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어린이 노동실상

“축구공만 죽어라 꿰매던 기억 끔찍”


△ 어린이 노동실상 고발하러 온 인도소녀 소니아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니아(15)는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 그에게서 비인간적인 어린이노동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검푸른 그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깊이 잠겨 있는 듯하다. 5살 때부터 축구공 꿰매는 일을 했던 소니아는 7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인도 북부 질란다루에 살고 있는 소니아가 축구공을 꿰매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몸져눕고, 아버지가 병간호를 하면서부터다. 맏딸인 소니아가 생계를 보태야 했기 때문이다. 설사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어도 소니아는 언젠가는 축구공을 꿰맸을 것이다. 그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온가족이 축구공 꿰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여동생 두 명도 학교를 다니면서 축구공을 꿰매고 있고, 다른 여동생 한 명도 그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밖에 나갈 시간도 없이 하루종일 공을 꿰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어쩌다가 바늘에 손이 찔리기라도 하면 무척 아팠지요.”

소니아는 축구공 꿰매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공 한 개를 만들어 받은 임금은 7루피(27센트, 약 300원)였다. 통상 인도에서 공 한 개 꿰매는 데 150원 정도를 받는 것에 비하면 후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루종일 어두컴컴한 자신의 집안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만들 수 있는 공은 고작 2개였다. 공 2개를 만든 돈으로는 우유 1ℓ도 살 수 없었다.

그가 눈을 잃은 것이 축구공 꿰매는 일 때문이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틀어박혀 미세한 바느질을 계속해야 했고, 각종 화학물질이 섞인 축구공 실과 씨름했다는 점이 그의 실명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추론할 뿐이다.

그는 9살 때 시민단체 활동가 자이 싱을 만나면서 현재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이번에 2002 한-일 월드컵을 맞아 국제 어린이노동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이 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사회정의를 위한 자원봉사모임’의 사무총장으로 있는 자이가 전하는 아시아 지역의 어린이노동 상황은 심각하다. 그는 인도에서만 100여개의 마을에서 2만여명의 어린이가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의 경우 그 수는 더욱 많은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런저런 축구공을 만드는 초국적기업들 하청망의 맨끝에 있는 성인 축구공 제조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어린이 축구공 노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들이 자신들만의 노동으로 먹고살 수 없는 탓에 아이들까지 축구공 만드는 일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니아의 장래 꿈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가 되면 어린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에 대해 묻자 “어린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축구공을 사용하는 월드컵은 반대한다”고 당차게 말하기도 했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한다는 소니아는 노래를 들려달라는 청에 곧바로 잔잔한 목소리로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인도의 천민 여성이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고 슬퍼하는 내용이 담긴 그의 노래는 애잔하면서도 맑은 빛깔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글·사진 백기철 기자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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