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호/초점] 새로운 젠더 질서에서의 페미니즘: 재구조화된 자본, 재구성된 정체성

우리 운동들은 약하고 현재 방어태세에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 트, 반인종주의, 게이 해방 운동들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연대의 가능 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국제통화 기금, G8 등에 집중하면서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세계적

새로운 젠더 질서에서의 페미니즘: 재구조화된 자본, 재구성된 정체성

[시류를 거슬러], 2002년 3/4월 호, 조한나 브렌너

페미니스트라 자신을 칭하는 미국 여성의 비율이 1990년대 초반 이
후 감소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최근의 여론조사는 페미니즘이 죽었다
는 주장을 다시 한 번 촉발시켰다. 그러나 동일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성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18-29세 여
성 중 절대 다수(84%)이며, 45-64세 여성 중에서도 확고한 입지(63%)를
차지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처럼 미국 정치 지형 속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위치
를 차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페미니즘이 어떻게 됐는지를 이
해하고 정치적 행동의 방향을 그려보는 한 가지 방법은 이 시기를 지
구적 자본주의 경제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젠더
질서(new gender order)가 확립되어 가는 시기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젠더 질서란, 젠더적 차이를 둘러싸고 제도화된 권력관계와 특권, 더
불어 젠더 정체성의 사회적 문화적 구성을 의미한다. 2세대 페미니즘은
진정 역사적이었다. 2세대 페미니즘은 여성을 배제하고 여성을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무력화하는 실천들을 문화적으로 또는 법적
으로 용인하는, 깊이 내면화된 실천들의 거미줄에 도전하고 뒤집었다.
지성, 성격, 능력에 있어서 젠더의 자연적 차이에 대한 가정은 아예
철폐되었던가 아니면 근본적으로 변했다.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우익이
계속 지속시키고자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옛 가부장적 체제는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 대신 보다 덜 균질적이고 안정적이며, 고정된 젠더 정
체성에 덜 의존적인 젠더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일하는 어머니, "집에
있는 아버지", 동거 커플, 혼합 가정, 게이 가정 등 보다 다양화된 가계
구성 및 젠더 관계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많이 용인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새로운 젠더 질서는 자본주의 시장과 자유주의적
정치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억누르던 전(前)자본주의적 억압에
대항한 지난 백 여 년 동안의 여성들의 투쟁의 최고점을 이룬다. 오늘
날 미국의 모든 여성은 노동력과 정치 체제에서 남성들과 경쟁하고 자
신의 성적, 가족적 관계 내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유례없는 자유를 갖
는다.

그러나 몇몇의 여성 -특히 자신의 계급적, 인종적 위치 상 유리한 조
건에 처해있는- 만이 고용주와 남성 파트너와 특별히 이득이 되는 협
상을 해낼 수 있다. 그런 협상을 해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서비스 경제에 고용되어 있는 광범위하고 저임
금층의 여성에 기반해 있다. 미국에서 보살핌(caregiving)이 상품화되는
데에 이주 여성노동자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여성을 노동
시장으로 내몰면서 자국으로부터 내쫓는 지구적인 "원시적 축적"의 과
정과 관련이 있다. 보살핌 노동의 "국제화"는 새로운 젠더 질서의 핵심
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대부분 유색인종이고 보살핌 노동을 임노동으
로 수행하는 여성들, 그리고 사무직, 기술직과 생산직 노동에 고용된
다른 수백만의 여성들은 여성들이 새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가능성이 부유한 상위 중
산층 여성들보다 더 적다. 그럼에도 보다 많은 문화 자본과 경제 자원
을 가진 여성들이 성공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성공이 가능하긴 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새로운 젠더 질서 내 많은 노동계급 여성들이 경험하는 딜레마는
개인적 문제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즉, 잘못된 선택 또는
나쁜 운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계 및 노동 시장 내에서 젠더적 차이
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압박은 "여성들 등 뒤에서",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관계 밖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비가시적이다. 이러한 압박은 이
나라에서 보살핌에 대한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는 일차적 책임이 여전
히 사적 가계 구조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가족들은 시장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예를 들어, 탁아원)로부터 도움을 얻긴 하지만 대부분
가족들이 수행해야 하는 무임금 노동의 절대적 양은 여전히 크다.
보살핌이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개인적 책임이라고 인식
되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도록 강제 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경제 및 정치에서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가계 내 노동의 성별 분업을 깨고 나올 가능성을 제한
하고, 보살핌 노동을 평가절하하며 또한 편모를 불리한 위치에 놓기 때
문이다.

보살핌의 책임을 진정하게 사회화하고 남성들로 하여금 보살핌을 가
족일 또는 임노동으로 사고하고 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살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부의 현저한 재분배, 정부 지출의 확대와
우선순위 재배정, 그리고 고용주에 대한 더 많은 규제를 필요로 한다.
이 모든 변화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놀랍지 않게, 페미니스트들은 2세대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확대하고
옹호하는 지속적인 과정에서도 매 순간 순간 좌절해야 했다. 한편으로
는 엄청난 성과를 얻어내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지독한 실패를 경험
해야 하는 이런 반복은 새로운 젠더 질서에 반영되어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이제 미국 문화와 정치에서 지배적이라고 말하
는 것은 큰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런 세계관은 특히 가부장적 가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종교적 우익들의 계속적인 반대에 직면하곤 한다.
그러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페미니스트 및 게이 단체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그들은 확고한 승리를 얻어내진 못했다. 매
우 광범위한 사회적 보수주의 의제를 제출하면서 우익은 오직 상대적
으로 힘없는 그룹들만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청소년
(부모의 허가와 합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률로)과 농촌 및 빈곤한 여성
(공중보건을 통한 낙태 재정지원을 거부함으로써)의 낙태에 대한 접근
권을 없애버렸고, 공립 학교 성교육 내용에 "절제"를 포함하도록 강제
했다. 그러나 그들도 성혁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었다. 이 특
별한 싸움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조직적이고 재정이 넉넉하며 완고한 낙
태 지지자("pro-choice")들의 정치 로비(페미니스트 단체들을 포함하지
만 이들에게 국한되지 않은) 뿐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끊임없이
상품화하려는 강력한 시장의 힘으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동성애에 대한 그들의 반격 움직임도 마찬가지이다. 이 부분에 있어
우익은 조금 더 큰 성과를 얻어내긴 했으나 천천히 뒤로 밀려나고 있
다. 왜냐하면 주류 동성애 권리 단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
고, 게이 공동체들이 경제적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했으며, 동성애
권리 투쟁에 대한 지지를 주류 시민권 단체들과 노동조합들로부터 얻
었으며 그리고 대중매체에 게이가 공론화됨으로써 틈새 시장을 개척했
기 때문이다.

"여성의 이해"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단체들은 미국 정치 지형에서
안정된 지위를 유지해왔다.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적법한 목소리를 갖게
되었으며 재정후원을 대대적으로 조직하고, 지배적인 정치 담론의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는 전제 하에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에 집중하는 한, 그들은 여성들로부터 광
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공공연하게 정체화하는 여성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 실천과 문화 모두에서 2세대 페미니즘이 매우 선
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수용되었음을 반영한다. ("여성운동"과 대비해)
페미니즘이 "젠더 우선" 정치 활동, 급진주의와 남성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한, 페미니즘은 많은 여성들에게 너무 무섭거나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의 딜레마로부터 너무 동떨어진 것이 되어 가고 있다.

페미니즘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반동적 우익의 "반격"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승리이다. 시장에 대한 찬양과 복지국가의 악마화, 임노
동이 도덕적 선이라는 주장, 존경스러운 성인의 기본으로 "자급자족"과
"독립성"을 설정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종교적 우익과 대비되는 현대
적 우익의 핵심이다.

"새로운" 민주당이 이와 같은 보수적 메시지에 약간의 인민주의적
성격을 덧붙이기는 했으나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이런 보수주의를 채택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의 복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클린턴의
사나운 공격 캠페인을 보라. 이 캠페인은 1996년의 '개인책임과 노동기
회에 관한 법률'이 편모에 대한 연방의 재정지원을 없애버리면서 최고
조를 달했다.

우연치 않게, 클린턴이 그 법률에 서명할 때 그는 여러 명의 흑인 여
성과 이전에 복지혜택을 받던 어머니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복지가
"의존의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클린턴의 수사학은 가난한 흑인 여성들
을 자격도 없으면서 복지로부터 단물을 빨아먹는 자들로 그려내는 인
종차별적 형상화에 도전하기는커녕 재생산했다. 그는 또한 복지 개혁이
편모를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
현대적 우익의 담론을 수용했다.

이런 구조는 공공지출을 통해 집합적으로 민중의 삶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탈법화시킨다. 대신, 국가의 역할은 충분히 노력할 의향
이 있고, 평등하다고 믿어지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장에 참
여하는 개인만을 "돕는 것"이다.

현대적 우익의 지배는 민주당의 전통 기반이었던 사회 세력들을 탈
조직화하고 약화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이제 매우 경쟁적이고 불안정
한 경제가 미국에서의 삶을 지배한다.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의 다른 시
기에도 그랬듯이, 옛 경제 질서 속에서 형성되어 이전에는 효과적일 수
있었던(실제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지만) 노동계급의 정치적 경
제적 방어 체계가 이제 새로운 조건에 전혀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새
로운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옛 형태의 노조주의가 소용없듯이, 새로운
젠더 질서 속에서도 옛 형태의 페미니즘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노조주의는 상당 부분 관료주의적이고 동력을
잃었지만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은 발달할 수 있었다. 오늘날, 페미니
즘의 운명은 노조주의 및 기타 형태의 법인 자본에 대한 집단적 저항
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으로부터 실제적인 양보를 쟁취할 수 있는 광범
위하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운동의 맥락 속에서만 페미니즘이 노동계
급 여성들의 삶의 딜레마에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워진
페미니즘은 조직 면에서나 정치 면에서 2세대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띌 것이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젠더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여성
들에 의한, 그런 여성들을 위한 운동이었다. 다른 지배 관계와 젠더 억
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지 -노동계급 및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 중심 무대에 선
적이 없다.

2세대 내에는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이 이끄는 중요한 정치적 조류
가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경험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복합적
이고 "상호교차하는" 억압들을 고려하는 이론과 실천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통찰 -즉, 오로지 젠더만 사고하거나 젠더가 일차적이라고 주장하
는 정치는 대다수 여성들을 조직화할 수 없으며, 운동 외부에 존재하는
지배 관계를 운동 내에서 재생산할 뿐이라는 것- 은 페미니스즘적 실
천이 새로운 젠더 질서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데 있어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이는 젠더에 기반을 둔 단체들이 인종과 계급 억압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정 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여성 단
체들은 활동하면서 경찰, 법원 및 감옥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신들의 목표에 대한 정당성을 얻었다. 그들은 감옥-기업 복합체, 사
형제도,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고 있는 빈곤의
범죄화에 대항하는 풀뿌리 운동들과 연대하려면 그러한 관계를 희생해
야 할 지도 모른다.

상호교차성이란 인종차별주의 반대와 노동조합 조직화에 있어 여성
의 리더쉽과 젠더 억압의 문제가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2세대
페미니즘의 가장 중대한 유산 중 하나는 여성의 정치적 리더쉽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는 여성들이 성차별주의
때문에 좌파에서 뛰쳐나왔던 반면, 오늘날 여성들은 많은 풀뿌리 운동
들 -대학 캠퍼스에서의 노동착취공장 반대 캠페인, 캘리포니아 반이민
정책에 저항하는 고등학생들의 조직화, 감옥-기업 복합체에 대한 "비판
적 저항(Critical Resistance)" 시위, 흑인급진의회(Black Radical
Congress) 등- 과 노동조합에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

여성 정치모임들과 비공식적 여성 네트워크들은 조직 내에 페미니즘
적 관점을 편입시키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 되어 왔다. 유색인종 여성들
은 시민권 단체들의 다분히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역사적 편
향에 대항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성공적으로 이
런 문제에 도전했다.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들은 자신들이 속한 노동조
합을 레즈비언/게이 권리를 위한 캠페인을 지지하고 거기에 기여하도
록 설득시켰으며, 페미니스트 노조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노조가 낙태권
쟁취 투쟁에 함께 할 것을 강제했다.

물론, 우리 운동들은 약하고 현재 방어태세에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
트, 반인종주의, 게이 해방 운동들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연대의 가능
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국제통화
기금, G8 등에 집중하면서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세계적 운동
은 좌파에게 재생된 활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노동/환경 연대는
엄청난 급진적 잠재력을 갖는다.

그러나 이 운동 내에서 인종차별주의와 젠더 억압 -가난한 유색인종
인의 투옥, 편모에 대한 복지 거부, 공공서비스 감축, 그리고 보살핌을
주고받을 권리에 대한 무시 등- 또한 중심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미국 "구조조정"의 얼굴이라는 점을 잊지 말
자.
태그

자유주의 , 페미니즘 , 젠더 ,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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