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진보란 무엇인가

진중권과 강준만의 논쟁에 부쳐

이호곤/송파을지구당 사무국장
서울시장으로 우리당의 이문옥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놓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네티즌 사이에서 이른바 ‘옥석논쟁’이 벌어졌다.

이에 진중권 동지(사진 오른쪽)가 강준만 교수(사진 왼쪽)에게 ‘노무현을 지지하는 기준’인 시민사회의 상식을 그대로 ‘옥석’을 가리는 데도 들이댄다면 당연히 이문옥을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강준만은 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한나라당 후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힘이 있는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이라고 답했다.

나는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우리 시대의 진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이제 말하고 싶었다.

진중권이 말한다.
“우리의 낙후된 정치문화를 바꾸는 지름길은 시민 모두가 차디찬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럴 때에 정치가들도 얄팍한 정략적 계산을 포기하고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올바른 정치를 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강준만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그런 현실에 근거하여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의심한 나머지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적극적 진보주의’에 앞서 우선 당장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세력에게 정부와 서울시의 리더십이 넘어가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들의 ‘소극적 진보’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진중권과 강준만이 전략적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본다. ‘수구세력에 대한 극복’을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대한 노선이 다른 것이다. 강준만은 민주당의 힘을 빌어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기본 노선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 그의 주된 활동이고 민주당에 대해 부족함이 있어도 같은 기준을 가지고 문제삼지 않는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세력에 대해 결사 반대하면서 진작 박정희 기념관을 짓고 전두환을 국가원로로 예우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금은 우선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민주당으로 힘을 모아야 할 단계인데 진보정당이 나서서 쓸데없이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이에 반해 진중권은 ‘상식’을 확산시키고 확립해 가는 것이 수구세력의 극복을 위한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진중권은 보수 양당이 타협해서 만들어내는 각종 현실에 대해 상식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이를 비판한다. 또한 그러기에 당연히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면서도 민주노동당에도 이 기준을 들이대며 비판한다.

민주노동당원인 나는 당연히 진중권의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모 지역의 노사모 대표와 토론을 앞두고 나는 우리 당이 하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다 나열해 보았다. ‘상식과 합리성’, ‘소신과 원칙’을 가진 순수한 사람이라면 우리 당의 주장과 정책, 활동에 손을 들어 줄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부패방지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등등과 FX사업 반대집회와 용산미군기지반환투쟁, 발전노동조합원에 대한 변론, 장애인이동권확보를 위한 연대, 공공의료와 공교육 강화에 대한 정책 등등 우리에게는 기준이 있었다. 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집권당과 야당에 책임을 묻고 비판하는 활동을 한다.

부패방지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등에서, 그리고 각종 개혁에서 바른 것, 소신과 원칙을 포기하고 늘 보수 양당은 타협한다. 그 타협에서 주도권은 보수개혁주의자들이 쥐고 있다. 권력도 그들이 쥐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보수정당이 타협한 이 현실이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불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 양당을 비판한다. 진보정당의 성장과 비판 없이는 보수 양당이 타협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때 왜 강준만과 같은 사람이 왜 우리 당의 구체적인 정책과 주장, 또는 각종 활동을 주로 문제삼지 않고, ‘늘 민주당 때리기”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을까 라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의 전략적 사고 방식으로 보면 ‘상식과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나라당을 막을 ‘민주당의 힘’인 것이다. ‘소극적 진보가 현실에서 선택 가능한 최선이다’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고 판단이다.

그래서 늘 어떤 기준을 들이대며 비판하는 진보정당에 대해, 기준의 적합성보다 비판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의 개혁파보다 진보적인 기준이 비판의 근거가 되다보니 늘 ‘비현실적, 관념적, 도덕적’이란 말들이 진보정당을 비판하는 데 사용된다.

‘인물(시장의 자질과 능력)로야 당연히 이문옥이 앞서지만 당선가능성이 낮아서 지지할 수 없다’ 는 강준만의 말은 곧 ‘정책이야 민주노동당 것이 나아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힘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우리 당의 정책과 민주당의 정책을 비교해서 살펴보고 싶지도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한 반대를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 모든 정치세력을 평가한다. 그 반대를 하는데 가장 힘있는 세력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일단 감싸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분단에 반대하는 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들이대며 ‘통일세력’이면 여타의 다른 잘못은 사소한 것으로 용서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반대가 가장 중요한 진보의 기준이다. 그들은 한나라당과 타협하건 야합하건 한나라당에 반대할 힘이 있으면 일단 좋다. 함께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먼 장래야 어떻든 우선은 반대다. 그러나 나는 조선일보반대, 지역주의반대, 한나라당반대, 자본주의반대, 조선로동당반대, 미국반대, 분단반대 등등 무엇에 대한 반대가 우리 시대 진보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진보의 기준은 그러한 과제들에 대해 어떤 원칙과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그러한 과제들에 진보적인 원칙과 대안에 힘을 모아 가는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가는 길이다.

부당한 힘에 반대하고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노풍으로 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가 민주당이라는 틀로 가능한 것이라면 민주노동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문옥 전 감사관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부패와 싸울 수 있는 정당으로 힘있는 민주당이 아니라 힘없는 민주노동당을 선택한 것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의지나 의식만이 아니다. 그가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느냐가 결정적일 때가 많다. 내가 아무리 친구의 빌린 돈을 갚고 싶지만 파산한 상태라면 나는 그 돈을 갚을 수가 없다. 김민석과 노무현이 처한 조건을 분석해보고 그들에게 기대할 것을 기대하고 믿을 것을 믿어라.

김대중이 집권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현실이 다가오자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이런 것은 좋아진 것 아니냐, 이회창이 된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두 사람 다 옳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하나의 정답만이 절대 진리인양 배우는 우리 현실에서 두 사람은 서로 정답이라고 싸울 테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해둘 건 후자는 애초에 자기가 걸었던 기대와 현실이 딴판인데 자기 생각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 한 것을 반성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틴 루터 킹이 감옥에서 백인온건주의자들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의 직접적인 행동계획의 목적은 위기가 꽉 채워져 협상의 문을 불가피하게 열게될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여러분과 의견을 같이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나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리고 유태인 형제들에게 두 가지 정직한 고백을 합니다. 첫째로 나는 과거 몇 년 동안 온건한 백인들에게 많이 실망해 왔습니다. 나는 자유를 향한 흑인들의 진보에 커다란 장애물이 KKK단원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명령에 더 헌신해온 온건한 백인이라는 유감스러운 결론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즉 온건한 백인은 정의가 존재하는 긍정적인 평화보다 긴장이 없는 부정적인 평화를 더 좋아하고, 항상 “나는 여러분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 여러분과 동의합니다. 그러나 나는 직접적인 행동이라는 여러분의 방법에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시간표를 정할 수 있다고 온정적으로 믿고 있고, ‘시간의 신화적 개념에 의해’ 시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살며, 끊임없이 흑인에게 “보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라고 충고합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부터의 얕은 이해가, 악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부터의 절대적인 몰이해보다 더 좌절을 불러일으킵니다. 미온적인 수용이 분명한 거절보다 훨씬 더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 89호] 5.27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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