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저·아파트 신축 사회문제화

단일사안 아닌 문화유물 보존 차원에서 접근해야


덕수궁은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고스란이 담아놓은 공간이다. 일명 '하비브 하우스'로 불리우는 미국 공사관과 영국공사관 러시아 공사관이 제국주의시절 열강의 힘겨루기 장소의 상징적 위치를 점했던 것이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인지 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덕수궁은 외국의 대사관들 덕에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하고 있다.

작년에는 캐나다 대사관 신축부지 문제가 한참을 불거지더니 올해는 미 대사관의 아파트 건설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주한 美대사관측은 오는 2006년까지 서울시 중구 정동 10-1번지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에 연건평 54,976.13㎡ 규모(지하 2층 지상 15층)의 美대사관 건물을 신축·이전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현 美대사관저 내부에 직원 숙소용 아파트 8층과 군인숙소 4층 등도 함께 신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법의 시행령에 예외규정까지 마련해 가며 허용해 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문화연대와 민예총, 한국청년연합회 등 10개 시민단체는‘덕수궁 미 대사관신축을 반대하는 시민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24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사대주의적인 정책결정의 문제와 '주둔국의 문화유산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없이 요구하는 미국의 행태는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지적한 후 오히려 서울시가 아파트 건설예정부지를 매입하고 정동역 주위를 문화지구로 지정하여 특별관리할 것을 주장했다.
정동역 일대는 서울시민들이 '가장 걷고 싶어하는 거리'로 꼽힌다. 이 거리는 덕수궁, 정동교회 등 국가사적과 성공회성당 등 서울시 문화재가 자리잡은 역사·문화의 거리다. 이 거리는 그러나 러시아, 캐나다 미국 등 외국 대사관들에 자리를 내어주며 점차로 그 정취를 잃어갈 위험에 처해 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문화유산에 대한 몰지각이 심각하다는 데에 있다. 28일 '덕수궁 미대사관 신축 반대를 위한 정동지역 강연회'에서 목원대 김정동 교수는 '정동동역 변천사' 강의를 통해 '정동동역 주변은 갖가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의 창고'와도 같은 곳이라며 정동지역에 대사관, 아파트 신축을 반대하는 것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정동역을 돌려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문제는 미 대사관의 거만한 자세나 서울시·정부측의 저자세만이 아니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같은 문제는 일어날 수 있고, 정동이 아니더라도 문화유산에 대한 '공적 테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삶의 원형을 보존하고 이어가고 있는 보고(寶庫)로서의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일일문화정책동향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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