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가 교육현장을 파먹고 있다

1. 평준화 해체공방과 자립형 사립고 문제 - 평준화를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는 저의는? 2. 상아탑의 이윤추구 조장 - 산업교육진흥법 - 개같이 벌으랬다! 대학에서 돈 벌자~~ 3. 교사의 비정규직화 - 교단에 몰아닥친 비정규직 폭풍

김대중 정부 들어서부터 교육은 온통 '시장'과 '선택', '다양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도배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BK21, 국공립대 구조조정, 학
부제…. 교육현장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갈아엎을 만한 이런 교육정책들은 하나
같이 시장과 기업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학교
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이다. 자본의 이윤논리가 교육현장을 파
고들고 있다. 그 결과는 학교현장의 파탄과 교사노동의 피폐화, 그리고 교육
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문제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교육의 불평등
보다는 효율성이 먼저라며 교사들의 비판에도, 학생과 교수의 비판에도 모르쇠
로 일관한다. 급기야 작년 '교육의 목적=인적자원'개발이라는 극단적인 경영논
리로 교육을 도구화하려는 계획안 마저 입안되었다. 활용과 이용, 이윤추구만
을 중시하며 교육본연의 목적을 쏙 빼어가려는 정부의 교육개악의 행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철저하게 수익성논리에 입각하여 노동자와 그 자녀들을 자본
의 끝없는 수익성경쟁으로 몰아갈 교육현장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이고, 교육
민영화(사유화)를 축으로 한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실상과 전모는 그다지 알
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집중진단은 바로 이런 교육문제다. 귀족학교의 등장을 알리고 중·고등교
육의 입시기관화를 부추길 평준화 해체 공방과 자립형 사립고 문제, 대학에서
연구와 지식의 상품화를 부추기고 대학을 기업이 지배하는 곳으로 만들려
는 '산업교육진흥법' 문제, 그리고 교사노동의 비정규직화 문제를 중심으로 자
본의 신자유주의가 파먹고 있는 교육 현실을 집중 조명하였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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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준화 해체공방과 자립형 사립고 문제

평준화를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는 저의는?


손지희(서울 불광중학교 교사)

무엇이 문제인가?

공교육의 사명이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급기야
결과의 평등까지 가져오게" 만드는 데 있는 게 분명하다면, 평준화 정책의 유
지·강화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이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게 만드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누군가는 고교평준화 제도를 두고 우리 교육에서 보기 드물게 '내성이 강한'
정책이라고 평했다. 해마다 바꿔대는 입시제도에 비하면, 30년이란 세월을 버
텼으니. 상황은 달라졌다. '끈질기게 버텨온 저력'을 조롱하듯 평준화는 위기
에 봉착했다. 간간이 불만이 제기된 건 분명해도 이토록 전면적으로 '평준화
해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적은 없었다. 이는 현재의 거만한 신자유주의 흐
름과 낯짝 두꺼운 우익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상의 문제는 평준화의 축
소나 제한이라는 "평준화 정책의 위기"임에도 평준화가 모든 교육문제의 원인
이라는 식의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평준화 자체가 코너에 몰려 있다는 데 사태
의 심각성이 있다. 평준화 해체론자들은 평준화를 교육형평성을 저해한 주범이
라고까지 이야기하는가 하면 교육권의 발현을 가로막는 정책이라는 이유를 들
어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작자도 나타났다.
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것은 1973년부터이다. 잘 아는 대로 개발독재시기의 정
책이다. 경기고->서울고->… 따위로 삭막하게 서열화된 고등학교 체제가 인간
의 등급을 결정하면서 낳은 부작용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었고 고등
학교 교육기회 확대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마침 정통성 확보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박정희정권은 '교육'을 통해 이를 해소해보려 했다. 이런 것들이 맞
물려 입안, 실시된 정책이 바로 고교평준화다. 평준화의 '이념형'에 견주어 보
면, 선심성과 정치문제를 우회시키려는 데서 출발한 평준화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평준화의 정책적 목표가 학교간의 격차를 '없애거나 혹은 줄이는
데' 있는 게 분명할진대, 현실의 평준화는 이에 한참 못미치는 꼴이었음이 확
실하다. 학교간의 격차를 유발하는 근본 요인들에 대해 정공법을 구사하지 않
았다. 이에 대한 의지는 평준화 정책입안자들의 머릿속에 아예 없었는지도 모
른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뺑뺑이' 배정에 의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분포
를 학교별로 '평준화' 한 것이었다. 물론 '뺑뺑이'는 학교 간 격차 해소를 위
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학교간의 격
차와 관련된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거나 대단히 무능했다는 데 있
다. 학교간 격차는 사실상 경제적 격차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고, 이는 '역
차별'을 해서라도 해결해야 마땅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대단히 미온적인 방식
만으로 평준화를 시행해 놓고 이제 와서 평준화에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돌리
려 든다.
많은 허물을 간직한 채로도 평준화를 버티게 해 준 힘은 무엇인가? 원색적 공
격 속에서도 여전히 60%가량이 평준화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경기도 내
비평준화 지역에선 평준화를 도입하려 애써 왔다. 이는 평준화 정책이 갖는 긍
정성을 엿보게 해준다. 그리고 비평준화 지역의 주민이 겪은 고충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일깨워준다. 현실이 이러한 대도 평준화 해체론자들은 열심히 다양성
과 선택을 들먹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으며, 어정쩡한 유지론자들은 이들
의 논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흔들리고 있다.

평준화 해체와 자립형 사립고 설립 의지
- 그 밑바닥에 있는 것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평준화 논란은 가까이는 5.31 교육개
혁안이 발표된 시기로 거슬러올라간다. '효율성'과 '경쟁력'이 유난히 강조된
개혁안에서 현재의 고등학교 체제는 기껏해야 '평균적 인간'만을 양성해낼 뿐
인 경제적 효능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더불어, '소비자'의 선택권 행사
를 가로막는 악제도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덧칠해댔다. 평준화를 비난하는 요
지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향평준화", "선택기회의 봉쇄", "다양성의 억
압"이 그것이다. 하나씩 간단히 살핀다.
학력의 하향평준화 주장은 사실상 강력하게 각인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
이 실증적 검토에 의해 지적되어온 바다. 그럼에도, 평준화 해체론자들은 '수
월성' 논의와 이를 직결시켜 평준화를 대단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매도한다. 그
러나 고등학교 교육이 이미 보편교육의 단계에 들어서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위 20%를 두고 효율성 문제를 따지는 것은 불온한 사상의 표현에 불과하
다. 고등학교가 몇몇 특출난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 바에야 누
구든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교육의 존재이유이다.
평준화를 두고 선택기회의 박탈 혐의를 묻는 것은 교육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
하게 한다. 과연, 고등학교 단계의 교육을 '선택'에 내맡길 문제인가? 정확히
말해 고등학교 교육 나아가 공교육이 '소비자의 선택'에 내맡겨도 되는 대상인
지 그 근본부터 따져 물어야 한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얽히고 설킨 교육
문제가 진정 '선택의 제약' 때문인가? 선택의 제약을 주로 문제삼는 건 '선택
권을 행사할 만큼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조금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현재의 공교육 체제 속에서도 교육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었으니 그 다음은 알아서 하
라'는 것이 할 소리인지 되묻고 싶다. 게다가 선택권이 보장되었을 때 사람들
이 삼을 선택의 기준이 너무나도 뻔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양식을 갖춘 시민
이라도, 아니 양식을 갖춘 시민일수록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를 구별하는 기준
은 분명하다. 과연 이 학교가 대학 보내기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선택권의 보
장은 교묘한 술수에 불과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선택이 만들 그림은 당연
히도 '서열화'이다. 하지만, 선택권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그 책임은 선택을
한 개개인의 몫이 되어 버린다.
지금의 다양성 추구 전략은 '새로운 학교 모형의 삽입'이다. 학교를 아무리 여
러 형태로 쪼갠다 해도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메뉴 판은 결국 한두 가지에 지나
지 않는다. 이 역시 그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획일성'의 다른 모습 아니던가?
학교다양화 전략으로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자립형 사립고이다. 자립
형 사립고는 질이 전혀 다른 학교 형태이다. 학생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 그
리고 교육과정 편성권이 학교(정확히는 사학재단)의 권한이 된다. 그럼 자립
형 사립고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이며, 어떤 사람들이 가게 되는가? 귀족학교
의 등장에 다름 아니다. 귀족과 서민을 갈라 가르치려는 발상을 부끄러움도 없
이 '다양성' 확보라며 공공연히 미화한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평준화 해
체, 서열화된 고등학교 체제, 고교입시의 부활을 가져올, 저들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이며, 자립형 사립고로부터 우리는 평준화 해체론자들이 가진 의식
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건 다름 아닌 상층 계급의 '계층 분리 욕구'이
다. 이런 분리욕구를 모든 이를 위해 존재해야 할 공교육 영역에서 관철시키려
는 것이 자립형 사립고를 필두로 한 평준화 해체 시도의 뒤에 숨어있는 심리학
이다. 한 가지 더 짚는다. 상문고 사태나 인권학원 문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바는 너무 분명하다. 문제 투성이 사립학교법의 비호를 받는 썩은 사학재단에
게 '폭넓은 자율권'이라는 칼자루를 쥐어주었을 때 그 칼이 누구에게 어떻게
휘둘러질 지를 상상해본다면?

평준화 공방 - 교육 놓고 벌이는 계급투쟁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의 위기로, 더불어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국가권력은 교
육에 대한 책임을 개개인에게 전가하고 시장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꾸
준히 보여왔다. 지금은 그 양상이 아주 극대화된 '교육개혁'의 시기이다. 신자
유주의 교육개혁은 이 위기를 뚫고 가려는 자본과 국가권력의 전략이다. 분명
히 말하고 싶다. 교육을 둘러싼 각축의 이면에는 치열한 계급간의 쟁투가 숨어
있음을. 평준화를 둘러싼 공방도 이런 맥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사람들
은 '교육'의 문제로만 생각하곤 한다. 교육의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작전은
잘 안 보이게 마련이다. 평준화 해체 시도는 공교육마저 특권계층에게 유리한
판으로 다시 짜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 다양의 이미지로 아무리 치
장한들 그 뒤에는 교육을 '사유화'하려는 의지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평준화
의 해체에 대해 '부작용이 우려되니 유지하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낼 게 아
니다. 지금까지의 평준화가 불완전한 것이었다면, 더욱 철저히 이를 강화해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다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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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아탑의 이윤추구 조장 - 산업교육진흥법


개같이 벌으랬다! 대학에서 돈 벌자~~


강신현(진보교육연구소 사무국장)

죽음을 부르는 특허

돈이 있어도, 그리고 돈이 있다고 해도 많이 없어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
다.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하더라도 반드시 산다는 보장이 없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작년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사는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글리벡을 내놓
았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유통되는 대로 월 300만원의 가
격을 내놓으라며 환자들이야 죽건 말건 으름장을 놓으며 뻐팅기고 있다. 이렇
다면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서 거덜이 나거나, 거덜날 돈조차 없는 환자는 고스
란히 죽음을 기다려야만 한다. 약이 있어도.
어떻게 이런 지경에 왔을까. 지적재산권 때문이다. 노바티스사만이 생산, 판
매 할 수 있도록 한 이 법 때문에 제약회사가 국민의 건강은 물론 이를 책임져
야 하는 국가 앞에서도 떵떵거리고 있다.

대학에 특허기업을 세운다?

서울대는 이르면 올해 6월말께 국립대로는 처음으로 교수의 직무상 발명에 대
한 특허 출원과 관리, 기술이전 등을 전담할 특허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
다(한겨레신문 2001.12.19). 특허법인 설립이 가능했던 것은 국·공립대의 특
허권 소유를 인정하는 내용의 '기술이전촉진법'과 '특허법 개정안'이 국회에
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추고자 교육인적자원부는 4월28일 특허의 상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교육진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공립대학 교수가 낸 특허는 직무발명이라 하여 특허에 대한 권리
가 국가명의로 등록되고 수익금은 모두 국고로 들어갔다. 발명을 한 교직원,
교수는 일정한 보상금을 받는 정도였다. 이런 사정으로 교수들은 개인이 직접
특허를 내는 방식으로 성과를 챙기거나 너도나도 벤처에 뛰어들었다.
산학협력단을 통해 대학에서 만든 기술과 연구의 상업화를 부추기는 이번 개정
안은 대학이 기업의 요구를 더욱 따라가야 한다는 내용 일색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학교규칙이 정한대로 연구와 기술의 상업화를 담당하는 법
인형태의 산학협력단을 둘 수 있다. 그 수입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전출금, 보조금, 지원금 △기부금이다. 게다가 △학교법인은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입(수업료, 납입금)의 일부를 대학의 산학협력단 회계에 전출할 수
있고, 기업이 대학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갖은 혜택을 다 주겠다고 한다.
곧, <그림>과 같은 형태로 '산학협력단'과 '학교기업'이 대학 안에 생기며 이
것에 필요한 재원은 국가가 지원하거나 대학의 등록금에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 산업교육진흥법 개정안에 따른 학교기업 설립 개념도


교육재정 못 늘이지만... 대신,
학교기업으로 돈 벌어라

우리나라 전체 교육재정 대비 대학지원금은 95년 7.2%, 2000년 4.8%로, 미국
(40%), 일본(23%)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 교육재정을 늘리려는 의지가 의심스
러운 정부가 몇 해 전부터 급기야 들고 나온 것이 '대학의 자율과 책무'다. 국
가가 끼면 일이 안되니까 이제 대학에서 알아서 하란다. 결국 학교기업은 대학
이 합법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산업교육진흥법개정과 '특허법인설립'은 어떤 문제를 가져올까.
무엇보다 대학지식과 기술의 상품화는 지적재산권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백혈
병환자의 이야기에서처럼 대학의 공공적 책무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이번 법안은 미국의 베이돌(Bayh-Dole)법안을 판박이 한 것인데, 미국에서는
법안시행 이후 대학연구의제의 상업화경향이 심해졌다. 재정이 지원되지 않는
학과는 문을 닫아 시장의 원리대로(?) 학과재편이 이뤄졌고, 지원을 받는 분야
의 연구는 이윤추구만을 위해 상업화의 길로 내달렸다. 이로 인해 미국은 생명
공학 벤처회사에 관여하는 교수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 대한 기업
의 통제도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대학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방기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대학
의 공적 책무보다 상업화에 목을 메도록 몰고 갈 개정안이 이대로 시행이 된다
면 우리 대학은 어디로 가겠는가. 연구의 목적은 상업화요, 교수도 돈을 위해
내달리지 않겠는가. 돈 안되고 당장 돈을 못 만들어내는 연구는 대학에서 종적
을 감출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교수의 영리행위를 넘어 대학이 돈벌이를 위해 보따리 들고 나섰을 때,
이미 비리로 차고 넘치는 대학이 어떤 비리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훤한 일이 아
닐까.
2000년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 총액은 4,678억원인데, 이월적립금 증가액은
5,292억원이었다고 한다. 대학들이 고스란히 등록금 인상분을 수중에 가지고
배를 불렸다는 이야기인데. 이제는 그 돈 가지고 기업에 투자해서 대박을 터트
리던가, 폭삭 망하던가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교비회계에 속하는 수업료나
납부금을 산학협력단에 합법적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하겠다니 말이다.

교육을 노동자·민중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한판 대결을 준비하자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학벌'이라는 거대한 상징자본을 무기로 교육기회를 갖
지 못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대는 기관으로, 한편으로 모순된 사회체제를
대넘겨 이어가기 위한 기관으로 역할해 왔다. 앞만 보고 살면서 오로지 성장
을 위한 추진력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이 대학의 사회적 역할, 교육의 공공
적 역할은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돌릴 겨를도 없이,
대학을 자본의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만 보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위풍당당 전가
의 보도를 휘둘러대고 있다. 지금 우리는 대학이 모순된 사회에 대해 발언하
고 노동자·민중을 위한 역할을 고민하며, 대학의 연구와 지식이 노동자·민중
을 위한 것이길 바란다. 공공성을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면, 권리 위에서 잠
자고 있는 교육의 공공성을 깨워 노동자·민중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한 판 대
결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지식의 접근기회를 가로막고, 대학의 공공성보다는
시장화와 상품화를 우선시하는 산업교육진흥법에 대한 싸움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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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사의 비정규직화


교단에 몰아닥친 비정규직 폭풍



하병수(경기도 구리여중 교사)



서울의 P 학교
새학기를 맞이하는 교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식교사가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한 19명중 18명이
기간제 교사였다. 학교 선생님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흔히 비정규직 교
사(주 1)는 정규교사의 출산 또는 병가등으로 생긴 결원을 보충할 때 운영하
는 제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식교사의 자리가 비정규교사로 채워지
고 있다. 이 학교만 해도 교원수가 55명 남짓하고 출산휴가 교사가 단 한 명뿐
인데 기간제 교사가 38명에 이른다.

비정규직 교사라니요?

올해 초 인천에서는 한국 기네스에 올릴만한 기록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
임용한 인천지역 사립학교 교원 199명중 195명이 비정규교사였다. 작정을 하
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비정규직이 늘어날리 없다. 인천만 이런 일
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 180여 개 사립고 중 66개
학교가 557개 학급을 늘리면서 1,100여명을 새로 채용했으나 정규직은 거의 뽑
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일은 사립학교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 성북교
육청의 경우 관내 공립학교 신규교원 105명 중 39명이 기간제로 채워진 사실
이 밝혀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정규직 교사는 폭풍처럼 밀려오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1999년 278명이던 고교 기간제 교사가 2000년에는 423명으로 급증했고, 2001년
에는 479명으로 증가해 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99년 3,199명이었던 기간제 교원수가 2000년에
는 1만 1,450명으로 260%증가했고,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는 858명에서 8,286명
으로 무려 870%가 증가했다.

학교현장에 파고든 '비용절감' '유연화'
- 비정규직 교사 확대의 맥락

학교교육에서 비정규직 교사가 늘어나고 있는 흐름은 일반노동시장의 여건변화
와 무관하지 않다. IMF 위기 이후 기업들이 신규채용 축소, 인원감축, 고용형
태의 다양화 등 노동관리 유연화를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노동시장의 여건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기업들의 대대적인 감량경영 열풍속에 비정규직 비율
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득분배구조의 악화로 20:60:20이라
는 새로운 계급비율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신빈민층 20은 바로 실업자와 비
정규직 노동자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흐름 속에서 교육 또한 예외가 아니다. 비정규직 교
사노동이 늘어나는 일은 다른 노동시장의 유연화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
다. 특히, 수요자 중심의 교육논리를 앞세운 채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교육과
정인 7차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의 변화를 엉뚱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태풍의 눈
이다. 7차 교육과정은 학생의 능력(주 2)에 따른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
는 것이 교육의 요구라며 이를 위한 정책방향으로 교사노동의 유연화와 효율화
를 추진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적은 예산으로 교사노동을 다양하게 활용하겠다
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논리는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교사를 다양하게 써
먹을 수 있도록 교사를 쉽게 채용하고 상황에 따라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교사
임용 및 노동구조의 변화를 말한다.
학생들이 지식을 쌓고 성장하는 과정은 책임감과 애정이 깃든 교사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 교육은 당장의 행동변화를 위한 채찍보다 자발적인 깨달음을 위
한 기다림과 안정적인 지도가 중요하다. 이는 교사노동이 갖는 하나의 특징이
고 흔히 교사노동을 일반노동과 구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대한 빨리 많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노동자들을 몰아대는 일반기업의 생산라인과 학교교육을 동
일시하는 자본의 발상이 학교현장으로까지 파고들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자
본의 요구에 두손 두발 다 들어주고 있다. 나아가 이런 방식의 자본과 정부의
노력은 학교붕괴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비정규직 교사확대는 공공부문 시
장화, 사유화 전략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가시화되어 정규교사의 노동구조를 뒤
틀어놓고 있다. 정규교사를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완전 계약직화 하고 정규교
사들간 경쟁구조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해주는 대표
적인 정책이 바로 성과급제와 교사의 지방직화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간다

일반사업장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교사는 이직률이 높다. 대부분 정규교사 시
험을 준비하면서 경력을 쌓거나 돈을 벌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한다. 또한 교직
과 상관없는 다른 직업을 준비하면서 얼마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이
기도 하다. 비정규직은 동일한 학교에서 3년 이상 근무를 할 수 없어 이를 공
공연하게 활용하고 있는 학교의 경우 비정규교사의 들쑥날쑥은 불가피하다. 1
년 동안 교사가 3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배움이 정상적일 수 없
다.
비정규직 교사가 학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규교사와 좀 다르다. 이것은 비정
규직 교사가 정규교사에 비해 능력이 없거나 학생관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
이 아니라, 그들의 근무조건상 불가피한 것이다. 한동안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조건이기에 결국 말썽부리는 학생이 있어도 그냥 눈감아 주는 태도를 갖게 하
고, 체계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주섬주섬 가르
치는 태도가 일반화 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교직에 대한 전망이 없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하겠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
칠 때 학생에 대한 책임감과 교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교육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비정규직 교사의 근무조건에서 이러한 태도를 갖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결국 교육 노동의 현장에 불어닥치고 있는 비정규직 바람은 학교현장에까지 깊
숙이 자본의 논리와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학
교교육에 의탁된 노동자의 자녀들, 그리고 정규/비정규를 막론하고 교사노동자
를 포함하여 전체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어차피 돈있는 집안의 자녀는 사
교육에 의존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주 1) 비정규직 교사를 흔히 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 시간강사로 부른다.
즉, 정년이 보장된 정규교사를 제외한 계약에 의하여 임용되는 교원을 말한
다. 그래서 계약제 교원이라고도 부른다.
흔히, 기간제 교원은 정규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자로 정규교사의 휴직, 파견
등으로 인해 생긴 결원을 보충하고, 학교교육상 필요한 특정한 교과를 한시적
으로 담당케 하기 위해서 운영하는 제도이다. 시간강사는 1개월 미만의 단기
간 결원 발생으로 기간제 교원의 임용이 어려울 때 임시방편으로 교과시간만
담당케 할 경우 임용된다.
주 2)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의 능력은 학부모의 재력과 동일시된다. 즉, 부
모의 재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공교육을 지향하
고 있는 학교교육은 이러한 학부모의 재력에 따른 학생들의 능력이 결정지워지
는 구조를 파괴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과 부자집의 자식이
평등하게 교육받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교육의 이념이다. 하지
만, 7차교육과정은 창의성과 다양성 교육이라는 갖은 미사어구를 사용하면서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학급편성을 달리하고, 입시에 유리한 과목중심의 선택과
정 운영 등 불평등한 학교교육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학교를 더욱 입시지옥으
로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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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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