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편집위원 sang21@hani.co.kr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5월 26, 27일 발표한 6.13 지방선거 공약들을 살펴보면 ‘중앙자치’란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극히 일부를 빼곤 총선이나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공약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완전히 무관한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공약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민영화(사기업화), 국정홍보처 폐지, 순수 미디어렙(방송광고대행사)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 전환, 교원 정년제 단계적 폐지, 교육재정 국내총생산의 7%로 확대, 일정 규모 이상의 남북교류 사업에 대해선 반드시 국회 동의, 단계적 법인세율 인하와 기업의 준조세 부담 획기적 완화, 미성년자·신용불량자에 대한 카드 발급 자제, 고교평준화 페지, 국가보안법 유지, 안보태세 강화, 전국민 1인연금제 도입 등 4대보험 적용대상 확대, 민간보험 도입, 국회 감사요구권 부여, 국회 인사청문회제 확대 등.
민주당도 뒤지지 않는다. 교육재정 국내총생산의 6%로 확대, 노사정위원회 기능 강화, 주5일 근무제 노사정 합의에 따라 도입, 이산가족 전면적 생사 확인 및 서신 교환, 1인2표 비례대표제 재추진, 자주적 강군 육성, 3% 물가안정 과 5∼6%대의 경제성장 유지, 도하개발어젠다 협상 적극 대응, 동북아 중심국가 추진, 해양수산강국 건설, 5백만호 주택건설, 기초과학연구진흥 관련 예산 연구개발(R&D) 예산의 25%로 확대, 5대 암에 대한 국가관리사업 시행 등이 그렇다. 중앙당 차원의 공약과 6개 권역별 공약을 구분하는 체계를 갖췄다는 점이 한나라당보다 그나마 나은 편이다.
언론 보도를 보자. <조선일보>는 5월 28일치 4면의 ‘6.13 지방선거 공약 무엇이 담겼을까’란 기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약을 소개하고 있다. “‘비리 단절’에 ‘민생 우선’ 맞불”이란 제목 아래 지방자치와 무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인 내용을 도표로 만들어 실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공약에 대해선 “그동안 대여 공세를 펼쳐왔던 정치 쟁점과 각 사회단체가 제기했던 민원사항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며 “그만큼 눈에 띄는 ‘새 공약’이 많이 담겨 있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공약은 “최근 제기된 각종 정치 쟁점에 대해선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민생 위주로 공약이 짜여진 점도 한나라당과 대조를 이룬다”고 썼다.
<중앙일보>는 같은날 3면에서 ‘한나라·민주 수도권 공약전’이란 제목 아래 수도권 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공약 관련 내용은 도표에 요약된 공약들을 빼곤 “후보들은 이날 일제히 유권자를 겨냥한 ‘선물 보따리’도 풀었다. 그러나 지방행정과 거리가 먼 정치성 공약이 많아 대선을 겨냥한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책적 차이도 크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구절이 고작이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정책연구실은 5월 29일 분석보고서를 통해 “경마중계식 보도의 판세분석용으로 공약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지방자치의 취지에 걸맞는 공약 검증 태도를 보인 것은 <한겨레>이다. 같은날 1면에 ‘지방선거 공약 재탕·졸속’이란 제목으로 각 당이 약속하는 행정권한의 지방 이양의 경우 이미 제도가 있음에도 중앙부처의 이기주의 등으로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꼬집었고, 3면에서 원외 진보정당의 공약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분명히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대통령선거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보수정당이나 언론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통령선거의 축소판’일 뿐이다.
지역의 일을 주민들이 참여해 풀어간다는 지방자치의 취지에 비춰 ‘이게 과연 지방선거 공약이냐’는 적극적인 언론의 문제제기가 실종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지역의 실업·교육·복지 문제 해결을 위한 지방재정 확충 방안 등에 대한 심층 비교보도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은 지방 재정 확충을 위한 지방자치법·지방교부세법·지방재정법 등의 개정안은 물론, 주민소환제 및 주민투표제, 자치단체 예산의 우선순위를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참여예산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 이는 보수정당·언론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 및 의지의 부재를 보여주는 생생한 폭로이다.
[ 90호] 6.3 ~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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