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현실에 30%쯤 타협한 얼치기 사회주의자"
김조영혜 기자 kimjoeda@e-unipress.com
▲ 하종강 씨가 소장으로 있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는 노동 법률 무료상담과 노동자 교육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어느 기자는 하종강을 '눈물 많은 투사'라 불렀다. 1년에 3백회 이상 노동교육을 다니며 노동자들을 만난 지 20년이 넘었다. 대학 1년 때 학생운동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운동과 사회에 대한 부채감'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55년 인천생. 74년 인하대 응용물리학과 입학. 현재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한겨레21』에「하종강의 휴먼포엠」, 『작은책』에 「하종강의 노동시대」연재 중. 저서로는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항상 가슴 떨리는 처음입니다』를 비롯 『노동자는 못말려』가 있음.
"전교조, 대우차노조, 전국여성노조를 돌며 3박 4일간 지방강연 갔다왔어요. 10일에 집 나와서 대전, 여수, 군산 지나서 13일 서울까지 온 거네요."
빼곡이 일정이 적힌 수첩을 보여주며 하종강 씨는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빙긋이 웃었다. 앞으로 6월 18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어제는 1시간 반, 그제는 3시간 밖에 못 잤다는 말에 놀라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이거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만나야지요. 날 만나는 사람은 1년에 한 번인데, 아니면 당장 내일 회사가 매각된다는데 내가 덜 자고 만날 수만 있다면, 만나야죠. 거절하면 지옥갑니다."
하종강 씨는 정말 지옥에 가는 게 두려운 듯 고개를 저었다. 74년 학생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렇게 20년을 넘게 살아온 셈이다. 인터뷰 중에도 하종강 씨는 우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짬짬이 시간을 아끼려는 것이다. 내일은 서울시 노동위원회 심판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해 자료를 훑어본다. 그의 공식 직함은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말고도 서울시 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이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죄다 노동자다.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불은 꺼져 있고 배고파서 밥 먹자 했더니 부를 만한 친구도 없더라고요, 내 나이 쉰이 다 되어가는데, 인생 헛산 거 아닌가 몰라요."
하지만 그의 홈페이지 '하종강의 노동과 꿈(www.labordream.net)'에 가보면 그런 생각은 단박에 떨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터부시하는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하게 되었구요. 한 선생님이 말하길 자기는 조합원이면서도 늘 주눅들어 있었는데, 선생님 강의를 듣고 어깨가 쭉쭉 펴지는 것을 느꼈답니다.'- 최00, 전교조 조합원
"강박관념이다, 평생 강박관념에 살 거다"
또 물었다. "왜 그렇게 사세요?"
그랬더니 이번엔 영화 얘기다. "뷰티플 마인드라고 노벨 경제학상 받은 존 래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있어요. 주인공은 평생동안 정신분열에 시달리며 살아요. 일종의 환상이죠. 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운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평생 내 행위가 죄없이 고통받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묻고 살 수밖에 없어요. 강박관념이죠."
그러면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까지 한다. "난 운이 좋아요. 사람들을 만나며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하고 다니잖아요. 단병호 위원장은 이번에 6번째로 구속됐는데, 난 현실에 30%쯤은 타협한 셈이죠. 전선의 맨 앞에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더 부채감을 느끼는 거고."
그는 "파업 현장에서 두 시간 교육을 마치고 며칠 후 뉴스를 보면 그 때 그 사람들이 내 말대로 열심히 싸워서 구속되어 있는데, 어떻게 부채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리하던 우편물 속에서 발견한 유인물을 끄집어낸다. "이 봐, 아직도 작은 인쇄소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1시간을 지키자'고 외치잖아."
동일방직 여공들과 평생 동지가 되기까지
그도 처음부터 투사였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그의 꿈은 대학을 2년만 다니고 유학가서 20대 박사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대표를 사단장이라 부르던 코미디 같은 세상에선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우스개 소리로 "내 이름이 종강이어서 그런가봐"하고 웃어보인다.
78년 동일방직 여공들의 똥물을 뒤집어 쓴 나체시위 사건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언론에 한 줄 보도조차 되지 않은 그 일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딱 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왜 똥을 먹고 왜 벌거벗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 물음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그 때 그 여공들은 하종강 씨의 평생 동지로 남아있다. 그는 지금도 그 동지들을 만나면 자신을 놀린다며 웃었다. "딱 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가슴에 달린 단추만 만지작거리며 한마디도 못하고 앉아 있더래요. 그 때 내 일은 여공들이 이야기하는 걸 받아 적어 정리하는 거였어요. 차츰 발언권도 생기고 함께 싸우게 됐지만요."
그도 운동을 하다 잡혀가 고문을 당했던 적이 있다. 비녀꽂기, 통닭구이 같은 고문을 당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불었던 후배에게 물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많았는데 왜 내 이름을 말했니?"
"형은 잡혀와서 한 2년쯤 징역 살아도 인생에 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후배의 말은 맞았다. 사흘 밤낮의 고통은 살면서 '이 쯤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줬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 사흘간 고통의 반만큼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게요?"
그가 강연 가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빌리 엘리어트 보면 파업 중인 광부가 동료들이 모아준 돈을 들고 도시에 나가 오디션을 보는데, 그 때 교장이 '파업 잘 하세요'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감독은 그 장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대요. 영국은 그게 일상인 겁니다. 근데 우린 노동자가 파업하면 세상을 좀먹는 행위라고 욕하잖아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거대한 시스템에 우롱당하고 있는 거죠."
며칠 전 하종강 씨가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그는 물었다. "거북선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대답은 뻔했다. "이순신 장군이요." "그거 다 사기예요. 수많은 기술자들이 밤샘하면서 도면을 만들고 자기 손등을 찍으면서 망치들고 두드려 만든 게 거북선이예요. 거북선을 만든 건 수많은 노동자들예요." 그는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몇 번이고 부탁을 했다.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가르쳐달라고.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인데도 노조가 나쁘다고 사기치는 사회 시스템이 잘못 됐다는 걸 가르쳐달라고.
그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사기임을 알리는 것. 요즘 강연 때 열을 올리는 것 중 하나는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그를 불렀을 때 그는 벌컥 화를 냈다. 어느 지방의 초등학교로 불러서 갔더니 교실 하나도 못 빌리고 2-30명 되는 사람들이 운동장에 풀썩 주저앉아 있더란다. 대기업 노조는 에어컨 나오는 대형 강의실에서 교육받는데, 비정규직들은 왜 이래야 하는지 화가 났다. "한국통신 정규직 노동자들은 뭘 하고 있는지 그 흔한 지원금 한 번 내준 적이 없어요. 이게 노동운동입니까?" 그는 정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노동운동 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노동운동의 미래"라고 단언했다.
"20년 후 지금 이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종강 씨가 노동교육 활동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그를 인터뷰하러 오는 이들도 가끔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대학 영자신문사 기자들이 와서 이렇게 물었다. "사회주의자이십니까?" 하종강 씨는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 "자본주의의 극한 모순과 인간왜곡에 대한 해답이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난 얼치기 사회주의자입니다."
또 그는 한겨레 21과 말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종강 씨는 마지막 질문으로 이렇게 묻는다. "10-20년 후에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까?"
가장 많은 대답이 "지금 이대로였으면 좋겠습니다"란다. 강원도 산골 노조 광부도, 풀무원 직업학교 선생님도 다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종강 씨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돼도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현실과 30%쯤 타협한 얼치기 사회주의자가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되도록 노동자와 함께라면 그는 진짜 사회주의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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