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pyLeft By 교육희망]
한국의 교육을 둘러싼 논쟁에는 도깨비 방망이가 하나 있다. 그 방망이는 어떤 사람이 휘두르면 보물이 나오고 다른 사람이 휘두르면 똥물이 쏟아지는 옛날 이야기의 그것처럼, 온갖 교육문제의 근원이면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그 방망이는 바로 [평준화]다.
경제계의 관료나 학자들, 보수언론,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평준화는 죽음이다’, ‘차라리 일제시대 교육이 좋았다’는 등의 극렬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평준화 때문에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가 발전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교실 붕괴, 공교육에 대한 신뢰의 상실, 학력 저하 등의 문제점 또한 평준화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평준화로 인해 교육불평등이 심화되고 사교육비가 증가한다는 해괴한 말도 들린다.
평준화 논쟁은 계층간의 갈등
평준화를 둘러싼 논쟁은 평준화 제도가 실시된 이후 지속되었으며, 최근의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학교에도 시장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쪽은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보장을 주장한다. 교육기회의 평등과 창조적 사고 능력을 강조하는 쪽은 경쟁 입시체제로 인한 불평등과 청소년 인권 부재 등을 해결하기 위해 평준화의 확대를 주장한다.
이 논쟁은 정책을 둘러싼 계층간의 이해갈등에도 근원하고 있다. 교육 활동을 경제적 지위에 연관지으려는 계층은 학교는 우수한 아이들의 활동을 보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학교의 서열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열주의자들은 평준화가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모든 학교들이 입시교육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평준화에서 제외된 특수목적고까지도 그런 실정이다. 이런 실정에서 모든 학교를 서열화시키고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은 성적이 우수한 일부 학생에게만 한정된 선택의 자유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학교선택권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평준화 체제 하에서 학교마다 교육내용이 다양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한다.
평준화는 능력이 다른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학력 수준을 저하시켰다고 왜곡한다. 그러나 성기선(2001. 5. 한국 교육개발원 교육정책 포럼)은 10만 여명을 조사한 결과, 상위 2% 정도의 상위권 학생들은 평준화로 인해 성적이 약간 떨어졌으나 98%에 이르는 대다수 학생들은 오히려 평준화로 인하여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상위 2%의 성적저하와 나머지 98%의 성적향상
평준화의 학군별 선발 배정 방식은 획일적인 교육을 하도록 만들기에 ‘사회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도 똑같은 교육과정으로 똑같은 입시교육을 획일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평준화 때문이 아니라 국가수준의 교육과정과 학벌독점사회의 문제이다.
다양한 교육이란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여 계발시켜주는 교육이지, 시험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겨 줄을 세우는 교육이 아니다.
사학의 건학이념과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권, 등록금 자율책정권을 주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학은 독자적인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기보다는 국가가 비용은 들이지 않으면서 교육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육성된 것이다. 또한 현재의 사학은 대부분이 학생이 낸 등록금과 국고보조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평준화로 인하여 교육여건이나 학생 모집이 부실한 대다수의 영세 사학들이 학교의 기본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기에 평준화로 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 교육 기회가 확대되고 학교들의 수준이 보편적으로 상향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가올 정보화 사회에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 인적 자원을 양성해야 하는데 평준화정책이 이를 가로막아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 사고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주입식, 암기식으로 이끌고 있는 비평준화 정책이 더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의 자질이나 학업성취도를 무시한 임의배정은 강남 집중 같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교육비를 늘렸다고 한다.
그러나 사교육비의 증가는 서열화된 대학의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다. 강남의 문제 또한 서울 강남은 오래 전부터 평준화 지역이었고, 정말 평준화가 문제라면 평준화된 지역의 수도권 주민들이 평준화되지 않은 지역으로 옮겨가야 논리에 맞다.
서열주의, 사회 기득권층 논리
서열주의자들은 국민 대다수의 의견조차 무시하려 한다. 2001년 수도권 지역에서 실시되었던 여론 조사에서 평준화 찬성이 70%라는 수치를 보여 평준화가 실시되었다.
이에 동아일보(2002. 02. 26)는 평준화 지지율이 70%를 조금 웃돌았는데, 이 70%는 자녀가 비명문고에 다니는 학부모의 비율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논평하고 있다.
이 말은 자녀가 비명문고에 다니는 학부모들의 의견이니까 무시해도 좋다는 말로 들린다. 더 나아가 허혜경(조선일보. 2002. 2. 22. 경원대·교육학)은 많은 전문가를 제쳐두고, 나아가 경제계의 현실적 주장도 뒤로 물린 채 여론조사의 결과를 가장 강력한 논거로 앞세우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평준화를 해제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주장하는 태도는 자가당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의 평준화체제로는 입시에서 기득권층 우위가 보장되지 않기에 기득권층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겉으로는 국가경쟁력이니, 학력저하니 하는 치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수 국민에 대한 소수 기득권 층의 국내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일 뿐이다.
서열화된 학교 체제에서 어떤 학교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인간 자체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과 같다. 대학 진학에 필요한 성적 이외의 어떤 가치도 인정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학교의 등급은 학생의 등급이며, 교복 자체가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일류고의 교복을 입은 소수는 차별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자기 상실감에 희망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비평준화 지역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입시 부담과 이로 인한 과열 과외, 중학교의 파행된 교육과정 운영,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피로는 심각하다.
심지어는 과열 입시 경쟁 풍토에서 자녀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하거나 상위 서열의 학교에 진학이 어려운 학부모들의 평준화 지역으로의 이주도 빈번하다.
대입경쟁력은 국가경쟁력이 아니다
그 동안 평준화 정책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과열된 입시위주의 잘못된 교육풍토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해소하고 고입 재수생이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했다. 아울러 지원자가 없어 입학정원조차 충족할 수 없었던 학교들이 없어졌고 고교교육 기회가 확대되었다.
학벌독점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고교평준화를 해제하면 고교입시경쟁이 부활한다. 신흥 명문고들이 가지는 경쟁력은 대입경쟁력이지 국가경쟁력이 아니다. 평준화의 해제와 학교 선택권의 보장은 결국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학교의 선택이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상향평준화된 질 높은 중등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의 교육은 전국민의 수준을 높이는 것에 두어야 한다. 부자인 소수만을 정예로 키우고 이들이 사회경제의 지배권력이 되는 정책은 교육전반을 황폐하게 만들고 대다수 국민들에겐 기회박탈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 정책은 모든 학교가 실질적인 상향 평준화가 이루어지도록 전반적인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 걸맞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의 다양화는 일부 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만이 향유할 권리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향유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철호 객원기자 - 서울 배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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