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보장 없는 월드컵 개망신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월드컵에 단호히 반대"
"장애인이 피켓시위 하는 것 보다 리프트로 죽는 것이 국가적인 망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개막식이 열리기 몇 시간전인 오후 5시경 서울시경 특수기동대 소속 1803 중대원들은 가장 바쁘고 삼엄하게 월드컵 경기장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개막식에 참가하기로 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등 국내외에서 찾아온 손님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1803 중대원들이 바빴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바빠야 했던 이유는 장애인들이 월드컵 경기장에와서 피켓을 들고 서 있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장애인을 막사선 이유는 너무 간단 했다. "우리가 주인으로써 손님들을 초대했으면 마당도 치우고 그렇게 깨끗이 하려는 마음이다"라는 경찰의 설명이었다. 장애인들이 장애인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치워야 할 대상으로 밖에 경찰은 보지 않았다.

이날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발산역에서 오후 2시부터 항의 집회를 개최었다. 이날 집회에서 이동권 연대 배영희 공동 대표는 "매일 리프트를 타며 살아가는 것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며 "더 이상 우리의 목숨을 리프트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작년 오이도 추락사고 이후 1년 반 여 동안 이동권 보장 투쟁을 해 왔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회진보연대 홍성만 노동국장은 "정부가 겉만 뻔지르 한 월드컵을 준비하며 정작 민중들의 생존권을 말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국장은 또 "외국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정부는 그 이면에 이주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월드컵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발산역장이 나와 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해 "경찰과 보험회사에서 조사후 보상을 검토 중에 있다"며 "각 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 도시철도 공사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산역장의 사과 발언은 당장 발산역에서 장애인들의 투쟁이 계속 진행되지 않게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에 대해 엄태근 사무국장은 "반드시 발산역에 대한 사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 밝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40여명의 참가자들은 발산역 집회를 마치고 지하철을 이용해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경찰들의 저지에 의해 몸싸움부터 시작해야 했다. 경찰들은 "장애인들이 한꺼번에 지하철을 이용하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다" "특정한 목적이 있을지 모르는데 보낼 수 없다" "국제적인 행사를 치루는데 장애인들이 시위하면 국제적 망신이다"라며 계속 막았지만 장애인들이 어디를 가든 집회가 끝난 상황에서는 더 막을 근거가 없었다.

이동권 연대는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리프트를 청 테이프로 봉인하고 "살인기계 철거하라"등의 락카 칠을 하고 월드컵 경기장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올라타자 집회 시작부터 지키고 있던 경찰들과 도시철도 공익요원들이 함께 올라타 상암동 경기장까지 따라 붙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월드컵 경기장역 지하2층 개찰구에 나오는 순간 다시 경찰이 에워샀다. 경기장을 지키던 서울시경 특수기동대 1803중대원들이 추가되어 참가자들을 에워쌌다.

경찰들은 수많은 외국인들과 시민들이 경기장으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피켓만 가리면 된다는 식 이었다. 참가자들은 "시민여러분 장애인들이 경기장에 간다는데 경찰이 막고 있습니다"라며 선전전과 몸싸움을 진행했다. 20여분이 지나자 경찰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 경기장을 볼 수 있게 해준다며 장애인들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장애인들은 상암동 경기장의 지붕 밖에 볼 수 없었다. 철저히 시민들과 격리 된 외딴 곳이 엘리베이터가 내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애인들은 휠체어에 앉아 전경들에 둘러싸여 검은 방패와 헬멧 너머로 그렇게 떠들어 대던 상암동 경기장의 '방패연' 모양 지붕만 보아야 했다.

이날 경찰의 과잉 대응은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말조차 경찰병력을 동원해 막아야 하는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경찰이 나서서 수많은 외국인 앞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적인 망신을 보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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