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아웃사이더> 편집주간
어제 MBC 백분 토론에서 백미는 사회당 원용수 후보의 “사회주의자” 선언이었다. 자못 비장한 목소리로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며, 방청객에 앉아 있던 나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래? 근데 누가 물어 봤니?
최초의 사회주의자가 비장하게 묻는다. “사회주의자라 선언하는 사람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1백80억원 재산을 가진 이명박 부르주아가 대답한다. “좋은 일입니다. 어디 활보만 합니까? 이렇게 나와 토론까지 하잖아요. 좋은 일입니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 비견할 만한 이 비장한 선언극은 이렇게 한편의 허무 개그로 끝나고 말았다.
역시 정치할 놈들은 따로 있나 보다. 민주당의 김민석은 깔끔한 비주얼, 군더더기 없는 말솜씨, 깨끗한 매너만으로 이렇다할 자기 공약 없이 토론을 주도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은 곤란한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피해가다가, 사회당 원용수를 이용해 김민석에게 잽을 날리기도 했다. “386세대시지요? 386 세대로서 정치권에 진입한 386세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행히 원용수 후보가 맥락을 잃고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는 바람에 이 꽁수는 아쉽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내가 원용수 후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디 386세대뿐입니까? 6.3세대는 더 해요. 가령 제 앞에 앉아 계신 이명박 선배님....”
우리 당의 이문옥 후보는 이 노회한 두 정객을 맞아 선전했다. 수백 억에 달하는 자치단체장의 판공비를 줄여 걸식아동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 길을 넓히는 것으로는 더 이상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버스공영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 강남과 강북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김/이 두 후보의 공약의 허구성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 초반의 페이스가 막판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어쨌든 이번 토론을 통해 그나마 사안에 대한 정책적 이해를 가진 후보는 이문옥-김민석-이명박 후보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서울시장 선거는 3파전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당의 후보들이 선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드디어 진보정치의 바람이 부는가 보다.
[ 89호] 5.27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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