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위원장,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강릉교도소 전역 전화점검 하려다 만 사연  


*홍준표 위원장이 수감시절, 교도소 전역 전화점검을 할 뻔 했다는 얘길 하며 웃고 있다.[photo:copyleft-workingvoice]

교도소에서는 수감생활 상태에 따라 한 달에 몇 차례 친인척에 한해 전화를 할 수 있게 한다. 강릉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한국통신계약직노조 홍준표 위원장은 한 달에 2번 전화를 할 수 있었는데, 전화를 하기로 예약한 5월 7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아내를 생각하며 설레는 맘으로 공중전화박스에 갔는데, 웬걸 엄청나게 쏟아진 비 때문에 그만 전화가 고장나 버린 게 아닌가. 담당관에게 얘기를 하니 빨라도 오후 4시는 돼야 복구가 가능하다고 한다. 기다리는 아내를, 걱정할 아내를 생각하니 한시가 급했다.

"제가 밖에서 전화만 20년 다룬 사람"이라고 말하고 "한 번 고쳐보겠다"고 했다. 20년 손 맛이 어디 가랴? 홍 위원장은 순식간에 전화를 고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 소문은 금새 교도소 안에 자자히 퍼졌고, 조금 있으려니 보안과장이 홍 위원장을 찾아왔다. "교도소 건물이 낙후돼서 전화선을 점검 받아야 하는데, 전체적인 전화점검을 부탁드릴 순 없겠냐"고 하면서. 그래서 5월말로 일정을 잡고 도와줄 사람까지 구해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덜컥 출소를 하게 된 것이다.

0.75평 독방에서 매일 아침 조합원들의 편지를 읽는 것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는 그는 "감옥생활을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했다"고 말한다. 연맹 소식지나 민주노총 기관지「노동과세계」는 물론 월간「비정규노동」,「노동자의 힘」,「진보정치」,「이론과실천」, 기관지「사회당」과 같은 간행물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신문도 가위질되는 것 없이 반입이 돼 정세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단다. 가끔은 형, 아우 하면서 지내던 조합원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이 들려 무척 가슴이 아팠지만, '동지애'로 가득한 조합원들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힘든 걸 이겨냈단다.

그는 또한 상당한(?) 컴퓨터 실력도 갖출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해 독수리 타법이었던 그가 분당 300타까지 칠 수 있게 됐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사실 5월말에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 시험도 보려고 했는데 이제 물 건너갔죠."

홍 위원장이 한국통신에 입사한 것이 82년이니까 정확히 그는 20년 동안 전화가설, 유지보수 업무를 한 셈이다. 그만큼 에피소드들도 많다. 88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계약직' 신분이면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통신위원'을 맡아 신라호텔 전화선로를 담당했었고, 가까이는 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하는 3.1절 행사가 장충공원에서 열렸을 때 중부수도사업소부터 케이블을 빼내 거의 2km를 달려와 전화 15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화가설 중 하나는 86년 전남 곡성 전나무전시장 건. 당시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큰 저수지를 횡단했어야 했는데, 그 넓은 저수지를 헤엄쳐 갈 수 있는 사람은 강원도 속초 출신으로 5살 때부터 수영을 했던 홍 위원장밖에 없었다. 케이블을 입에 물고 헤엄쳐서 결국 저수지 너머까지 전화를 설치할 수 있었단다.

그런 홍 위원장이 꺼내는 가슴 아픈 얘기. "벙어리 부부였어요. 전화를 가설해 달라더군요. 벙어리인데 무슨 전화가 필요할까 했더니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소원이라고 해요. 경기도 이천이었는데, 전봇대 27개를 타고 가야(꽂아야) 설치할 수 있는 외진 곳이었어요. 힘들 게 설치하고서도 뿌듯했어요."

하지만 홍 위원장에게는 단지 뿌듯함보다 민영화가 됐을 때 이윤추구에만 눈이 먼 재벌기업들이 이런 벙어리 부부의 바람을 들어나 줄 지 그게 더 걱정이다.

영어의 몸으로 있으면서 또한 가슴이 아팠을 때는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의 입학식에 함께 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 딸이 자기 반 학생 35명 가운데 학원을 다니지 않는 2명 중 1명이라고 전해왔을 때. 하지만 홍 위원장은 더 이상 자녀들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버지의 직업란을 쓸 때 '계약직'이란 것 때문에 주춤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녀들에게도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차별철폐, 정규직화 싸움을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아직은 당장 어떻게 하겠다고 얘기하기 이른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조합원들 가정적인 문제, 개개인들의 아픔을 잘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제 몫인 것 같습니다. 6월부터 본격화될 합의안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작업을 잘 매듭짓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습니다."

워킹보이스 이정희 기자 goforit@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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