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설 dllp21@kdlpnews.org
1990년 피해자 1차보상,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등 학살책임자 구속, 1997년 국가기념일 제정, 2001년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 제정과 망월동 묘역 성역화.
광주문제 해결의 과정은 이처럼 더디게 진행돼왔다. 군사독재에서 문민정부, 김대중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중운동진영의 끊임없는 투쟁의 성과물로 하나하나씩 확보돼왔다. 광주광역시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4차에 걸쳐 사망자 1백54명, 행방불명자 70명을 비롯해 총 4천3백12명이 보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1980년 5월 광주의 ‘문제’는 다 해결됐는가?
5.18민중항쟁 제22주년 기념행사위원회의 조진태 사무처장(민주노동당 광주시지부 당원)은 “법적, 제도적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발포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암매장된 사체가 발굴되고 있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개입정도를 밝혀내는 것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회 청문회와 관련자 재판 등 진상규명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여전히 발포책임 소재, 미국의 개입정도 등 핵심적인 문제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광주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광주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5월 광주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노력이 피해자 보상 위주의 해결보다 더 중요하고 지적한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광주는 한국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영향을 많이 준 사건이었으며 광주의 실패 경험이 87년 6월항쟁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의미를 지적하고 “그럼에도 광주가 지역주의의 볼모로 잡혀있어 반쪽이 된 느낌”이라며 “호남과 운동권만의 기념대상에서 벗어나 지역에 관계없이 범국민적으로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광주가 제기했던 문제들을 되새기고 그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20년이 지난 현재시점에도 의미있는 과제로 남아있다. 이광일 박사(정치학)는 “개발독재의 피해를 받으며 소외돼 왔던 지역과 계층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점과 미국의 문제, 정치적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주의 등 광주가 던져준 문제는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 88호] 5.20 ~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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