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다른 표현이다.

문화를 기획하는 시대 21세기, '기획'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다른 표현이다.

[그림 :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그렇다.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기획의 영역으로 '공연기획'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획자가 자신이 기획하는 공연의 무대에 설 예술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가를 보려면 뒷무대를 보면 되겠다. 출연진대기실에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의 수준과 배려의 흔적을 보면, 곧 막이 오를 무대에서 예술가가 자신의 기량 이상을 쏟아낼지 아님 형식적 출연에 그칠지 점칠 수 있다. 기획은 곧 예술가에 대한 배려이다. 그뿐이랴. 기획은 곧 관객(청중)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좋은 음향설비와 조명장비를 갖추고 공연컨셉에 충실하면서도 창의력이 넘치는 무대감독의 무대연출(디자인)은 예술가에게는 물론이고 관객의 감동을 최고로 끌어올리려는 당연한 예술적 배려인 것이다. 문화를 포함한 자본주의 시장의 고객들을 붙들기 위한 마케팅 기법이 고객감동의 수준을 너머 고객졸도 차원의 개별특성화 전략인 1:1 마케팅의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CRM)에 이르면, 문화의 영역 이외에서도 배려에 상응하는 문화적 결과를 얻을 목적이 아니어도 광범위하면서 매우 적극적인 (고객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유명한 출연진을 앞세우고 초대권을 남발하여 행사당일 출입구는 비문화적 욕지기와 무질서로 장식되고 정작 주최자는 초대한 관객에 대한 배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VIP 접대에 여념이 없는 주객이 전도되는 따위의 수준 낮은 사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의당 그런 곳에서 만나게되는 예술가는 자신만의 무대에서 보여주는 높은 감흥과는 정반대로 건조하고 너무 형식적일 뿐이어서 불쾌감조차 느끼기 마련이다. '배려'를 명분 삼아 '문화와 예술'의 이름 아래 오히려 다른 의도를 도모하는 일이 자주 행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진보성'이 문화상품화를 위한 포장으로 사용된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이런 마땅찮은 시선으로 보면, 호평 속에 진행 중인 "버자이너 모놀로그" 연극조차 '너무도 솔직해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고백'이라는 세간의 격찬과 "감추어지고 왜곡되었던 여성의 性, 이젠 솔직하고 건강한 이야기로 풀어내겠다."는 연출가의 당연스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길게 배려된 신음소리 시리즈 장면은 예술의 영역에서 외설의 영역으로 진정 금기를 향해 돌진해버린 느낌이 강하다. 이런 마초의 시선으로 보면 '고난의 80년대를 살아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과 정태춘씨가 새롭게 불어오는 희망의 바람을 노래한다'고 소개하며 오는 25일 오후 7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펼쳐질 콘서트 <바람분다>를 알려주는 인터넷신문의 내용은 사뭇 황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사의 내용 중에는 '386세대들이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틈에서 자기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변화와 개혁의 주체세대로서 다시금 자리매김하기를 원하는 목소리를 재현하는 자리'로 공연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난의 80년대를 살아온 진정한 주체는 정태춘과 노찾사가 아니라 민중들이었다. 이렇게 과장된 말꾸미기가 자칫 적당한 때에 적당한 포장으로 어설픈 고뇌를 파는 낡아버린 진보예술의 퇴영을 가려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 못내 속상한다. 정말 고난의 시대를 살아왔다면 이들 진보예술가들은 바로 지금이야말로 진정 신자유주의경제와 다자간 무역협상 그리고 전 세계 민중을 폭력으로 위협하는 미국식 패권주의에 맞서 또 문화적 종의 다양성을 위한 투쟁의 자리 맨 앞에 서있어야 했음이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자리매김 했어야 할 자리, 과거의 그 자리가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 그들은 없었다. 마치 민중혼을 빼버린 좀비나 강시처럼 재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을 보기위해 여전히 내 맘에 남은 애정을 확인하러 주말엔 결국 그 자리에 있을 나지만, 이젠 우리 모두 한번쯤 그 기획이 진정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일까를 되물어보는 치밀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말이다. 문화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그 무엇일진데,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수록 풍부해지며 또한 문화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때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포장은 문화적인데 본질이 비문화적이거나 솔직하지 않다면 그렇게 왜곡되어 공유된 문화는 더 이상 우리들 삶에 아무런 감동을 선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반복되는 오류로 형성된 우리 사회의 비문화적 내성으로 인하여 더 이상 문화와 예술이 우리 사회에 감동과 사랑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김보성 (문화연대 정책위원) mehkbs@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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