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이 놈의 세상 한꺼풀만 들춰보면…"

최인석 소설가, 자본주의 현실에 대들며 글쓰기..."진보정당 진출은 중요한 과제"

이광호 madger@kdlpnews.org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자신의 증오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한 문장 안에 등장시킨 형용사의 숫자는 엄청나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 갑갑하고, 더럽고, 야비하고, 치사하고, 잔인하고,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현실. 물론 여기서 현실은 모든 것을 수량화시키고 교환가치로 환산시키고, 그 가치의 유일한 잣대가 ‘돈’인 자본주의 사회이다.

‘나의 소설론’에서 그는 “(이런) 현실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예술은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물으면서 “현실에 갇힌 예술이 아니라 현실을 해방시키는 예술”로서의 문학과 소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기자는 소설가 최인석(49)의 이런 ‘비소설적 선언’보다 그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

80년대 문학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당시의 문학이 예술적 완성도보다는 운동의 대의 또는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훨씬 중요시했던, 그래서 문학이 숨막혀했다는 것이었다. 반작용으로서의 90년대 문학에 날아갈 비판이 짐작된다.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단절시키고 시선이 개인 내면으로만 향함으로써 인간을 탈정치화시키고 파편화시키는 문제 등등….

80년대에 소설 작품을 발표해서 지금까지 최인석 문학의 미덕을,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한 문학평론가 홍기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절대악을 상정, 전선을 손쉽게 구획하던 80년대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자기 응시의 성찰성을 놓치지 않았으며, 자아탐구라는 미명 아래 <나-너>의 관계성을 훼손하며 내면으로 침잠해버리는 최근의 경향 속에서도 바깥의 풍경을 의식 내에 꾸준히 비추고 있다.”


우리가 그를 만난 곳은 5호선 둔촌역 1번 출구였다. 거기서 우리가 향한 곳은 그가 사는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그런데 병풍과 아파트는 왕복 6차선 도로에 의해 갈라져 있었다-일자산. 일자산 능선은 서울과 하남의 경계를 이룬다.

산은 녹음을 향해 푸르러가고, 그 푸르름 위에 엷게 덧씌워진 흰색은 아카시아꽃이었고, 바람없는 실내의 담배연기처럼 주변을 휘감아 돌고 있는 것은 아카시아 향기였다.

우리 일행은 둔촌동 사람들의 아침 운동을 위해 준비된 듯한 운동기구들 옆에 있는 산자락의 등받이 없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6차선 도로를 달려대는 차소리만 빼면 지금까지 인터뷰 장소로는 제일 운치와 여유가 있는 곳이었다.

시원한 캔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면서 시작된 것도 좋았고.
“소설 쓰는 분이 문학 이외의 주제로, 그것도 정당 기관지에 정치나 사회 문제를 ‘비문학적’ 방식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문학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하면서 “나도 글쓰는 사람 이전에 투표도 하고 노사모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하는 시민입니다. 어색할 것 뭐 있나요.” 시작이 좋다.

노사모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진보정치>가 소설가를 만난 이유는 정치적이었다.

담당 기자-소설가 최인석의 열렬 독자-가 그를 섭외하던 장면으로 잠깐 무대를 옮겨보자.
“최인석 선생님이시죠?” “네.”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 서명을 안 하셨던데.” “예 나는 그런 것 안 합니다. 97년에 권선생을 찍었어요.” “올해는?” “이번에도 권선생님 또 나오십니까?” 그리고는 날짜와 장소가 잡혔다.

한 생각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거의 ‘싹슬이’로 노문모 서명에 참여한 것을 보고 어디 안 그런 사람이 없나 찾아보자는 것이 기획의도였으니 정치적일 수밖에. 결과는? 일단 미뤄두자.

“대학 생활이 시시해서 그만 두셨다고 했는데, 그때 읽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책을 읽고 고등학교 때부터 품어왔던 의문이 풀어질 것 같았다는 글을 어디에 쓰셨던 데요.”

“제가 중학교 시절 때까지만 해도 부모나 선생님들, 그러니까 어른들의 말에 거역을 할 수 있다는 거는 상상을 못했어요. 복종말고 다른 게 있다는 걸 꿈도 못 꾼 거죠.” 그런 그가 중3에서 고1로 넘어가면서 오로지 순종의 대상이었던 어른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그가 제도로서의 강력한 불신을 내뿜은 곳이 학교. 그가 당시에 정돈된 철학이나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많은, 그 시기의 학생들도 그러곤 하니까.

박통 치하 세상에 대한 불만, 주변 어른들의 행태에 대해 분노한 그가, 어른들이 자신들이 만든 세상을 통해서 아이들을 그 틀에 맞추기 위한 방편으로 학교를, 교육을 이용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문학소설을 읽으며 지내던 그가 마르쿠제, 프롬 같은 사람들이 쓴 책을 접하면서-간결하게 소개 정리해 놓은 것들-기존의 체제가 대중들에게 끊임없는 욕망을 주입하면서 체제 내화시키는 ‘전략’을 알아챘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어른과 자신이 속해있던 제도로서의 학교에 대한 깊은 증오가 책을 매개로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그것으로 전화됐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50줄에 들어선 아직까지도? 그가 한 문학지에 인터뷰를 한 것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아직까지도 이러한 생각은 유효하다고 느껴.”

<작가세계>에 실린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다.
“지금 여기의 삶이 지겹고 절망적이다. 정보화니 생명연장이니 떠들어봐야 나의 내부에 드리워진 절망감은 부정할 수 없다. 변화의 혜택이 일부에게만 주어지고, 대다수는 지금 이대로 비참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의 펜이 세상의 모순과 폭력성을 묘사할 때 더 힘차고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는 어떤 평론가의 얘기는 최인석 방식의 세상에 대한 치열한 ‘대듬’을 표현한 게 아닐까.

그는 ‘노동운동’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대학을 그만두고 제대했을 때는 박정희 시대의 막바지였던 77년. “종이인지 글자인지 구별도 잘 안 되는 영역본, 일역본 책”을 읽으면서 그는 공감을 많이 하게됐다. 레닌도 읽고 ‘지하’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던 친구들도 만나면서 그는 “함께 하자”는 ‘존재이전’의 제안을 받았다.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은 자신의 내면과 날카롭게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맑시스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상과 사람을 불행에서 구해내는 것은 유일한 길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생각한 젊은 최인석은 “굉장히 고민했다.”

그는 웃으면서 “정말 고민했다”고 거듭 말했다. “근데 그게 안 되대요.” 첫째, 겁이 많아서. 둘째, 단순하게 그게 아니고, 잘할 수 있을까, 내 안의 글쓰기 욕망은 어떻게 하고. 결국 그는 글쓰기를 선택했다.

현장을 선택한 친구들은 그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그들의 사심 없음, 정신의 높이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나를 이제까지도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 힘을 가지고 그가 일상적으로 맞서 싸우는 대상은 바로 ‘돈’이다.
“돈에 지면 예술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망가집니다. 매일 쓰면서 매일 부딪치는 문제죠. 아직 내가 돈에 지지 않았다면 내 맘 속에 기둥으로 남아있는 그 시절 친구들의 덕분입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돈의 그물망을 벗어나 있는 중요한 큰 흐름이 있는데 세상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물망을 벗어나 있는 소중한 것들. 그것을 위해 그가 지난해부터 하고 있는 일이 ‘쪽방 동네’ 취재다. “이 놈의 세상 한꺼풀만 들춰보면 그 토대가 뭔지, 기초가 뭔지를 알 수 있는데 세상이 그걸 막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닐테니까.

기자는 지금 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원고 매수는 다 채워져가고 있는데 그가, 웃으면서 말했던 ‘찐한 많은 얘기’들을 더 이상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뿐 아니라 모든 글을 쓰는데 중요한 것으로서의 ‘자기 생각’, 80년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자기가 겪었던 개인적 마디-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회의, 사회주의권 몰락 당시 느꼈던 막막함, 전일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인간을 글쓰는 노예, 신문 만드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체제에 대한 분노, 기든스의 제3의 길에 대한 조롱 등-들, 미국과 우리가 열심히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생각들 등등.

이제 마지막으로. “노무현은 우리 정치판에서 희귀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희귀성은 긍정성을 바탕으로 한다. 노무현 바람의 긍정적 영향 가운데 하나로 진보정치의 지형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의 확대를 들고 있는 그가 올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당의 정치적 진출은 아주 중요한 과제”라는 말로 대신한다.
[ 87호] 5.13 ~ 5.19


태그

최인석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