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의 봄을 기다리며

3월입니다.
나무의 새순이 겨울의 삭막함을 몰아내는 이 기쁜 계절을 맞이하면서 마냥 즐거울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지난 2월 5일 강서구에 있는 시그네틱스 직장어린이집이 교사와 아이들에게 예고도 없이 철거반에 의해 무참히 부서졌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농성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한순간에 보호받을 공간을 빼앗긴 것입니다. 시그네틱스 어린이집은 노사갈등으로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자녀를 보육하는 시설이었습니다. 2001년 12월로 보육교사들은 해고되었지만 몇몇 보육교사들이 추운 겨울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무임금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하였고 구청도 회사의 시설폐쇄신고에 노사합의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예고도 없이 어린이집을 철거하였고 아침에 출근한 선생님들은 깨진 구들장과 박살이 난 문과 유리창의 잔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임시로 근처에 있는 조합원의 집을 빌려 보육하면서, 노조와 보육교사들은 어린이집 복구를 위한 모금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철거된 어린이집의 잔해를 보며 이 나라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고통받는 현실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합니다.
처음 보육시설이 탁아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일하는 엄마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보호처였니다. 어른들의 고단한 삶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은 사랑 받고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생활 할 권리가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2002년 새해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보육교사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적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아이들을 보살피며 자신의 삶을 헌신해 온 보육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보육의 발전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보육교사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사명감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해 왔습니다. 보육교사들이 있기에 일하는 부모는 마음놓고 일터로 나갈 수 있었고 아이들은 거리나 텅 빈 집에 방치되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도 한없이 퍼내기만 하고 마르지 않은 요술 샘물일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랑을 다시 샘솟게 하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보육교사들의 처우개선 요구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육환경을 개선하고 아이들과 보육교사가 함께 행복한 보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보육이 공적인 서비스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시설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의 처우를 위해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정부의 태도는 보육교사들이 스스로 나서서 요구하지 않는다면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여성부와 복지부에서는 경쟁적으로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질을 높이기 위한 이런저런 계획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는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양육하는 문제에 달려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과 청사진은 오랫동안 시민사회가 요구해 온 공공성 확보나 질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고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육서비스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보육시설의 확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육의 질적 향상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뛰어 넘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 하지만 정작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제시되거나 구체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보살피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 재교육의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법정근로시간의 준수, 휴가의 보장, 재교육 기회의 마련 그리고 일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이 필요합니다. 근무환경과 처우개선에 대한 요구는 보육의 장기적인 발전과 사회적 기능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정책도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한 두 번의 건의나 요구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루 10시간이상의 노동과 월 60만원의 저임금은 우리 사회가 보살핌 노동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이 가치관을 바꾸는 일을 보육현장에서부터, 보육교사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조직화된 힘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봄의 새순이 대견한 까닭은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일어서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요,
봄에 피는 꽃들이 반가운 까닭은 삭막한 겨울 풍경을 잊게 하는 화사한 배려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한국보육교사회는 보육이 가진 사회적 역할을 알리고 실천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습니다. 이제 보육교사들의 목소리를 모아 실천으로, 변화로, 보육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한번 더 힘찬 걸음을 시작할 때입니다.

한국보육교사회 대표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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