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주최 국제세미나
"국제통상협정과 문화다양성"이 문화계에 남긴 과제는?
지난 15일(수)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국제회의실에서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세문연) 주최로 열린 국제세미나 "국제통상협정과 문화다양성"은 문화계에 다양한 과제들을 안겨주고 끝났다.
문화계에 남겨진 과제가 특히 도드라져 보였던 것은 향후 1년 안팎의 기간 동안 굵직한 국제 통상협정 일정이 남겨져 있는 상황에서 세미나가 개최됐기 때문이었다.
관건은 역시 '인식'의 문제였다.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문화부 문화산업국장과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이 나란히 불참한 가운데 대신 참석한 문화부 사무관과 외통부 외교관은 경제논리적 인식과 문화논리적 인식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행정관료들의 처지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경제논리를 강조하는 측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것은 역시 '국익'이다. 문화적 다양성이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문화시장을 개방해도 된다는 논리다. 또, 어떤 상품이든 개방을 하면 생존을 건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의 질이나 서비스의 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좀 더 세련된 경제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문화계의 고집 때문에 풀리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이는 문화적 예외의 허용범위를 약간 줄이는 대신 경제적 이익을 대폭 얻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과도 밀접하다.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문화적 예외나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절한 개방과 적절한 '빅딜'감각을 갖춰야 국제화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하면서 보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약간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논리에서 볼 때 이런 논리들은 모두 단시안적일 뿐이다. 문화에 내재한 공공성을 무시하는 발상이고, 문화획일화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는 전도사일 뿐이다. 이들은 문화시장이 조금씩이라도 개방되면, 부정적 효과가 점차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을 염려한다. 이 나라의 개방 사례가 저 나라를 압박하는 근거가 되고, 1%를 물러나면, 또 다른 1%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 국제 통상협정의 생리라고 보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막대한 이익이 현실화될지라도 문화적 정체성을 잃은 문화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고, 헐리우드처럼 대자본을 소유한 문화자본이 소자본을 잠식할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의 생리라면 결국 국내 문화산업은 설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화산업이 설자리를 잃으면 문화산업을 떠받치는 예술분야의 몰락이 뒤따를 게 뻔하고, 결국 우리 문화의 기반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몇몇 대자본이 양산한 문화가 사람들의 의식을 통제하고 인식을 지배하게 되면 경쟁력의 원천인 상상력도 고갈되어 장기적으로는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사회 전체의 발전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문화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문화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자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및 문화계 활동가들은 이러한 논리적 전개의 흐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문화적 논리를 설득해 낼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와 관련해 16일 출국을 앞두고 민예총 등 문화계 활동가들을 찾은 이반 베르니어 교수와 로버트 필롱, 루이스 바숑 씨는 캐나다처럼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식 루트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처럼 NGO의 활동이 활발한 국가에서는 이런 방식이 유용할 수 있을 거라는 애정어린 충고였다. 그러나, 그 전에 문화적 저변 확대, 문화적 사회적 위상 제고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함께 한 활동가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문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길이 결국은 문화예술의 사회적 '힘'을 보여주는 길임을 깨닫게 되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겨져 있음을 각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일문화정책동향 안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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