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책에 대한 유감

그림 : [씨네21]Culture:TV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경제학(2) 에서

몇십년을 유유히 만화계에 계신 분들이 많은데 달랑 10여년의 '만화짬밥'을 가지고 나의 힘겨움을 얘기하기는 뭐하지만, 지난 10여년을 만화계에 몸담으며 가장 힘들었던 장벽은 만화를 저급하게 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만화 속에 한 발, 한 발 깊이 들어갈수록 만화 속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는 반대로 저급문화로 치부되는 사회적 인식은 그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고, 문화권력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은 나에게 수시로 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90년대 이후로 고부가가치라는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본 만화의 가치 때문에 어느 정도 만화를 보는 시선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뿌리깊은 냉대의 시선은 오히려 더 큰 장벽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굳이 평론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며 만화계에서 버티려고 하는 것도 그런 박탈감을 없애고 정말 신나는 만화를 보기 위함이다. 이렇게 낯간지럽게 자기고백을 하는 이유는 그간 버텨왔던 고집(?)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0일 MBC 프로그램인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라는 코너에서 만화를 명백하게 비하하는 내용이 방송되었다. '책의 날' 특집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그간 방송을 통해 인터뷰한 시민들 가운데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을 선정해, '많이 읽은 사람'이 '전혀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증정하는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책을 읽지 않는 시민 대표(?) 가운데 몹시도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만화를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접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아주 진지하게 만화를 탐독한 독자였다. 그러나 그의 태도와는 반대로 진행자와 연출자들은 단지 만화를 진지하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천박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렸다. 그가 줄줄줄 쏟아내는 만화책들은 작품적 가치가 여러 면에서 공인되고 이미 영화나 TV드라마 등으로 다시 제작되었던 작품들이었다. 허영만의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오 한강>, 김형배의 <20세기 기사단>등의 작품들과 일본만화 중에서도 <베르사이유의 장미>, <슬램덩크>, <드레곤 볼>등등 연령별, 성별, 장르별 작품들을 두루 아우르며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까지 언급하는, 사뭇 진지한 자세였다. 그러나 진행자와 연출자들은 그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한 채 만화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이 독자를 바보를 만들었다. 그 뿐인가? 방송 이후에 <느낌표>프로그램 시청자 의견란에는 만화가, 독자를 할 것 없이 오늘까지도 항의문이 빗발치고 있고, 만화단체들도 공식적인 항의문을 보낸 상태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까지 어떠한 해명도 없다. 단지 4월26일자 문화일보에서 김영희 담당PD는 "오히려 만화를 널리 소개하려고 했던 의도였는데 일부 시청자분께 잘못 비춰진 것 같다”,“좀더 열린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인터뷰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전혀 이 사건에 대한 문제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 아니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4월27일자 방송에서도 만화책을 언급하는 시민에게 만화책 빼고 책을 대라고 진행자는 말하고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문화적 취향은 개인마다 너무도 다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도 작품의 경향에 따라 또 많은 갈래가 나뉘어 진다.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만화책을 모르는 것을, 또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번 MBC의 만화비하 사태는 방송이라는 문화권력을 폭력적으로 휘두른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4월20일자 방송분에서의 처사는 다소 오락프로그램으로서, 그리고 담당자들의 취향에 의해 그러했다고 치자. 그러나 그 이후의 처사는 분명히 권력자로서의 횡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에게 만화의 유용성이나 예술성을 말하지 않겠다. 문제를 인정치 않고 오히려 만화를 널리 소개해 주려는 의도라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항의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시혜를 베푸는 양 전형적인 권력남용을 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만화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지만, 그래서 좋은 만화로 그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창작자들의 고군분투가 절실히 요구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이 문제의 핵심은 만화의 존재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만화책은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송권력에 의해 못박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만화책이 책이냐 아니냐를 규정할 아무런 권리도 없으며 규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책이기 때문에!

MBC <느낌표>프로그램의 '책을 읽읍시다' 관련 담당자들은 진지하고도 정중하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그간 방기해 왔던 과정 속에 나타난 권력남용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사회]

백정숙 (만화평론가) egogo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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