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은의 노동운동과 노래]불나비

최도은(노동예술단 선언)

아침 이른 시간 한 동지가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 테야∼" '불나비'의 한 대목을 부르며 노조 사무실에 들어옵니다. "저… 동지, '불나비' 노래 어디가 좋으세요?" "노래가 시원하잖아용∼. 속이 확 풀린 다니까요" "아 네…" "그럼 '불나비'의 가수인 제가 이 노래에 대해서 얘길 좀 해 드릴까요."
속이 확 풀리는 노동자의 노래 불나비는 지난 30년 간 노동자의 투쟁에 함께 한 노래입니다. 노래가 불려진 진원지는 70년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노조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한 청계피복 선배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입니다.
누가 만든 노래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73∼74년부터 불렀다 합니다(양승조 청피 전 지부장님의 구술). 70년 11월13일 전태일 동지의 분신은 사회 운동의 중심이 노동자 생존권에 집중하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 노동청장인 이승택은 영세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주일 유급휴가 실시, 임금인상, 8시간 노동제 실시(잔업수당 확보), 정기 건강진단 실시, 생리휴가 실시, 이중다락방 철폐, 노조결성지원 등 8개 조항을 열사의 빈소에서 약속합니다. 그러나 12월 사용주들은 평화시장 옥상에 설치한 플랭카드 철거를 강행하면서부터 다시 본색을 드러냅니다. 이에 맞서 이소선 어머니와 지부임원들은 집단분신을 각오하고 투쟁하였으나 전원 경찰에 연행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은 '노동교실' 폐쇄입니다. '노동교실'은 민주노조 활동가들 간의 만남의 장으로 노동자 의식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습니다. 73년 사용자들은 '노동교실'을 '시장상가 새마을 근로자교실'로 이름을 바꾸고 '새마을 정신'을 교육시키는 공간으로 만듭니다. 77년 9월9일 구속된 이소선 어머니 석방과 노동교실 사수를 위한 농성투쟁 등을 전개하면서 청피 선배들은 유신 박정희 정권 내내 폭압의 한가운데에서 투쟁하였습니다. 80년 4월 임금인상으로 잠시의 승리를 얻지만 곧이어 등장한 전두환 정권에 의해 81년 1월 청피노조는 해산됩니다. 해산이후 선배들은 비합법적인 방식을 통해서 노조운동을 전개합니다. 재취업 운동을 통해 현장으로 들어간 노동자들은 85년 구로 연대투쟁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84년부터 전개한 청피노조 합법성쟁취 투쟁은 노동자·학생 연대투쟁의 전형을 만들어 가면서 정권 자체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고 싸웠습니다. 청피노조는 88년 5월 마침내 합법노조를 쟁취하게 됩니다. 아마도 청피 선배들의 불굴의 투쟁 의지는 노동자답게 싸우다간 전태일 열사의 정신에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평등·평화·자유' 세상을 위해 맞서 싸우는 에너지로서 '불나비'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불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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