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월드컵 빛과 그림자]멘체스터, 인터밀란 등 명문팀 모두 공업도시 연고

축구와 노동계급,노조ㆍ노동당ㆍ축구클럽 사회주의 꿈꾸던 유럽 대중조직 3두 마차

안수찬/<한겨레> 정치부 기자  piao@hani.co.kr
축구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 및 로마라는 건 이제 동네 꼬마도 아는 일이다. 그 원시축구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 것은 중세 시대다. 영주가 농노와 평민을 짓밟던 시절, ‘카니발’로 통용되던 도시 축제는 ‘분노의 에네르기’에 숨통을 틔워주는 행사였다. 억압받는 자는 하루나마 해방구를 만들었고, 억압하는 자는 그 하루의 관용으로 일년의 복종을 다짐받았다.

‘그날이 오면’ 처형장에서 마녀사냥의 제물이 된 사람의 머리를 들고 그들은 달렸다. 나중에는 돼지오줌통으로 바뀌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헐링애트골’(골문을 향해 던지는 게임)과 ‘헐링오버컨트리’(들판을 달리는 게임)로 나뉜 당시 축구는 분노의 에네르기가 너무 강력해 국왕이 금지령까지 내릴 정도였단다.

원시축구는 야만과 저항의 오롯한 정기를 품은 ‘일하는 자’의 축제였던 셈이다. 이 가운데 헬링애트골이 축구로, 헐링오버컨트리는 럭비로 변화된다.

그 변화의 기틀이 잡힌 ‘근대축구’에 이르러 공은 귀족들에게 돌아간다. 현대 축구의 규칙과 형태가 이튼스쿨 등 19세기 후반 영국 명문사립학교에서 형성됐다는 것도 다들 아는 이야기다.

뭐든지 규격화하고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는 ‘섬나라 족속’의 본성을 속이지 못한 영국 지배계급이 ‘분노의 문법’을 거부하고 이런저런 ‘에티켓과 룰’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들판의 축제는 이제 귀족의 잔디밭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역전골이 엉뚱한 데서 터졌다. 당시 산업혁명에 맞춰 유럽 전역에 이른바 ‘공업도시’들이 생겨났다. 끝없는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대중이 축구에서 해방의 에네르기를 찾았다. 지금처럼 레저와 스포츠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못한 시대였음을 상기하자.

크리켓과 테니스는 장비와 도구의 구입이 필수적인 귀족의 스포츠였고, 어디 하나씩 부러져 나가는 럭비는 몸이 곧 재산인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경기였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사회주의를 꿈꾸던 유럽 노동대중의 3대 조직은 노동당, 노동조합, 그리고 축구클럽이었다. (가장 거칠고 야만적인 럭비가 아직까지도 영국 명문사립 학생들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래서 또다른 아이러니다. 그들은 축구를 노동대중이 향유한 순간부터 학교 담장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 흔적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당장 세계 최고 명문 클럽들의 연고지를 꼽아보라.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산업혁명이 태동한 맨체스터) 리버풀(산업혁명을 유럽대륙에 전파시킨 무역항 리버풀) 이탈리아의 AC밀란과 인터밀란(이탈리아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 유벤투스(이탈리아 최대의 자동차도시 토리노) 스페인 FC바르셀로나(스페인 제1의 공업도시 바르셀로나) 프랑스 AS생테티엔(프랑스 최초로 철도가 부설된 철강도시 생테티엔)…

예외가 없다. 철강도시, 석탄도시, 섬유도시, 아니면 무역항이다.
거기서 부두노동자와 산업노동자들이 축구를 하며 노동의 피로를 씻고 분노를 정화하고 연대를 다졌다. 한국의 조기축구회를 오늘의 유럽축구클럽과 비교하는 것은 그래서 ‘지나친 비약’일지언정 ‘허황된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축구공은 둥글다. 그라운드 저편에서 이번에는 자본가들이 달려왔다. 산업자본이 전세계적인 금융투기자본으로 확장해 들어가던 20세기 초반 이후 자본가들은 축구를 ‘근대의 카니발’로 허락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또다른 이윤창출의 시장으로 개척해갔다.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축구클럽은 자본가의 코퍼레이션으로 변모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대규모 경기장들이 들어섰고 각 도시의 클럽을 묶는 각종 ‘리그’들이 생겨났다. 돈을 받는 전문선수집단이 생겨났고, 전국을 엮는 철도를 따라 이동하며 돈을 받고 서로 다른 클럽간의 경기를 보여주는 일이 쏠쏠한 비지니스로 떠올랐다. 구경꾼은 널려 있었다. 노동자는 이미 축구에 ‘중독’돼 있었던 것이다.

이제 노동자는 자신의 축구로부터 ‘소외’된다. 한 게임 뛰고 선술집으로 달려가 술 마시며 조합과 노동당 이야기를 소리높여 토론하던 일련의 ‘축구 스케줄’은 자취없이 사라졌다. 대신 자본주의가 세워 올린 거대한 경기장에서 수백억원을 받는 축구귀족의 경기에 환호하며 다국적 기업의 광고에 눈길을 주고 거대한 구단의 이윤에 몸바칠 뿐이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은 노동대중의 잔치는 아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축구공은 둥글다. 월드컵이 아닌 축구의 역사에서 반전의 기회는 다시 온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축구를 ‘폭력적 남성성의 아이콘’으로 읽을 때, 나는 고대 이래 변함없는 ‘노동대중의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본다. 거기에 환호하는 붉은악마들로부터 나는 ‘카니발의 현대성’을 본다.

그리고 오늘 그런 해방구의 카니발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 여전히 노동대중임을 확신한다. 거기에 21세기 축구와 노동자계급의 어렴풋한 고리가 있다. 노동자 축구 화이팅!
[ 90호] 6.3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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