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에게는 단협안도 휴지조각

한진관광, '조합원 타 회사 전환 않겠다' 약속 불구 전적 추진 물의


대한항공 면세점에서 근무하던 72명의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전적명령에 반발하고 한달 째 일손을 놓고 있다. 이들은 제주와 서울, 인천 등의 대한항공 면세점에서 도급업체인 한진관광의 소속으로 일을 해 왔지만 대한항공이 한진관광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함에 따라 새 도급회사로 옮겨갈 것을 통보 받았다.

그러나 한진관광노조 면세점지부(지부장 유은경)는 이러한 일방적인 통보가 단협위반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노조와해'가 목적이라며 30여 일 째 본사출근투쟁과 중식집회를 갖고있다.

지난 91년 대한항공은 (주)한진관광이 운영하던 면세점을 인수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면세점'만 사들였다. 면세점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관광 소속으로 그대로 남아 인력도급의 형태로 근무해 왔다.
그러던 중 대한항공은 4월30일부로 한진관광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그리고 대한항공이 100% 출자한 자회사인 용역전문업체 항공종합서비스로 한진관광 소속 면세점 직원 112명을 전적시켰다. 조건도 비교적 양호하다. △전적시 고용을 보장하고 △현 직급 및 호봉, 근속년수를 인정하며 △현재와 동일한 임금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진관광노조 면세점지부 조합원 72명은 회사가 '보장'한다는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대한항공으로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연일 한진관광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노조는 또한 지난해 임금협상 때 '조합원을 타 회사로 전환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회사측과의 합의 내용을 근거로 이는 명백한 단협 위반이며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측은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은 대한항공측의 결정인데 하도급업체인 한진관광이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겠냐"며 "합의문 이행은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또한 "항공종합서비스에서 전원을 고용승계하고 동일한 근로조건을 보장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전직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나물에 그 밥'

한진관광노조 면세점지부는 지난해 임금협상 때 파업을 통해 "회사는 대한항공과의 도급계약을 유지시키며 조합원을 (주)항공종합서비스를 포함한 타 회사로 전환시키는 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문을 끌어냈고, 2000년에는 "조합원의 신분에 변경을 초래하는 경우 사전에 통보하며 근로조건 및 고용승계에 관하여 조합과 합의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하지만 이번 면세점 조합원들의 고용승계과정에서는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만이 있었을 뿐이다.

회사도 할 말은 있다. 원청업체에서 경영상 적자를 이유로 도급계약을 해지한 것인데 더 이상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직원들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전원 고용승계'까지 약속을 받아내는 등 할 만큼 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전원 고용승계'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도급을 넘겨받은 항공종합서비스 측은 조합원들이 전적동의서 작성을 거부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자 30여명의 추가 인원을 채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진관광의 인사관리를 맡고 있는 김석규 상무는 "전원 다 고용승계 할 것을 약속 받았는데 전직을 못하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항공종합서비스 측에서 이미 인원을 채용했다"며 "모두 고용승계를 해 주겠다고 했는데 노조가 '생떼'를 쓰는 바람에 결국 해고자가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진관광이나 항공종합서비스나 어차피 대한항공의 계열사이고 모든 고용조건을 보장해 준다고 하는데 거부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고개를 저었다.

덧붙여 그는 "항공종합서비스는 대한항공이 100% 출자한 자회사이고 규모가 커져 가는 기업인데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며 마치 한진관광의 관리자가 아닌 대한항공이나 항공종합서비스 측의 관리자가 할 법한 말들을 했다. 그야말로 한진관광이나 항공종합서비스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된다.


불법파견, 위장도급, 노조파괴 의혹

대한항공은 10년이 넘게 한진관광으로부터 인력을 공급받는 도급형태를 유지해 왔다. '도급'이라면 면세점에 대한 경영을 모두 한진관광에 맡기고 그 결과에 대한 대가만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면세점마다 대한항공 소속의 관리직 점장을 두어 한진관광 용역직 직원들을 관리감독 하게 했다.

사실 먼저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 이후 고용된 사람들도 자신이 도급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한진관광이 면세점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고 자신들도 한진관광의 정규직으로 입사한 만큼 계속해서 한진관광에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입사를 하고 보니 면세점 직원들은 대한항공이 면세점을 매입하면서 직원들의 고용은 승계하지 않았고 다만 외부적으로는 도급형태를 취하면서 대한항공의 관리감독을 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도급계약을 해지함에 따라 면세점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단체협약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한진관광의 면세점직원들이야 새 도급업체에서 고용을 승계 해 주었다지만 다음에 도급회사가 바뀌면 어찌될런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노조는 이러한 간접고용의 형태가 사실상 '위장도급'이며 '불법파견'이라는 주장을 하며 법적인 소송을 준비중에 있다.

또 한가지 의혹은 왜 굳이 '그 나물에 그 밥'인 회사로 업체를 변경했느냐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 말대로 어차피 같은 대한항공 계열사인데도 자회사를 만들고 그 쪽으로 직원을 고용승계하고 하는 귀찮은 일을 하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진관광 본조의 김동현 조직부장은 "한진관광노조 조합원의 과반수가 면세점 직원들인 만큼 '노동조합 흔들기'가 아니겠느냐"며 "대한항공 계열사 가운데 가장 투쟁력이 높았던 노조를 구조조정을 이유로 탄압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면세점 지부의 유은경 지부장은 "그동안 대한항공은 구조조정이란 미명 하에 많은 직원들을 용역업체로 넘겨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다"며 "전적대상인 112명이 모두 여성조합원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에게 고용불안을 조장하는 대한항공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의지를 다진다.

유지부장도 그렇지만 전적을 거부하는 72명 여성들 모두 항공사 광고에나 나올 듯한 화사한 미소와 훤칠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리저리 팔려 다니면서도 대한항공이라는 거대자본에는 말 한마디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그 예쁜 미소를 잃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워킹보이스 김경란 기자 eggs95@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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