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노동자의 힘 회원)
아직도 '소그룹 학습'을 하고 있구나
'소그룹 학습모임'을 관찰하고자 여러 군데 문의요청을 해보지만, 선뜻 자신
의 모임을 취재대상으로 삼아달라는 곳은 별로 없다. 소모임 학습 참여자나 이
를 진행하고 있는 자나 자신의 소그룹 학습이 취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
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소그룹 학습' 활동은 노동
조합 진영 내 매우 광범위하고 완강하게 지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
날 노동운동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흘러내리게 하는 발원지와 같은 것일지
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사무직이나 생산직에 관계없이, 정규직 비정규직은 물
론 노조의 크기 여부와 상관없이 '소그룹 학습'에 대한 요구 역시 점차 확대되
고 있다.
이는 '노동운동을 (한번)제대로 해보자(해보고 싶다)'라는 출발선에서 여전히
왕왕 선택하는 길이며, 또 복잡한 노동운동의 논쟁과 대립의 지형 속에서 '좀
알고, 판단해 보겠다'는 결심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소그룹 학습 현장' 바로 옆에서 들여다 보다
철학, 경제학, 노동운동사, 노동운동의 현 과제 정세 동향은 물론 맑스의 '공
산당 선언'까지 수북히 쌓인 2-30 여 권의 책을 1년 정도 학습해온 ○○○노동
조합 간부들. 공교롭게도 오늘 학습주제는 '현장운동에 관한 것'이다. 먼
저 '학습 진행자'는 글 모음집으로 구성된 책의 저자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
고는 곧바로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현재 노동조합에서 내걸고 있는 요구 중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
다. 앞서 ○○가 조합원들의 의식구조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10년 전과 비교했
을 때,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늘어난 모습 즉, 조합원들의 개인주의적 태
도 경향이 노동조합 활동의 부진함을 전부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이보다는 사
회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노동조합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87년 이
후로 우리가 열어놓은 공간으로서의 노동조합이지만, 5년 전 사업계획이나 5
년 후 사업계획 모두 똑같다."
"요즈음 회사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편하다. 노동조합은 언제든 긴장감이 있어
야 하는데, 아마도 예전처럼 견제 받지 않아서 인 듯 해. 새로운 사업을 입안
해 끊임없이 사측과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노동조합 사업으
로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펼칠 것인가 전혀 실천을 못하고 있다."
"집행부로 상근하지만, 내 스스로 현장에 내려가는 걸 겁내고 있는 것 같다.
우선 현장을 조직해야만 노동조합이 힘을 세울 수 있는 건데 말이다. 매장에
서 파트타임 청소부 아줌마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하면 '나는 이 시간 밖
에 일을 하지 못해서 파트타임 근무조건이 훨씬 더 좋다. 정규직처럼 출퇴근한
다면 집에서 할 일을 못한다.' 라고 할 때 뭐라 할말이 없어진다."
"왜 노동자는 자신의 근무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며 일할 수 없는가?
노동조합이 단협을 해서 아줌마들의 요구를 묶어내야 한다.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 실리적 경향을 비판하지만, 이는 우리에
게도 해당된다. 우리 역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로 싸울 수 있는가? 노동조
합 초창기, 조합 상근자가 조합원의 연장근로를 대신 서줬었는데, 우리 역시
조합 상근에 대해 냉철히 평가하며 현장에 내려가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발로
뛰며 현장을 조직해야 된다. 막상 현장에 다가서면 얼마든지 많은 문제를 알게
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민주노총, 연맹, 우리 노동조합 상근자 역시 마치 노동조합 활동을 노동운동
인양 사고하고 있다. 학습을 통해 대가리가 깨져서 빨리 의식전환을 해야한
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조합운동의 체계로 돌아와 활동다운 활동을 하지 못한
다. 우리 조합 내에서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바로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우리에
게도 문제는 있다. 적어도 노동조합 상근자 지도부라면, 정치조직 활동을 통
해 조합원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책에서 '계급의식'이란 말을 많이 보지만, 이를 실천으로 연결하려면 무척 어
렵다. 조합의 정치방침을 정할 때, 연맹의 방침이 인간적 친분 관계 속에 대
충 통과되는데, 계급적 원칙에 맞는 것인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어
야 한다."
소그룹학습 '진행자'에서 '소그룹학습 교육 활동가'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자
책을 제대로 읽고 오지 않는 성원에게는 벌로 '불량감자' 라고 별명을 붙여 서
로 책 읽기를 독려하고 책임을 부여하면서 운영한다. 오늘의 주제는 어려운 학
습주제가 아니라, 현장조직운동의 필요성에 관한 글이었기에, 늘상 겪는 현장
조직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애로점을 기탄 없이 털어놓았다
는 점만으로도 학습모임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 같다. 이처럼 산적한 현장
의 현실 과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라는 진지한 고민과 함께 소그룹학습 진
행자의 설명을 빠뜨리지 않으려는 성실한 모습에서 서로 자극 받으며 감도는
긴장이 느껴진다.
이제 소그룹 학습교육에 전념하여 조직하고 진행하며,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
류해야 한다. 소그룹 학습활동을 노동자교육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 담당자는 소그룹 진행자, 소그룹 학습교육을 하고자 하
는 이들이 주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교육으로 세상을 열어 가는 출발선에 소그룹 학습운동으로 다시 서자
노동자 대중이 얼마나 빨리 자신의 계급적 요구와 주장을 내걸어, 자본과의 투
쟁전선을 구축하며, 승리할 수 있는가에 따라 노동운동은 성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자 투쟁에서,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주장은, 동반자로
서의 노사관계, 노사화합을 표방하는 자본의 영향력에 휘둘려, 노동자 계급 고
유의 원칙에서 멀어진다. 97-98년 경제위기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리해
고 입법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태도, 동력의 부족으로 정리되는 총파업 철회,
그리고, 노사정 위원회로의 복귀라는 지난 현실 속에는, 국가와 자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불철저한 인식, 판단, 태도라는 문제가 놓여 있었다.
그릇된 인식은 올바른 실천을 만들 수 없고, 더 나아가 노동자 대중의 고통으
로 이어진다. 철저하지 못한 싸움, 기초가 부실한 싸움은, 목표와 방향을 잃
어 쉽사리 종결되고 만다. 곧이어, 복귀한 현장에는, 임노동 노예에게 부여하
는 강요하는 굴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군대, 경찰, 공권력이라는 물리적
폭력 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 본연의 사
고와 의식을 망망대해 외딴 섬으로 고립시켜 놓은 자본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눈만 뜨면 보고 듣는 일상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우리는 학습을 하며, 자본
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비판만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자 자본주의의 구
조와 작동원리를 배우며 저들이 숨겨놓은 착취의 비밀을 알아채 그 고리를 끊
으려는 것 아닐까?
또 창고 속에서 원전을 다시 꺼내 과거 역사를 배우며 교훈을 찾고 이를 현실
에서 어떻게 적용시킬까 라는 고민이 시작될 때, 활동은 현실과 조건에 발목
잡히지 않고 긍정적인 인식으로 나아가며 대안 마련과 극복점을 향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의 동료와 조합원은, 경쟁상대, 방패막
이 아닌 일생을 함께 할 동지로 대상이 아닌 함께 할 주체가 된다. 또, 그들에
게 고민과 긴장을 주며, 자신 역시 그들에 의해 매순간 평가받아 상호 변화 발
전할 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노동자 계급의 세계관, 세상이 성숙해 질 것이
다.
소그룹 학습운동만이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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