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원의 영국보기] Golden Jubilee

1952년 조지 6세의 갑작스런 서거로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에 즉위한 뒤 50년이 지난 지금 영국은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6월 3일과 4일은 법정공휴일로 정해 4일간의 황금연휴를 맞아 영국 전역에 걸쳐 크고 작은 행사가 다채롭게 벌어진다. 1일에는 버킹엄궁 정원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고, 3일 오전에는 윈저성에서 열리는 퍼레이드에 여왕이 참석하고 오후 1시에는 전국적으로 거리 축제가 시작된다. 3일 밤에는 축하행사를 이어주는 햇불 2,000개가 점화된다. 이외 각종 가두연회, 전시회, 가든파티 등이 열린다.

영국 역사상 즉위 50주년을 채운 왕은 그리 많지 않다. 헨리 3세, 에드워드 3세, 빅토리아 여왕(reign 1837~1901) 정도이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은 즉위 60주년을 기념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은 최초의 영국 군주로 기록된다.

그러면 골든 주빌리에 대한 영국인의 반응은 어떠한가? 영국의 진보지 가디안은 25년전의 실버 주빌리(1977)보다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고, 전체적으로 그리 밝은 축제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한다.

더 타임스는 특집 기사를 통해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와 엘리자베스 2세의 '골든 주빌리' 행사를 비교하며 전세계의 반 이상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에서 지금은 2류 열강으로 주저앉은 영국의 지위 변화에 아쉬움을 표했다.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식은 2류열강에 걸맞은 건전한 축제일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번 주빌리는 월드컵과 맞물려 있어 일반 국민들은 월드컵 경기에 더 관심이 많다. 법정 공휴일이라서 일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부터 펍(PUB)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월드컵 축구 특히 영국 경기에 마음놓고 응원을 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만큼은 펍은 아침부터 술을 팔 수 있다. 시차관계로 한국이나 일본에서 하는 경기는 영국에서는 위성중계로 오전에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영국은 입헌군주제이고 여왕은 영국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예전의 식민지 16개국의 국가원수, 영연방의 최고 지도자도 겸한다. 그러면 여왕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 여왕은 정치에는 중립을 취하지만 장관들을 지도하거나 경고를 줄 수 있고, 특별한 경우에는 왕으로서의 권력(Royal Prerogative)을 행사할 수도 있다. 국회해산을 거부할 수 있고 법령에 서명을 하고 조약을 인준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권한이 있다. 군주는 "단순히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걸"로 대개 알고 있지만 의외로 상당한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귀족임명이나 훈장수여도 여왕이 하는 권한이다. 법령도 비록 하원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여왕이 서명하지 않으면 정식 법령으로 효력이 없다.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명을 연기함으로서 정부를 견제하기도 한다. 정부가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에 실시한다 하더라도 여왕이 거부하고 내각을 다시 구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여왕의 권한 보다는 영국왕실에 관한 이야기, 특히 왕실의 존속에 관한 것이 아닌가한다. 영국 가디언 신문과 여론조사 단체인 ICM이 작년 4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의 34%가 왕실존속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8-24세의 젊은층의 48%가 군주제 대신 공화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응답자의 51%는 왕실이 없어지는 것이 영국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군주제에 대한 반감은 84년에 13%, 200년 6월에 27%로 오르는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 왜 영국인들은 왕실에 대한 반감이나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가? 주 이유는 왕실 특히 여왕의 자녀들(3남1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한 거부감이다. 찰스 황세자는 다이아나와 결혼했으면서도 결혼전 애인이던 유부녀 카밀라 파커(Camila Parker)를 궁전에 불러 자주 동침하는 등 다이애나를 속상하게 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서민출신의 며느리를 구박한 못된 시어머니로 인식이 되었다. 다이아나는 영국인들로부터 여왕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려왔고, 사망한 지금도 여왕보다 영국에 더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다이아나는 왕성한 자선사업 활동으로 서민들과 친숙해졌고 영국을 대표한 훌륭한 외교 사절이었으며, 아프리카 빈민을 위한 구제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97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ITV의 유명한 흑인 아나운서인 트레버 맥도날드(Trevor MacDonald)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이애나가 사생활 특히 부군인 찰스 황세자의 외도, 시어머니인 여왕의 구박 등 왕실생활의 어려움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고백하여 여론의 동정을 받았다. 그 인터뷰가 있은지 얼마 안되어 발생한 교통사고는 음모론이 나도는 등 의심할 부분이 많았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여왕의 딸인 앤공주는 올림픽 경마선수로 유명한 남편 필립대위와 이혼하고 현재 재혼하여 살고 있다. 해군 장교이던 차남 앤드류도 이혼해 현재 혼자 살고 있다.

막내아들인 에드워드는 한때 연극에 빠져 삼류배우로 활동하다 얼마전 마케팅 회사를 차려 운영하던 소피와 결혼했는데 소피왕자비가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토니 블레어등 정치인들과 왕실을 폄하하는 이른바 '소피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영국내에서 군주제 개혁 논쟁이 재연된바 있다. 여왕은 찰스황세자와 카밀라간의 관계를 인정하고는 있으나 만일 찰스황세자가 카밀라와 재혼하면 카밀라는 왕비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聖公會, The Anglican Domain)는 찰스와 카밀라와의 재혼을 반대하고 있다. 영국 국교의 수장은 여왕이다. 여왕의 건강은 현재 양호한 상태여서 영국을 통치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찰스황세자의 즉위는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이고 재혼문제가 여전히 골치거리로 남아있다. 찰스는 올해 55세이다. 찰스의 장남인 윌리엄 왕자가 왕위에 즉위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현재 윌리엄 왕자는 현재 스코틀란드의 세인트 안드류스 대학(St. Andrews University)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작년 연말 영국 주간지 옵서버와 인터넷 여론조사기관 YouGov가 실시한 조사결과 응답자 3명중 1명 이상이 왕실에 지급되는 연간 890만 파운드(190억원)의 지원금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대답했으며, 지원금 액수를 500만 파운드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응답자는 57%에 달했다. 이와 함께 82%에 달하는 압도적인 응답자들이 군주도 상속세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여왕은 개인 재산이 엄청나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계 제1위의 부자로 알려져 있다. 수개월전 여왕모후(Queen's Mother)가 사망한 후 남긴 재산도 상당한데도 여왕은 상속세를 내지 않아 일부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영국인의 왕실에 대한 반감이 점차 증가하더라도 여전히 왕실은 상당기간 동안 존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왕이 영국정치와 영국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비록 예전보다는 영향력이 줄었다고 하더라도 영국의 귀족과 고위 정치인들은 정국의 안정을 위해 여왕을 중심으로 영국을 통치하려는 보수적인 멘탈리티를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왕실은 국민과 거리감을 두지말고 일반국민과 폭넓은 접촉을 통하여 서민 생활을 이해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주어야 할 것이고, 과감한 왕실개혁을 통해 국고에 의존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 제일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여왕의 개인 재산으로 왕실살림을 꾸려나가야 국민의 반감을 사지 않을 것이다. 영국왕실이 일반 국민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도덕적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인터넷신문 대자보 논설위원 배정원 [wales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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