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편집위원 sang21@hani.co.kr
지난 5월1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향후 10년에 걸쳐 농업지역 개발, 농가 보조금, 농산물 가격 지지 등을 위해 농업 부문에 1천7백억달러를 지출하는 내용의 농업법안에 서명했다. 이는 1996년 클린턴 행정부 때 연방농업개선개혁(FAIR)법을 제정하며 삭감한 예산액보다 7백3십여억달러 늘어난 것이다.
1천7백억달러 중 5백70억달러는 밀, 옥수수, 수수, 보리, 쌀, 면화 등을 재배하는 농가에 보조금으로 직접 지급된다. 또 이 작물들의 경우 작황이나 시장 가격와 무관하게 일정한 가격이 보장되는 ‘목표가격제’의 적용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추곡수매가와 비슷한 이 제도는 농산물 가격을 시장 기능에 맡기는 96년 FAIR법에 따라 폐지됐다가 이번에 다시 도입됐다.
농업법은 농토와 습지 등을 보존하고, 5년간 미국에서 거주한 합법적 이민자에 대한 식량 지원(푸드 스탬프) 예산 2백30여억달러도 포함하고 있다. 부시는 이를 근거로 이 법을 “자비로운 법”이라고 추켜세웠다.
농업법에 대한 유럽연합 등 미국 안팎의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자유무역’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작황이 좋아 공급량이 늘어나거나 농산물 수요가 줄어 국제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농민들이 경작량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로부터 받는 안정적인 보조금으로 인해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이런 유인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농산물 가격의 추가 하락, 이에 따른 보조금 추가 확대라는 악순환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있다. 다른 나라들한테는 농업 보조금을 줄이라고 하면서 미국은 되레 늘린다면 자유무역 확대 주장이 씨알이 안 먹힌다는 얘기다.
농업 부문에서도 자유무역이 좋다는 주장은 선진국들이 보조금을 없애면 농업이 경제의 주축인 개발도상국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곡물 수출이 늘어나게 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48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에서 농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7%에 이르는데, 미국의 보조금 확대는 이들 국가의 농민들에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보조금 확대에 따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향후 3년에 걸쳐 빈국에 1백억달러의 개발원조를 추가로 늘리겠다는 제안을 해놓고 있다.
국내·외 진보진영이 이번 미국의 보조금 확대 조처에 ‘자유무역’이란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곤란하다. 보조금 자체가 확대되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연방정부의 보조금에도, 1993년부터 99년까지 7만2천 가구가 넘는 미국 농가가 사라졌다. 게다가 농업법에서 목표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액을 보전하는 농산물 목표가격제의 재도입은 바람직스러운 정책이다.
국제농산물 시장은 가격 등락 폭이 격심한 ‘휘발성’을 강하게 갖고 있어 완충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표가격제는 곡물은 물론 1차 원자재를 수출하는 개도국에 일정한 교역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동안 미국의 농업 보조금이 곡물 수출업자와 대기업농에 집중적으로 배정돼 온 것인데, 농업법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지급된 농업보조금의 84%(6백2억달러)는 전체 미국 농민 2백만명 가운데 상위 10%를 포함해 전체의 25% 미만에 지급됐다.
지난해의 경우 상위 10%가 약 75%를 받았다. 이들 중에는 엔론 회장이던 케네스 레이, 은행가인 데이비드 록펠러, 농구스타인 스코티 피펜 등이 포함돼 있다. 가장 많이 생산하거나, 가장 많이 수출하는 이들이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셈이다. 그 결과는 가족농과 환경을 희생으로 한 곡물 수출업자와 거대 기업농의 번성이었다.
이런 악순환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한 농가에 지급되는 연간 보조금의 상한선을 두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농가당 연간 보조금 상한선을 27만달러로 하자는 수정안은 끝내 포함되지 않았다.
사적 토지소유자들로 하여금 수질 향상, 토양 침식 완화, 습지 회복, 야생 서식지 개선, 경작가능 토지 보전 등에 힘쓰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방안들이 모두 사라진 것도 이번 농업법에 갖고 있는 또 다른 핵심적 문제다.
작물 종류, 재배 장소, 농가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농민, 목장주, 산림 소유자가 이런 보존 대책들을 의무적으로 이행하게 하는 방안이 수출 기업농들의 로비로 인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방안들은 환경 보전과 함께 유휴토지를 만들어 농산물 가격 하락의 주범인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에 비춰, 미국 농업법은 대기업농에 더욱 유리하게 보조금을 배분해 국제 농산물 가격을 더 하락시키는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공화당이 주도한 농업법의 본질은 반자유무역이나 반시장원리가 아니라, ‘친기업적’이라는 특성에 있다. 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진보진영이 비교역적인 농업을 자유무역의 그물망에서 떼어내는 계기로 미국의 농업법을 활용할 때 꼭 감안해야 할 사안이다.
[ 90호] 6.3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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