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이 대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한 직후, 죽은 박정희와 싸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신독재 종말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부마항쟁’의 주역인 부산, 마산 지역 민주단체들은 물론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구경북지역의 민주단체들도 나섰다. 그리고 2000년 7월 기념관 건립 부지가 서울 상암동으로 예정되면서 단체들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특히 국고를 지원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 사회단체들의 반발은 물론 국민적인 반대여론 또한 거세졌다. 단체들의 성명서에 이어, 일간지들 역시 사설 등을 통해 “박정희 기념관 건립 안될 말”이라면서 박정희 기념관이 “국민혈세 먹는 하마”라고 사업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는 나아가 박정희 흉상을 철거하고, 파고다 공원에 걸려있는 박정희의 친필 ‘삼일문’ 현판을 철거하는 등의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2000년 9월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박정희 기념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며 박정희 기념사업반대토론회 등을 개최하여 박정희 기념사업의 부당성을 알려왔다. 또한 2001년 2월부터 1인시위가 이어졌다. 문인, 예술인, 교수 등이 참가한 시위는 11월30일까지 무려 190일 동안 계속됐다. 2002년 1월 사업회가 몰래 공사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자 반대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편 사회당은 박정희기념관에 대한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시장과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맺은 부지 협약 파기를 주장했다. 사회당은 기념관 사업에 대한 지원금 200억원을 즉각 환수할 것을 촉구하며 국민 다수의 의견을 물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사업에 이 재원을 쓸 것을 제안하는 대국민 캠페인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회당 기관지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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