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아프다

반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가 있다. 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그는 무어라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음절들을 연속적으로 내뱉는다. 그가 말하는 것인지, 텔레비전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빌어 소리들을 내뿜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경직된 얼굴 근육 가운데 입만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땀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흐르는 적막. 섬뜩한 공포를 느낄 때쯤 광고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이' 펼쳐진 길을 따라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떠나는 남자를 멀찍이 비춘다.

모 회사의 카드 광고다. 카드 빚 때문에 살인까지 태연히 자행되는 사회에서 카드회사의 광고는 각종 전략을 바탕으로 누구도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도록 닦달하고 있다. 이 광고도 나름대로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몇 년 전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출판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느림'에 대한 찬양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남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더 바쁘게 사는 것이 성공하는 지름길인 현대사회에서 속도에 쫓기며 살지 말고 여유롭게 거리도 걸어보고 포도주 한 잔에 생을 음미해보라며 조용히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적지 않은 사람이 공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증식 속도를 광속으로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이 존재의 의미인 자본은 모두가 느리게 사는 것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다. 이 광고는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날' 자격이 있으니 '즐기고 싶으면 뼈빠지게 일하라, 그러나 일만 하지말고 소비하라'는 자본주의의 이율배반적 계명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만든' 광고이다.

지난 4월에 옥포의 대우조선 노동자들이 서울로 상경하여 집회를 열었었다. 그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 이것은 건강식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임금을 인상하라는 요구도 아니고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사내복지시설을 확충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바로 건강하지 못함을 강요하고 있는 노동과정에 대한 항의였다.

최근 2백 50여 명의 대우조선 노동자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직업병 진단을 받았다. 근골격계질환은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반복 동작에 의하여 근육, 관절, 혈관, 신경 등에 미세한 손상이 발생되고, 이것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의 예방을 위해 한 시간에 10분 정도의 휴식과 근육의 스트레칭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1백여 년 전에 이미 간파했듯이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려는 자본의 노력은 잔업과 철야근무의 확대, 휴식시간의 감소, 작업밀도의 증가로 드러난다. 최근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타고 온 노동과정 유연화 흐름은 더욱 급격하게 노동강도를 강화하였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실업의 위협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해야 했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심신이 받는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마저 박탈당했다. 하기는 직업병을 진단 받은 노동자들의 병원출입 여부에서부터 밥을 몇 끼 먹는 지까지 보고하도록 주위 병원에 공문을 보냈다는 회사의 '친절' 앞에서 어찌 감히 '여유'를 요구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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