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시평]통찰력은 용기와 대담함의 동반자다

최형록(계간 '진보평론' 편집위원)

대통령후보 선출에 과학자가 입후보하는 한편 대학교의 이공계 지망생이 줄고 있다. 이 두 사건에서 표출 방식은 다르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과학자들의 사회적 위상이 중요함을 읽기란 어렵지 않다. 사회적 요구와 기대가 큰 것에 비례해서 한국의 과학자들은 과연 사회적 책임을 깊이 느끼고 그 책임의 원천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인식하는 데는 네 개의 장(場)을 설정할 수 있다. 계급투쟁이라는 장,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장, 동양과 서양문화라는 장,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라는 장이다. 여기서 이 네 개의 장을 모두 활보하는 것은 탁구대 위에서 축구를 하려는 격이다. 따라서 최근 사태와 관련해서 계급투쟁의 장, 여성해방운동의 장을 간단히 살펴보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라는 글에서 한 전공의는 2000년 의료사태를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린 이데올로기 전쟁'이라고 보면서 경제적 이해관계란 약값에 들어있는 돈이고 여기서 이데올로기란 의료사회주의와 의료자본주의 간의 싸움을 뜻한다고 한다.(주1) 비록 이 전공의의 관점은 조잡하지만 의료사태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있는 사실 가운데 한가지는 맑스가 '계급투쟁'이라는 사상의 기초를 세웠다는 것이다. 사실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은 19세기 프랑스의 귀이조, 티에르 같은 부르좌 역사학자들의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근대적 계급투쟁의 고향, 프랑스에서 계급투쟁적 단체를 먼저 결성한 세력은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이었다. 의사들을 포함하는 과학기술자들의 계급적 위상은 무엇인가? 여기에서는 계급의 위상을 잉여가치의 착취-피착취 과정, 민족주의, 의회주의적 합법주의 문제들을 포함하는 정치투쟁과정, 가부장제,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 문제 등을 포함하는 문화혁명의 과정 가운데 어느 하나의 과정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이 세 과정의 상호의존적 상호과정 속에서 파악한다(중층결정적 접근방식).

과학기술자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과학기술혁명 시대의 사회변혁운동에서 과학기술자들 자신의 능동적 참여 그리고 변혁운동단체의 적극적 견인은 필수적이다. 변혁운동의 하나의 과제는 과학기술자들과 함께 '과학기술 지식의 상품화'를 '과학기술 지식의 사회화'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생성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자본주의적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서 산-학-연이 공동모의 하는 것을 저지시켜야 한다.
한가지 실례를 보자. 영국의 정신치료 약학자인 데이빗 힐리는 토론토대학교의 약물중독과 정신건강센터로부터 일자리를 제안받고서는 승낙했다. 그는 그 센터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높은 이윤을 낳는 정신관련 의약품 프로작이 복용자들의 자살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센터의 주된 기금출연자가 바로 그 프로작의 제조회사였다. 그 발언이 있은 지 일주일 내에 그에게 제안되었던 일자리는 철회되었다.
한국에는 과연 힐리와 같은 과학자가 얼마나 있을까? 과학자의 타락 중 한가지 악명 높은 관행이 '유령집필(ghosting)'이다. 어떤 회사에 고용된 과학자가 공정성을 조작하기 위해서 자신의 논문을 다른 사람이 집필한 것으로 해서 발표하는 수법이다.
이런 수법과 차원이 다른 것이 유전공학에 대해서는 국민의 혈세를 아깝지 않게 지원하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유전공학의 위험성을 규명하려는 연구에는 거의 지원하지 않는 정책이다.(주2) 이런 외국의 사례는 대학교를 '국가 경쟁력'이라는 허울로 남한 재벌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한 시장지향적 '지식공장'으로 타락시키려는 경향을 좌절시키지 못할 때 가까운 미래에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른바 '노풍'의 의미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노무현씨가 직업정치인 출신이라기 보다는 법조인이라는 전문 직업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뿌리가 깊어졌으며 그에 따른 각 분야 전문가집단의 형성과 그들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다. 전문가집단의 일원으로서 과학기술자들은 지식의 전문성에 따르는 정신의 분절(分節)성을 변혁적 자세로 '절합(節合)'해야한다. 파동방정식으로 1933년도 노벨상을 수상한 진보적 물리학자 에르빈 쉬뢰딩거는 "전문적 연구는 전체 지식의 통합이라는 맥락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주3) 이런 관점은 지식의 창조적 깊이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삶 자체의 의미의 폭과 깊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런 접근방식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이 사회의 전체적 소외심화 그리고‘정신상태의 소외심화'로부터 유래하는 것
이다. 유럽에서는 (가) 하나의 학문분야의 대상을 다수의 학문분야에서 동시에 연구하기 (나) 하나의 학문분야의 연구방법을 다른 학문분야에 이전하여 연구하기 (다) 동시에 여러 학문분야 사이에서, 여러 학문분야를 가로지르면서, 모든 분야를 넘어서 연구하기를 논의하면서 (다)의 연구방식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고민하고있다.(주4)

여성해방운동과 노동계급해방운동의 교집합부분

여성해방운동과 노동계급해방운동의 교집합부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현재 두드러진 원소는 가사노동, 남녀 성 역할 모델과 관련 있는 가부장제일 것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시장, 노동, 장르' 연구실의 공동실장인 카테린 마리에 따르면 과학계는 '여자 없는 세계'처럼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특히 "딱딱한" 과학, 즉 수학, 물리학, 화학을 지망하는 여학생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주5) 이런 경향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만연한 듯하다. 최근 유럽연합은 "여성과 과학" 분과를 구성하면서 기회균등의 원리를 실현시켜나가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그 원리는 (동일노동)동일임금 수준에 제한되고 있다.(주6) 여성과학자들의 불만 가운데 한가지는 고위직에 여성의 대표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프랑스의 현실만은 아닐 것인 즉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교육적 투자와 기대에 있어서 아들에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학생들 자신이 과학이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남녀유별'은 마리가 상기시키듯이 '역사적 유제(遺制)'이다. 그 '역사적 유제'의 뿌리는 '가부장제'이며 이것으로부터 남성지배적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깨비불은 현실에 있는 것일까? 없으면서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인(燐)이 산소와 결합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눈은 있으되 과학적 개념이 없고 도깨비라는 허상을 두려워한다면 가상 현실적으로 존재함으로써 현실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존 자본주의'의 대안은 그냥 눈이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적지 않은 맑스주의자들의 용기 그리고 체제 비판적 정신도 무너져 내렸다. 통찰력은 용기, 대담함의 동반자다. 우리에게는 활화산의 불도 필요하지만, 겉보기에 약한 듯하나 '지구적(持久的)' 파괴력을 품고있는 '은근한 불'도 필요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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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대한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출범기념 세미나 자료집』, 2002년 5월 4일, 42면.
(주2) 매완호, "대기업 = 악질 과학? ", www. i-sis.org/, 2001.5월 29일 보고서.
(주3) 쉬뢰딩거, "과학과 휴머니즘" 『양자물리학과 세계의 표상』, 파리, 쇠이유, 1992년, 28면.
(주4) 바사랍 니콜레스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전망, 학문분과 통합적 연구", perso.club-internet .fr/nicol/ciret/
(주5)“딱딱한 과학의 소수 여학생들”, www. lemonde.fr/, 2002년 4월 23일자.
(주6) 낸시 레인, "과학계에는 왜 그토록 여성이 적은가?", www.nature.com/debates/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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