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노동자라면, 현실이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임을 잘 안다. 그러하기에 당대의 삶과 투쟁을 오롯이 담아낸 <파업전야>는 그 낡은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슴을 울려오는 것이다. 노동자의 삶과 투쟁이 스크린에 투사되고, 그럼으로써 다시 우리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믿음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영화, 그런 영화에 대한 목마름은 이 끔찍한 신자유주의시대에 그래서 더더욱 크기만 하다.
켄 로치의 <빵과 장미>는 그런 갈증을 확실하게 풀어준다. <랜드 앤 프리덤>, <칼라 송>, <내 이름은 조> 등의 작품을 통해 과거와 제3세계와 노동자의 일상을 탐구하던 이 사회주의자 감독은 이제 세계화시대 노동자투쟁의 화두 중 하나인 이주노동자의 투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멕시코 출신 불법 이주노동자 로자는 LA에 있는 언니의 도움으로 건물 청소부로 취직한다. 관리자의 착취에 분노하고 엄청난 빈부격차에 절망하던 로자는 서서히 노조결성 투쟁에 동참하고 노동자로 단련돼가지만, LA를 뒤흔든 해고철회 시위가 승리로 맺어질 즈음에 멕시코로 추방된다.
진부하다고? 노동자는 투쟁을 통해 각성하고 승리와 패배의 역정을 지나며 단련되게 마련이니, 이는 진부함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정작 <빵과 장미>의 아쉬움은 다른 데 있다. 왜 하필 상대적으로 힘있는 백인 남성활동가와, 멕시코 여성 로자의 사랑얘기를 중심에 놓았는가 말이다. 영화에도 나오는 '건물관리 노동자를 위한 정의 캠페인'의 멕시코 출신 한 여성활동가의 의견도 그렇다. 이 작품이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강력한 무기이고, 진보적 백인활동가들이 분명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음은 인정하지만, 굳이 백인활동가를 중심에 놓은 것은 아쉽다는 것.
극장에 걸어야 먹고사는 상업영화의 구조적 한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 아니면 백인 중심의 서구관객을 고려한 것일까? 이 안타까움은 어쩌면 훨씬 더 전투적이고 훨씬 감동적인 얘기를 날마다 만날 수 있는 한국 영화감독들이 풀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싹수는 잘 안보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영화는 깔끔하면서도 경쾌하게 노동자의 희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러니 <빵과 장미>를 '21세기 미국판 <파업전야>' 쯤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조폭시리즈가 판치는 극장가에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노동자계급의 영화를 부디 놓치지 말기를.
한편 켄 로치는 <빵과 장미>에 이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대처리즘이 저지른 끔직한 민영화 이후 철도노동자의 삶을 조망한다. 또한 <취화선>이 포함된 올해 깐느영화제의 경쟁작부문에 감옥간 어머니를 둔 가난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달콤한 16세>를 올려놨다.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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