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진/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지난 5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현재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 수를 3분의 2가량 줄이기로 하는 역사적인 핵무기 감축협정에 조인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현재 각각 6천기와 5천5백기 수준인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핵탄두를 향후 10년 동안 1천7백∼2천2백기로 줄이게 된다.
군축협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 효력 2009년까지 유지 △군축의 이행을 위한 쌍무 이행위원회 설치 △군축협정의 양국 의회 비준 △협정의 유엔 등록 등이다.
양국은 또한 러시아-미국간 새로운 안보전략 관계를 포함한 양국관계 전반에 관한 기본 원칙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 안보질서 확립을 위한 러시아-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간 협력 증진, 국제 테러리즘 근절을 위한 공조체제의 강화에 합의했다.
그밖에도 두 정상은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적대관계보다는 동반자 관계가 호혜적임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도입 △미국의 대(對)러시아 투자 확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양국간 철강 및 닭고기 무역 분쟁 해소 △항공 및 컴퓨터 등 첨단산업 협력 확대 방안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번 러·미 정상회담의 결과로서 맺어진 군비축소협정은 세계 양대 핵강국이 2차대전 이후 계속 되어 온 냉전시대를 실질적으로 청산하고 새로운 동반자적 협력관계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곧 10여 년 전 소련의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주도에 의해 ‘인류공통의 이해’에 기반한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의 평화공존 및 군비축소 이니셔티브에 따라 세계적 수준의 냉전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했지만 미완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이번 협정에 의해 비로소 완결됐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협정이 두 나라의 약속대로 철저하게 준수된다면, 그리고 이 협정이 새로운 추진력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군축이 더욱더 탄력을 받으며 전개된다면 이번 회담이 ‘실질적인 냉전 해체’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것이 그리 과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미국-러시아의 아름다운 우정’(뉴욕타임즈)에 따라 세계인류는 가공할 핵무기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특히 국제질서의 변형에서 한 발짝의 진보라도 그것을 가능케 한 주체들의 선의만으로 이뤄진 것은 거의, 아니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번 ‘역사적 협정’ 또한 미국과 러시아의 냉정한 이해타산과 힘의 관계로부터 가능한 것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에서 ‘아름다운 우정’이란 승자의 표정관리에 대한 수식어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번에 미국은 더 이상 과도한 핵전력을 유지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러시아에 대해 ‘경제협력의 확대’라는 당근을 주기로 약속하면서 지난해 ‘9.11테러’ 이후 미국의 반테러전쟁 전선에서 충실한 협력자의 역할을 해 온 푸틴의 러시아를 포용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으로서는, 21세기의 떠오르는 강자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모색하면서 자국의 패권주의 정책에 대한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러시아를 품안에 끌어들이는 것이 세계전략 차원에서 적절한 대안이었다.
러시아는 이번 협정에서 그간의 입장에서 물러나 핵탄두를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한 줄기차게 반대해 오던 나토의 동유럽 확대(과거 소련의 ‘위성국’이던 체코, 폴란드, 헝가리가 99년에 가입했고 올해 11월에는 발트3국이 가입할 예정이다)를 용인하는데서 나아가, ‘러시아-나토이사회’ 창설이라는 ‘로마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러시아=유럽국가’임을 천명해 온 푸틴의 외교적 신념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푸틴의 그러한 결정이 “냉전이 끝났다면 냉전의 유물인 나토가 왜 필요한가”라는 러시아 내부의 정당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 추진에 대한 타협에 이어, ‘테러집단의 근절’을 명분으로 중앙아시아에 영구주둔을 꾀하는 것을 러시아가 묵인하고 있는 사태는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는 자국의 안보적 위협을 애써 과소 평가하는 ‘실용주의자’ 푸틴 정부의 진정한 의도와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게 석유를 팔 수 있게 되고 미국 강경파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그 모든 것이 다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 90호] 6.3 ~ 6.9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