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창]"진보는 우리 동네부터"

노르웨이 사회주의좌익당에서 배우자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교수
이번의 지방선거는 아직까지 정치적인 ‘날개’를 펴지 못한 민주노동당에 엄청난 기회를 줄 것이다. 비록 ‘작은’ 지방선거지만, 노르웨이 등 서구 국가의 사례로 봐서는 그 정치적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실, “진보는 우리 동네부터”라는 말은, 노르웨이 진보계의 한 불문율이자 정계의 상식이다.

1백년 이상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최근 관료화·보수화 때문에 민심을 잃어 16∼18%밖에 지지를 얻지 못한 노동당을 잘 따라잡은 사회주의좌익당(좌익당, 최근 전국 지지율 14∼16% 폭)은, “지역에서의 작은 진보”를 정치 전략의 한 주춧돌로 세웠다.

사실 지역 차원에서야말로 좌익당이 자기 차별화의 효과를 가장 잘 이룬다. “사회정의”, “복지국가 증강” 등의 거대 표어는 언뜻 보기에 노동당과 비슷해도, 보수화된 노동당보다 지역주민의 고충을 훨씬 잘 풀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설령 미국 주도의 나토(NATO)에 대한 불신과 궁극적 탈퇴, 세계 주변부에 대한 국고 재정 지원의 획기적인 증액 등의 좌익당의 장기적 목표를 “너무나 급진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도, 좌익당 지방정치인들의 민중권익 표방 능력은 자타가 인정한다.

신자유주의의 칼바람이 스칸디나비아까지 휩쓸기 시작하는 요즘에, 좌익당의 지방선거 공약 중에서 가장 값진 걸로 평가받는 것은 “비정규직 양산의 결사 저지”다. 물론, 스칸디나비아에서 비정규직 채용 조건이 “직장여건 상 정규직 채용이 불필요·불가능한 상황”에 엄격히 국한되는 것은, 한국과 확연히 다른 형편이다.

그러나 여기 노르웨이에서도 일부의 기업들이 각종의 편법을 동원해 이 조건을 비켜나가려고 애를 쓴다. 결과는 노동자에게도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넘겨지는 피해일 뿐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간호사들이 최근에 많아진 일부 지역의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친절도 배려도 없어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내 일터”라는 확고한 관념이 없는 파트타임 간호사들이 과거와 같은 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경영진의 비이성적·편법적 비정규직 양산 경향으로 직접 당사자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고객까지도 가시적인 피해를 보는 만큼, 파트타임을 자진해서 맡는 이들 외의 비정규직이 없는 지역을 만들고자 하는―그리고 지역에서 비정규직의 고의적 양산의 흔적이 보일 때마다 고발과 시정에 정열을 쏟는―좌익당이 대중적인 인기를 잘 모을 수 있었다.

좌익당의 또 한가지 공약·활동의 요점은 사회의 약자인 대학생들의 복지다. 물론, 입시도 없고 학비도 안 내는, 그리고 장학금과 국외 연수 비용 지원, 생활비 보조 융자 등의 수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노르웨이 대학생들을, 한국적인 의미의 “약자”로 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노르웨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 비해서 호주머니 사정이 박한 만큼, 그들은 분명히 “특수 계층”이다.

최근 대학생들에게 대중교통 이용료의 40%의 할인이 주어진 것은, 전국학생협회와 가깝게 협력해온 좌익당의 공로이기도 한다. 이외에도 좌익당이 대대적인 퇴학 사태를 낳을 여지가 있는 오슬로대학교의 무리한 학기말 시험 평가기준 강화계획을 저지하는 등 학생의 편에 서서 전국·지역 차원의 많은 일을 해왔다. 대학생 사이에 좌익당의 지지율이 30∼40%에 이르는 것도, 노르웨이에서 투표권을 가진 고교 3학년생들 사이에서 좌익당이 “최고의 당”으로 통하는 것도 학생운동과의 제휴 방침의 소산이기도 한다.

비정규직 양산 방지·대학생 복지 증강과 권익 표방 이외에 유치원에 대한 국고 지원 증액, 지방 공무원의 증원과 장애인 고용의 활성화, 기업 경영에서의 여성 참여 증가 등 좌익당의 “작지만 큰 진보”는, 지금의 사민주의 모델의 허점들을 극복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노르웨이 건설의 거대 프로젝트를 튼튼히 받쳐준다. 그런 좌익당이 있기에 노르웨이 좌익 진영의 미래가 밝다는 믿음이 온다.
[ 90호] 6.3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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