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일(노동자의 힘 선전국장)
몸 동작에서 예술로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는 눈부시고, 발레를 보는 듯하며, 말할 수 없이 격정적이다."
"테크닉과 상상력을 겸비한 마라도나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중력과 평형의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
"나는 카메라맨으로 골대 뒤에서 바티스투타의 위력적인 슈팅을 보고 싶어진다. 그는 남성적인 섹시함 그 자체다."
그들이 움직일 때 관중은 넋을 잃고 열광한다. 그라운드는 자기 팀을 응원하는 선명한 깃발과 종이조각, 함성이 어우러진 한판 전쟁이다. 확실히 선수의 특출한 기량과 감독의 전술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역동적인 형상은 아름답다. 발전된 중계화면은 선수들의 몸 동작 하나하나에서 미드필드 운용전체를 뮤직비디오처럼 이어나간다. 이 동작을 보며 노동자는 일 순간이지만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해소하는 듯하다. 실제로 마술같은 드리블을 느린 화면으로 따라가면, 그리스 조각품과 같은 남성 몸의 놀라운 균형과 조화, 그리고 기하학적 비례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스포츠 스타는 대중들의 삶에 어떤 특권화된 모델, 신비적인 영웅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원동력은 남성중심의 파워풀한 몸놀림이다.
육체에 대한 열광을 이용했던 역사
히틀러가 집권한 독일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했다. 히틀러는 이 올림픽 기록영화를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여성감독에게 주문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올림피아>다. 신전의 성화체조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는 당시의 최고의 기술적 완성도와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스포츠 선수들의 육체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다보면 물 흐르는 듯한 편집에서 보여지는 종목별 경기들과 은연중에 드러나는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면서 버무려진다. 결국 이 작품은 스포츠를 이용해 독일 나찌즘을 교묘하게 선전했다는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930년대 소련에서는 경제 5개년 계획 실시를 앞두고 '돌격적인 노동으로, 돌격적인 탬포로 전속력을, 게으른 작업반원들을 혼내주자' 라는 포스터가 나붙었다. 작업을 잘하는 노동자는 '작업왕'에 선정되고 영웅칭호를 받았다. 어떤 작업왕은 평균적인 노동자보다 10배도 넘는 생산량을 기록했다.
뭐니뭐니해도 21세기의 사건은 자본에 의한 전 지구화이다. 1985년 당시 리복과 컨버스에 장악되어 있는 스포츠화 시장에 대항하기 위해 나이키는 '에어 조던'을 창조해 냈다. 제트기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마이클 조던은 슬램 덩크
를 힘있게 내리꽂은 후 이렇게 질문한다. "누가 인간을 날 수 없는 존재라 했는가?" 이처럼 자본이 조던을 강인한 인간, 초인적인 체공능력을 가진 농구선수로 묘사하면서 조던 브랜드는 1억3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나이키는 미국 아니 세계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상징적인 광고는 하늘을 나는 스포츠 스타와 공장에 장악되어 있는 노동자 대중이 점점 더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포츠에 대한 노동계급의 통제력의 상실
축구의 경우 초기에는 노동력을 반감시킨다는 편견 때문에 시합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놀이문화에 대한 파괴적인 열정은 영국 신흥부르주아들에 의해 시작된 축구를 노동계급의 대표적인 놀이로 흡수해버릴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19세기 이전 영국의 대중적 스포츠가 황소나 곰 학대 놀이, 투견, 쥐 죽이기, 맨주먹 권투경기, 폭력적인 축구 등 봉건적인 방식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의도하는 임노동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생활양식, 즉 합리적인 축구 규칙의 제정과 준수로 변화해갔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계급에 의해 근대축구가 주도되면서 개인기를 선호했던 엘리트 경기 방식보다는 팀워크를 강조하고 패스를 선호한 축구 전술이 발전했다. 1925년 이후에는 오프사이드 규칙이 완화되면서 수비의 허를 찌르는 긴 전진패스가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졌다.
1920년대까지 영국에서 노동계급 출신 선수는 동시에 직업을 가진 노동자이기도 했다. 고장의 자랑거리였던 노동자출신 선수들은 그 이후 축구의 프로화가 진행되면서 신분상승의 통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68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영웅인 '보비 찰튼'을 언론에서 '그라운드의 노동자'라 불렀지만 지금 오웬, 베컴과 같은 프로선수들은 이미 걸어다니는 기업이다.
스포츠 스타의 육체를 사회화하라!
축구는 지루한 노동과 오락 기회의 부족을 겪은 계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으며 성장했다. 영국축구의 인기는 세련된 개인주의 보다 함께 열광하며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개방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의 역사는 노동계급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높여왔다. TV, 광고 등의 미디어는 새로운 상품, 여가생활, 고급스포츠를 선보였지만 노동자계급의 젊은이들은 집 근처나 시내 호프집에서 놀며 집에서 축구 등 TV 보는 정도가 선택 가능한 놀이가 되어버렸다.
'테일러'라는 스포츠 사회학자는 훌리건의 발생을 '노동계급의 아들인 선수들을 축구가 제도화되고 프로화되면서 강탈당하게 되면서 노동자계급 팬들의 소외감의 표현, 더 나아가 자신들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주장하고 경기를 통제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노력'이라 주장한다.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승자인 각국 선수들의 높은 기량과 몸 동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예술적인 몸 동작은 계약금에 이리저리 팔려가고 부상위협에 시달리고 피파의 이윤추구에 놀아나기에는 너무도 멋있지 않은가?
그는 스포츠노동자로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여가생활과 육체운동능력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경기장은 이 세계의 축소판이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곧 다른 스포츠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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