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중앙당 정책국장
중앙 정치로의 진출을 꾀하는 디딤돌로 전락하거나, 거꾸로 중앙 정치의 입김을 전달하는 하급 단위로 기능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부정할 길 없는 현실이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나름의 자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그 자치는 주민이 아닌 지방 권력과 지역 유지들의 자치와 독립일 뿐이다.
과거, 국민들이 독재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해 왔다면, 오늘날 주민들은 지방자치를 빙자한 지방 권력에 의해 소외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방자치의 지난 10년 역사는 권력의 중앙 독점에서 지역 분점으로의 전환에 불과하며,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제도는 반민중적인 개발독재주의의 지방화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자치단체의 사업과 예산은 대부분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건설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주민 편의와 고용 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 사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자치단체의 개발과 건설에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서는가? 그것은 주민의 생활 편의와는 무관한, 불요불급한 개발과 건설이 남발되기 때문이고, 이러한 건설과 개발이 오히려 주민 삶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개발 아닌 평등자치 실현
지역 건설업자들의 이윤욕과 청탁에 따라 혈세가 낭비되고,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주머니를 불리는 가운데, 우리 아이들은 밥을 굶고, 수돗물마저 끊긴 어느 곳인가에서 노인들이 쓸쓸히 세상을 등지고 있다.
왜 자치단체들은 우리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존경받아 마땅한 노인들을 냉대하는가? 돈이 없는가? 아니다. ‘선진조국’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가 TV 공익광고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여성과 장애인과 노인을 돌볼 충분한 준비와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행정조직이 부족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통반 단위에까지 이르는 행정망이 동원과 감시가 아니라 봉사와 기여에 발벗고 나선다면 우리 국민의 삶은 더 편해지고, 더 윤택해질 수 있다.
문제는 지방자치마저 돈벌이와 권력욕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지방 호족들, 강자가 약자를 지배 착취하는 정글의 법칙이 조장되는 지역 사회, 그리고 그것을 보장하는 제도와 기구에 있다.
이제 개발이 아닌 평등이다. 건설이 아닌 복지다.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지역 개발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영위에 필요한 주거·의료·교육·노동·교통 등의 기본 요소를 주민들 모두가 값싸고 편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자치단체가 앞장 서 나가야 한다.
지역 사회 다수집단인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 확대를 실현하는 평등자치를 펴는 것이 이번 선거에 임하는 민주노동당의 목적이다. 사회복지예산 증액·주민건강센터 설립·공공보육 확대·학교급식 지원·공공주택 확대·비정규직의 정규직화·생계형노점상 보호 등이 평등자치 정신에 입각한 민주노동당의 공약이다.
사회복지예산 20% 수준 증액
민주노동당은 제3세계와 동유럽보다도 적은 우리나라 지자체 사회복지예산을 20% 수준으로 대폭 증액하여, 빈곤층·노동·여성·아동·노인·장애인 등 모든 주민에게 사회복지 혜택을 확대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보건소를 인구 5만 명당 1개소의 주민건강센터로 확대 개편하여, 값싸고 질 좋은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빈곤층과 노인 등에게 무상의료를 실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폭등하는 전월세값에 서민 허리가 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과도한 전월세값 인상을 강력히 시정권고하고,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여, 서민 경제와 주거의 안정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쥐꼬리 월급에 하루살이 목숨인 비정규직은 서럽다. 30%에 이르는 자치단체·지방공기업·위탁기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정규직 고용을 늘이는 지역 민간기업에 우대 정책 실시하는 데, 민주노동당이 앞장 설 것이다.
위의 공약들은, 지방 호족과 유지들에게 위탁돼 있는 자치단체 권력을 노동자와 서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개혁함으로써만 실현 가능하다. 다수의 참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다수자의 이익을 꾀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지방자치를,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민 참여의 장으로 전변시키고자 하며, 이런 관점에서 제시된 공약이 바로 참여예산제·주민소환제·지역경제고용위원회·비영리 사회기업·행정정보 의무 공개·공무원노조 지원·여성 승진할당제·장애인 의무고용 등이다.
노동자 시민 참여 지역경제고용위 구성
민주노동당은, 주민 삶과는 아무 관련 없는 개발 위주의 예산 배정을 막고 주민 이익에 따른 예산 배정을 위해, 주민이 지방자치체 예산을 직접 짜는 참여예산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또, 비리 전횡 등을 저지른 단체장과 의원을 주민의 뜻에 따라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 나아가 노동·학교·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지역경제고용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 사회 각 계층의 의사와 지역 형편에 맞는 지역경제 장기전략을 입안, 집행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의 주민 누구에게나, 적어도 민주노동당 공약이 목표하는 정도는 누릴 권리가 있고, 현재의 여건에서도 그 권리의 보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89호] 5.27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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