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대강당에서는 "국제통상협정과 문화다양성"이라는 제목의 국제세미나가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주최로 열렸다. '연대회의'는 5월 7일 출범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New International Instrument for Cultural Diversity, 이하 NIICD)'의 구성을 주도하고 있는 캐나다 라발대학의 이반 베르니어(Ivan Bernier) 교수를 초청하여 이번 세미나와 초청강연회 등의 행사를 준비하였다.
세미나는 이반 베르니어 교수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국제무역법과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이반 베르니어 교수는, "실제 문화부문에서 시장개방을 약속한 국가가 선진 4개국(미국, 일본, 뉴질랜드, 이스라엘)을 포함한 19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문화를 일반상품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역과 문화의 관계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과 문화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하며, 이는 세계무역협정(World Trade Organization, 이하 WTO) 내의 상업적인 틀이 아니라 "WTO 이외의 제도와 규범"을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번째 발제자인 노재봉 박사(대외경제정책연구원)는 '경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스크린쿼터는 보완책을 마련한 가운데 점진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화의 번영을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며, 만약 문화라는 특성만을 강조해서 문화상품의 독점적인 지위만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심광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는, 헐리웃 영화가 현재 세계영화의 85%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시장의 개방은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미국영화에 의한 영화시장의 독식을 방치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또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수입규제정책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또한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경쟁의 공정성을 유지키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토론은 자연스럽게 스크린쿼터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원용진 교수(서강대 신문방송학과)와 '캐나다 문화예술단체 모임(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이하 CCD)'의 로버트 필론(Robert Pilon) 부회장은 각각 토론을 통해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의는 방송, 애니메이션, 음반 등 시청각분야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스크린쿼터를 영화산업에 국한되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되며", "추상적인 경제논리를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고, 최소한의 균형유지를 위한 쿼터제도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답변에 나선 노재봉 박사와 토론자인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는 스크린쿼터제 유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노재봉 박사는 다시 한 번 '경쟁'을 강조하면서, "한국영화의 발전은 스크린쿼터제에 있기보다는 소재의 다양성, 영화인등의 자세, 노력 등 한국영화에서의 기술혁신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언급했고, 최병일 교수 역시 "스크린쿼터제의 준수는 한국영화의 질적성장 때문"이라며 따라서 스크린쿼터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영화인들의 시각과는 크게 차이나는 것이었다.
반면 심광현 교수는, "헐리웃 영화의 세계지배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경쟁논리는 '깡패논리'에 가까운 것"이라며 '공정한' 경쟁은 무조건적인 개방이 아니라고 지적하였고, '유럽시청각감독협회(Federation of European Audiovisual Directors, 이하 FERA)'의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쎄씰 데스프링어(Cecile Despringre) 또한 "적당한 보호조치 속에서 오히려 국제경쟁은 더욱 자극될 수 있다"며 문화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이 문화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서비스협상의 현황을 두고도 발제자, 토론자간에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최병일 교수는 이반 베르니어 교수의 발제에 대해 "현재 구체적인 개방약속을 하지 않은 것은 서비스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최근에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이제는 개방을 하는 단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반 베르니어 교수와 쎄씰 데스프링어 자문위원은 "캐나다가 체결한 18개의 양자간투자협정에서 문화상품과 문화서비스는 예외조항"이고, "프랑스의 문화예술가들은 정부가 문화와 관련한 어떠한 자유화 이행약속을 하지 않도록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문화, 서비스의 개방이 앞으로의 '추세'라는 입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세미나의 주제이기도 했던 '국제통상협정과 문화다양성'에 대한 토론 또한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이종회 집행위원은, "WTO에 반대하는 전세계적인 흐름은 결코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윤보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를 바라는 것"이라며 문화다양성을 매개로 문화를 무역의 질서에서 '떼어내는' 것에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노재봉 박사는 원칙적으로 문화다양성이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병일 교수 또한 "문화다양성은 의문의 여기가 없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어떠한 방향성인가가 문제"라며 "스크린쿼터제가 과연 한국영화를 보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화제작자를 보호하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해 다시 한 번 스크린쿼터제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이반 베르니어, 쎄씰 데스프링어, 로버트 필론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반 베르니어 교수는 "공동체의 문화표현은 단순히 상업적인 잣대로 잴 수 없고", 따라서 모든 문화문제가 (상업적인 잣대가 아닌) 문화적인 잣대로 재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문화적 규범을 만드는 것이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이며, 여기에 공동체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밝혔다.
또한 세미나의 마지막 발언을 통해 로버트 필론 부회장은 "진정한 의미의 문화교류는 자국의 생산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후, "스크린쿼터제 등의 지원정책이 폐지되어 자국의 생산물이 없어진다면 수출할 것이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문화교류가 불가능한데도 전세계적으로 지원정책의 폐지가 일어나고 있다"며 시급하게 국제연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체적으로 입장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 세미나였다. '경쟁와 효율'을 주장하며 문화다양성의 강조가 경쟁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문화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입장이 존재한 반면, '문화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교류가 인류와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입장의 대립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문화를 그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이윤창출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한 이러한 대립은 결코 해소될 수 없으며, 문화다양성을 지켜내고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운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세미나였다.
'우루과이라운드(Uruguy Round)'와 'WTO뉴라운드'를 거치면서 문화는 이제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문화의 획일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다양성과 문화정체성의 파괴가 가져올 위험에 대한 경고와 이에 대한 대응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현재 한일투자협정이 국회비준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한미투자협정,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이 준비되고 있고, 서비스협상의 진행은 당장 내년까지 개방의 정도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소위 '경제학자'들과 정부의 대책은, 이날 세미나에서도 확인한 바,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마저 부재한 채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대회의'는 이후 문화를 무역의 논리에서 분리시키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싸움을 조직하는 한편,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의 창설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문화연대 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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