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 부르건 못 부르건, 좋아하건 아니건 간에 노래에 대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드물 듯하다. 노래를 못 불러서 남 앞에서는 절대 노래를 안 부르던 한 새내기가 있었다. 현란한 이별 노래들은 그녀의 코드에 맞지 않았다. 반주가 있는 노래방에서는 더욱 초라해졌다. 반주도 커버할 수 없는 음치에 박치.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잔디밭에 모여앉아 술을 마실 때면 자진해서 흥얼거리곤 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우 워어∼ 쑥스럽게 씩 웃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높이면 둘러앉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답했다.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수많은 추억과 둘러앉아 노래하는 힘과 용기를 준 밴드가 있었으니, 바로 변혁을 꿈꾸는 록밴드, '천지인'이다.
끈질긴 우리 가난한 삶
천지인 멤버들이 함께 연습을 하는 날은 화요일과 금요일 이틀이란다. 홍대에 있는 그들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을 때는 마침 주인집에서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날이었던지라 연습실 앞은 은근히 난장판이었다. 검은 방음벽에 둘러싸인 그들의 작은 연습실에는 악기와 컴퓨터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상상했던 이미지는 조명이 주는 효과였던 걸까. 힘차고 조금은 이질감을 주는 록밴드 대신 앉아있던 조용조용하고 친절한 언니와 오빠들에 떨리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됐다.
다섯 명의 천지인 중 우선 건반의 김정은 씨와 기타의 문성억 씨, 드럼의 현상익 씨와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됐다. 검은 옷에 무뚝뚝해보이던 정은 씨는 그녀만의 사투리에 웃음이 잘은 사람이었다. 건반의 정은 씨는 94년부터 천지인에 함께 한 가장 오래 된 멤버다. "사람들이 10년 째 똑같은 것만 물어봐. 언제부터 함께 했어요, 그 전에는 뭐했어요, 어휴, 지겨워." 친구 사이라는 성억 씨와 상익 씨는 견원 지간, 혹은 악어와 악어새 같았다. 드럼의 상익 씨는 올해 오디션을 통해 천지인에 합류한 새 멤버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하다가 97년 우연히 천지인을 알게된 기타 성억 씨는 '놀러오다 친해져서' 지난해 멤버가 됐다. 이전부터 상익 씨를 알았다는 그는 "내 인생에서 제일 실수가 담배랑 이 친구 만난 거"라며 마주 보고 웃는다. 약속을 잡았던 베이스 허훈 씨는 다른 중요한 약속이 생겨 오지 못한다고 한다. 뒤늦게 도착한 보컬 엄광현 씨. 그의 매끄러운 머릿결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얼마짜리 매직이냐고 꼬치꼬치 물었지만 광현 씨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이들이 2002년, 천지인이다.
92년 결성된 이후 그 시절의 멤버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이들이 천지인인 이유. "대학생신문이랑 비슷해요. 대학생신문도 기자들은 늘 새롭게 들어오지만, 그 정신이랄까 색깔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잖아요. 뭐 변한 부분도 있겠지만. 대학생신문을 대학생이 만드는 것처럼 천지인도 늙으면 할 수 없는 음악이기도 하고." 정은 씨가 "그럼 난 뭐지?"하고 쓰러진다. 다들 "정말? 뭐지?"
2000년 이들은 여러 사정으로 반년간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천지인 해체됐다며?"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대에 서면 사람들은 아직도 "아니, 천지인이 아직 있었단 말야?"하고 반가움 반, 놀라움 반 섞인 탄성을 지른다. 다른 문제도 많지만, 가난한 민중가요 밴드가 무대에 설만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한 현실이 천지인을 늘 젊은 밴드, 해체설에 휩싸인 밴드로 남아있게 하는건지도.
Trials of our Times
요즘 대학 대동제 공연으로 한참 바쁠 시기. 스케줄 표가 나름대로 꽉차 있건만, 정은 씨는 한숨을 쉰다. "정말 바빠야되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바쁘다"고. 공연은 그들에게 삶이자 생계수단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연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 달 있었던 한국노동자회 발기인대회에 공연을 하러 갔던 천지인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회에 가입했다. 비록 가입비가 모자라서 다섯 멤버 모두가 가입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같다고. "운동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맘에 들었달까요. 지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차별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사 이기주의, 대기업 노조주의……. 그 안에서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외면당하잖아요." 이번 3집 앨범에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노래(Trials of our Times)를 담을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들의 생각이다. 공연 요청은 기본적인 조건과 생각이 맞으면 받아들이지만, 이주노동자, 장애인, 비정규직 등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 "보통 집회판에서 공연하면 말만하면 힘드니까 공연 하나 넣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희는 힘 실어주기 위해 가지만, 저번 노동자회나 이주노동자 집회 같은데 공연가면 오히려 힘받고 돌아오죠."
희망을 위하여
'민중''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무엇은 늘 검증받는다. 사실 무엇이 민중가요고 무엇이 대중가요인지 규정내리기란 어려움에도, 민중가요는 존재한다. "자세와 생각, 의식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가 중요하겠죠." 그렇다고 치더라도, 예술 혹은 음악을 하는 사람의 결벽성 혹은 순수성이랄까, '이것이 과연 민중가요냐'라는 논쟁이 벌어질 때면 당혹스럽다. 얼마 전 노동의 소리 게시판에서 논란이 됐던 유정고 밴드 이야기에 대해 정은 씨는 "스스로 변별점을 갖지 못하는 민중가요판에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논쟁이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민중가요판의 협소함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식구 같거든요. 이런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하면 민중가수고, 아니면 아니고…….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닌데 말이죠." 진보란 다만 스스로 자신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모든 기득권을 외면하고.
광현 씨는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판박기를 거부했다. 음악을 하되,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있듯이. 그들이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민중가수니 뭐니 하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또한 그들의 음악이기 때문인 것이다. "록, 힙합, 레게, 탱고……. 모두 저항적인 음악이거든요. 데모할 때 연주되던 것들이죠. 우리나라에 운동권이라는 말이 있다보니 민중가요니 대중가요니 하고 나뉘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경계가 없죠." 성억 씨는 음악 자체의 저항성을 이야기한다. 누군가 말했던가. 모든 예술은 사회주의적이라고. 그것은 장르나 사람의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은 굳이 나누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대에 서고, 노래를 하기 위한 여건은 결코 녹록치 않고, 음악 하나 하겠다는 열정은 오해받기 일쑤였을 것. 어느새 민중가요계에서 가장 오래도록 제자리 지키고 있는 밴드가 된 그들, 2002년의 천지인이 언제까지 굳게 잡은 두 손을 풀지 않기를.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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