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시'에서 노동운동 부정적 서술로
'가버린 세월을 탓하지 마라, 지나간 청춘일랑 욕하지 마라, 또 다시 일어나 역사에 발맞추어 하나! 둘! 셋, 끝내는 우리가 건설할 세상을 향해 앞으로!'.
노동가요 '또 다시 앞으로'의 한 대목이다. 역사에 발맞추어 역사의 제 길을 걸어가려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간 세월과 가버린 청춘은 바꿀 수도 없앨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그때 거기'의 역사가 될 '지금 여기'서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역사, 당당하고 떳떳한 역사와 미래를 만들려고 역사를 배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 배워온 역사
누구에게도 어제 없는 오늘 없고, 오늘 없는 내일 없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며, 미래의 역사다. 노동운동의 오늘도 마찬가지다. 선배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결과인 노동운동의 현실을 점검하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전망하려면 오늘을 비춰볼 수 있는 역사의 거울과 미래를 밝혀주는 역사의 등대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가 노동자이기 때문에 선배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역사, 노동의 역사, 노동운동사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국사 책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왔을까.
우리 역사책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보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것은 중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사'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우리 역사 교과서는 국가에서 만든 '국정' 국사 교과서 한 종류였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몇 종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쓰도록 한 검인정에서 하나만 쓰도록 한 국정제는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 정당화하고, '양순한 백성'을 만들려는 유신체제의 산물이었다. 1974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유신을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하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쓰고 있다. 국정제의 의도를 바로 드러낸 대목이다.
국정교과서로 국가가 서술 '독점'
국사교과서의 내용과 형식은 그 뒤 몇 차례 바뀌었다. 1990년에 바뀐 교과서부터는 유신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변질시킨 경직된 권위주의 체제라고 호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서 우리 역사를 독점, 통제, 강요하는 교과서제도는 아직도 그대로다.
그러면 30년 가까이 우리 역사를 독점해온 국사교과서는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어떻게 다뤄왔을까.
1974~1989년 국사 책에는 노동운동이 단 한 줄도 쓰여있지 않았다. 1990년 교과서에 비로소 '노동운동'이라는 항목이 설정되었다. 그러나 내용은 '70년대 이후 노사분규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1987년 이후 노동운동도 활성화되었다. 정부는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의 합리적 조정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마쳤다. 1996년 9월 바뀐 교과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운동' 항목이 20줄에서 24줄로 늘어났고, 관련 사진이 실린 정도다. 그런데 교과서를 통틀어 단 한 장 실린 사진은 노사협조주의를 강조하듯 노사가 다소곳이 협의하는 장면이다. 1987년 이후 끝부분은 이렇게 서술되었다.
"우리사회에서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노동운동도 활성화되었다.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기업가의 경영합리화와 인격적 대우 등을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자의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정부는 저임금문제 등 전반적인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개정했으며, 기업가와 노동자의 인간적 관계와 새로운 직업윤리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전과는 다른 노동문화가 정착되고 있고, 노동환경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생산성도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 역사 아는 게 노동해방 출발점
이것이 1996년 9월부터 2001년까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노동운동 서술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과 투쟁의 역사, 노동운동사를 거의 배울 수 없었다.
붕어빵과 국화빵 속에는 붕어와 국화가 없다. 오히려 없어야 진짜 붕어빵이고 국화빵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다가올 몰락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존재와 투쟁이 빠진 역사는 진짜역사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만나는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 자체가 아니다. 과거의 수많은 흔적과 기억을 누군가가 선택하여 재구성하고 해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현실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미래를 전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장악하는 자(세력)가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노동해방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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