최저생계비(최소한의 건강과 체면 유지 정도의 문화생활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의 기준을 탈피하여 표준생계비(현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데 드는 비용) 으로 전환하는데 의의를 두고, 기본급 99,000원등과 근속,가족,체력단련수당과 상여금에 OT 15시간 추가를 골자로 한 통상임금의 범위로 산정하였고 보충협약은 미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압력에 맞선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에 중심을 두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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