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공동체] 관악구 지역주민운동

일상적으로 쓰이는 공동체라는 표현은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달동네 빈민운동에서 아파트공동체운동으로


황예랑 기자 newseditor@e-unipress.com



편집자 주 -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이란 이름 아래 생산, 소비, 종교, 육아, 환경 등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논의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공동체라는 표현은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생신문은 앞으로 5번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공동체를 찾아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짚어본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상은 아니겠지만, 각각의 단면들을 통해 공동체적 삶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햇볕이 잘 들어 난초가 무성하다는 '난곡(蘭谷)'. 관악구 신림7동 산101번지 일대 난곡마을은 시내버스 96번 종점부터 경사 35도의 가파른 골목길로 산꼭대기까지 이어진다. 오갈 곳 없는 이들이 8평 짜리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사는 곳이다. 이 마을 사람들을 두고, 어떤 이는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게 사는 사람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낮은 곳을 향한 목회활동과 지역사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 지역이 아파트 재개발사업 대상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골목길 안쪽으로 버려진 가구와 연탄재,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마을의 절반 이상은 허물어졌다. 고무신을 꺾어 신고 막걸리 병을 든 할머니와 책가방을 든 채 골목 어귀마다 무리지어 노는 아이들 뿐, 사람이 떠난 마을은 휑하다.

철거투쟁으로 맺어진 빈민공동체

'난곡'은 60년대부터 서울 도심 정비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대표적인 도시빈민 거주지역이다. 2만 5천여 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단순일용노동과 노점상, 취로 사업 등으로 3백만 원 하는 전셋집에서 살아갔다. '나 홀로' 독거 노인만 1/3에 달하고, 이혼이나 행방불명 처리로 인한 '한부모 가정'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생활형편은 어려웠지만 이들은 한 집안 사람들처럼 살았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한여름이면 문을 열어 놓고 살다보니, 누구네 집에 강아지를 낳았다는 것이 하루만에 소문 날 정도로 친밀한 동네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 곳에서 살아왔다는 꿈나무 공부방 최보경 대표의 말이다. '문을 열어 놓아도 도둑이 갖고 갈 게 없다'는 이 곳 사람들은, '난곡마을 사람들'이라는 나름의 감정적인 연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문화는 95년 '철거투쟁'을 매개로 본격적인 공동체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난곡이라는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가 아니라, 철거투쟁이라는 공동의 지향과 사회적·시간적 유대가 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만든 것이다.

난곡 지역에서 활동하는 10여 개의 시민, 종교단체들의 활동도 여기에 한몫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70년대 도시빈민지역 의료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고, 수많은 공부방과 야학은 지역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자활센터의 지원으로 실업자들을 위해 재활용품 분류, 고깃집 불판 사업 등의 자활 사업단이 꾸려지기도 했고, IMF때에는 집수리 공동체, 간병인 공동체에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여했다. 지금도 낙골 공부방, 꿈나무 공부방에서는 백여 명의 아이들이 대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

이 과정에 대해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은 "88년 주민자치센터 건립으로 본격적인 지역운동이 시작됐다. 90년 인근 봉천동을 필두로 관악구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개별 동 차원이 아니라, 구 차원의 공동대응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관악구 일대 교회, 공부방, 야학, 도서관 등 20여 개 지역단체들이 모여 네트워크로 '관악주민연대'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은 91년, 96년 지자체 선거에 자체 후보를 내 구의원으로 당선시키기도 했다. 95년 1만명이 참여한 '재개발문제 개선을 위한 주민청원 발의 서명운동'을 이끌어 낸 것도 이런 지역단체들이었다.

"30년 전부터 시작된 빈민운동을 핵심 고리로 하면서, 공부방이나 탁아방, 도서실, 야학 등 다양한 관심사를 통해 주민들을 만나고자 했다. 공동체라는 개념을 굳이 쓰지는 않았지만, 일상생활에서 주민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으려 노력했다." 낙골교회 김기돈 목사는 지금까지의 난곡 지역 운동을 도시빈민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폐쇄된 종교 공동체와는 다른 종류의 공동체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공동체운동은 또 다른 것

그런데 재개발이 결정되고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혹은 지하셋방으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의 공동체성은 급격하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지역단체들의 관심도 빈민운동에서 일반주민의 권익, 복지로 무게중심이 옮아갔다.

"이전에는 재정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마무리되면서 주민 참여도 현저히 줄어들고,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센터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가 문제"라며,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곡마을에도 임대아파트 전세금 1300만원을 낼 능력이 안 되거나, 3백만 원의 전세금으로 서울 다른 곳에서 집을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2백 50여 가구가 남아 있을 뿐이다. 양갈래 길 한쪽의 무허가 판자촌 1구역의 많은 집은 이미 철거된 상태. 주민들 사이에는 철거에 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 달동네에서 살 때 가지고 있던 삶의 양식이 변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예전에 터놓고 살던 이웃주민들끼리 소원해지는 경우가 많다." 난곡에서 만난 지역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요즘 관악주민연대가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비롯해 임대아파트 생활개선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빈민지역에서 살아오며 이 지역 주민들이 체득하고 있는 공동체적 삶의 원리를 '마을 만들기'라는 또 다른 공동체 운동을 통해 풀어나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예전과 달리 활동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지난 식목일 봉천 6동 임대아파트에서 오랜만에 백여 명의 관악 주민들이 모여 꽃씨 심기 운동을 치르긴 했지만, 다같이 모이는 경우는 드물다.

주민 없는 지역 공동체 운동, 안된다

참여연대 아파트공동체연구소 김칠준 소장은 우리 사회 공동체운동을 몇 가지로 분류한다. 특정 종교의 집단 공동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소수 주민들의 생태 공동체,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지역운동으로서의 공동체, 철거민들의 주민공동체, 그리고 최근 늘어나고 있는 아파트공동체운동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난곡마을을 비롯한 관악 지역 운동은 도시빈민운동에 기반을 둔 공동체 운동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김소장은 빈민운동의 한계를 "동질성이 크고 인간적인 유대가 확고하지만 공동체의 방향이 생존권 차원의 문제로 한정되다 보니 미래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지역 활동가들은 재개발로 인한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당장 재개발 이후 그 많던 교회와 공부방, 도서실이 어디로 가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지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역운동의 주체가 활동가 중심인 것도 큰 문제다. 관악주민연대의 경우도 지역센터간의 네트워크라고는 하지만, 주민 회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 없는 주민연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낙골교회 김기돈 목사는 "지역 공동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풀뿌리 자치운동의 확산으로 구로센터나 주민자치21 성동연대와 같은 비슷한 지역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여전히 '지역주민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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