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은 쓰다 버리는 폐품이 아니다

월드컵 기간에 환영받는 외국인과 쫒겨나는 외국인들


이금연 [afi21@hanmail.net]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12세 정도의 아동들이 지문이 없어질 만큼 혹독한 노동으로 축구공을 만들고 있다. 어린이들이 만든 이 공은 ‘인류의 축제’라고 부르는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쓰여진다. 역시 파키스탄과 네팔 등지에서 어린이 손으로 짜여진 카페트가 부자 집 거실에 깔려진다. 스리랑카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스리랑카 여성들이 짜낸 나일론 실로 만든 스타킹을 신은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오늘날 자본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들이 가는 곳에 가로놓인 장벽은 쉽게 제거되고 있으며 그 역할의 주인공은 정부들이다. 자본과 권력이 손을 잡고 춤을 추며 파티를 여는 가운데 그 파티를 위한 음식을 만들고 시중을 들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몫은 틀림없이 저임금의 노동자들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자본은 지금 이 시각에서 온 세상 끝이라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그들은 그렇게 가고 있다. 그런데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노동자들은 어떤가. 각국의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노동자들의 이동은 ‘비자’라는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다.

베트남에서 온 한 여성은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으로 입국을 하게 되었다. 입국 시 현지에 있는 법인에 미화 6천불의 보증금을 지불해야 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장시간의 노동과 외출금지, 그리고 한 달에 10만원씩 받게된 수당이었다. 나머지 임금은 강제로 적립되어 본인은 임금명세서만 받을 수 있었다. 10개월은 참고 견딘 이 여성은 공장을 탈출하였고 자진하여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정부의 자신신고 등록을 두고 언제 단속되어 본국으로 쫒겨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이 여성은 강제적립 된 임금을 찾기 위하여 이주노동자를 돕는 단체를 찾게되어 만나게 되었다. ‘내 돈을 달라’고 왜 공장에 항의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말이 서투른 것과 불법체류자라는 이유와 공장을 일탈한 ‘죄’로 감히 자신의 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지내온 것이다. 적립된 6천불은 이미 계약 위반으로 찾을 수 없는 돈이 되었다.

어떤 병원의 책임자가 전화를 했다. 병원에 일할 단순 노동력이 필요한데 초청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농촌의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에게도 전화가 왔다. 농장에 와서 조용히 일할 외국인 부부를 찾아 달라는 요지였다. 두 부탁을 다 들어 줄 수 없었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일할 사람은 다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많은데 일꾼은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이 바로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자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들을 기다라고 있는 것은 이제 일년 안으로 모두 내 보내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불법체류자 종합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금 실행되고 있는 ‘강제자진신고’ 이후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날은 지금 다가오고 있다. 5월 25일까지 신고를 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단속과 추방의 1순위가 될 것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내내 경기관람을 위한 관광객이 입국하는 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추방당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부는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을 통하여 발표한 이주노동자 정책을 통하여 고용허가제를 중심으로 이름만 바꾼 연수제도 수준의 이주노동자 인력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노동허가제가 아닌 단순인력을 필요로 하는 고용주들에게 고용을 허가해 주고 그 고용이 허가된 조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입국을 허용해 주겠다는 것이다. 아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등록을 한 이후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이라는 대책은 없는 가운데, 다만 1년 내 출국을 준비할 수 있는 자비로운 기간(grace period)를 주어 내보내고 새로운 인력을 고용허가제를 통하여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이고 편의적인 순환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보내고 들여오고... 고용허가제를 반대하지 않는 단체들의 입장은 일단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자격이 부여되면 이후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은 쉬워질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3권 등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제기가 된다. 고용주들의 강력한 통제 아래 노동하게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하여 누가 투쟁할 것인가?

현재의 노예적인 연수제도를 철폐하라는 낮은 단위의 싸움이 오랜 기간이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수제도는 변형을 거듭한 채 이주노동자 도입의 유일한 창구로 활용되어 왔다. 사회안에서 소외된 집단의 힘이 약할 때 이들을 대신하여 옹호(advocacy)하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사회단체들의 역할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당사자의 양적인 팽창과 더불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empowerment)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그 하나의 통로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의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의 명동성당 농성은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닌다. 지금 여기서 부당함과 불평등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강제 추방당하여 돌아간 그들의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역시 그곳에 진출되어 있을 외국 자본에 고용된 값싼 노동자가 되고 만다. 혹은 실업자로 전전하다가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가운데 빈곤은 여전히 그들을 위협하고 있을 것이다. 이용당해야 할 노동력의 가치로서만 평가받으며 노동시장을 위한 정책의 수단으로 전락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존재선언으로서의 의미가 평등노조이주노동자지부의 농성인 것이다. 그들이 살아 있음을 말하는, 그들이 존엄한 존재임을, 그들도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같은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경고하는 의미이다. 또한 한국노동자들에게는 ‘연대’는 가까이 있는 노동자들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행사용 연대 메시지를 받는 막연하고 먼 개념의 연대활동만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주장,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와 바른 노동허가제 실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은가. 일할 권리와 동시에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 그리고 일의 선택권을 위한 싸움 없이 단순히 돈벌어 갈 수 있도록 시혜를 베풀게 해달라는 요청은 집단적인 노동자들에 대한 비하인 것이다. 독일에 광부로 간 한 한국인은 자신들이 직접 투쟁하여 독일인과 같은 가족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제도가 자신들을 차별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등록한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일년 후 여전히 불법체류자로 남기를 자원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무리한 정책을 펼 것인가? 지금이라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단순히 노동력으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들이 한국 사회에 주는 의미를 먼저 숙고한 다음 정책을 만들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노동자들은 필요하면 쓰다 버리는 폐품이 아니다. 존엄한 존재이다. 누구도 강탈해 갈 수 없는 불가침의 인권을 가진 인간인 것이다.
이들의 행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따라서 이번 명동성당 농성단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을 요청한다.


--------------------------------------------------------------------------------

[결의문] 이주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투쟁하자!

오늘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전적으로 정부에게 그 책임이 있다. 지난 11년 동안 한국정부는 산업연수제도를 운영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으로 불러 들였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연수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 3권은커녕 장시간 노동과 감금, 폭행 등의 인권유린에 시달렸으며, 임금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또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이 저항하면 사업주의 신고에 의해 곧바로 출국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연수사업장을 이탈하여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나은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낙인찍고, 탄압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였다.

특히, ’불법체류 종합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는 책임회피를 넘어서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정권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온갖 협박과 회유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진신고를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인양 취급하면서 인간적인 모멸과 지루한 기다림과 두려움 속에서 자진신고를 종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진신고의 문제는 현재 불법체류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양산한다는 것에 있다. 자신신고 후에는 출국 전까지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고용주들이 임금체불, 산재 등을 고의로 방치하도록 여지를 줄 것이며, 동시에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탈시 가중되는 벌금 때문에 감시와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8일 자진신고를 마치고 나온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여 구금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자진신고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강제추방‘의 대기표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한국정부가 양산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인권, 노동권, 생존권에 대한 요구를 당당히 외칠 수 없었다. ‘단속’, ‘추방’ 두 단어로 저임금, 폭행, 장시간 노동, 체불임금, 산업재해 대한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의 분노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위해, 그 동안 빼앗겼던 노동권,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서서 싸우고 있다. 현재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대표단의 농성은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이주노동자 투쟁의 첫 포문을 연 것이다.

한국정부는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을 기만하지 말라! 추방 대기표에 불과한 자진신고를 철회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적인 노동의 권리와 인권을 보장하라.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업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노동3권이 완전보장되는 노동비자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다.

2002. 5. 16

이주노동자 탄압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필자는 ‘이주노동자 탄압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이자, 안양 전/진/상복지관 이주노동자의 집 http://kafi.or.kr 대표입니다.



태그

이주노동자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핑기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