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의 범죄로서의 '희망 만들기'

채만수(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평소 언필칭 '민주언론' 혹은 '진보언론'이나 진보적 지식인을 자임해 왔던 자들 역시 "평화와 상생의 축제"니 "세계인의 축제"니 하면서, 대자본의 음모의 소산으로서의 월드컵의 광기가 가히 온 천하를 휩쓸게 하는 데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십 사오 년 전 올림픽 경기를 즈음한 전두환·노태우 정권과 대자본의 '광기 만들기'를 "당신들의 축제"로 일축했던 그들 '민주인사들' 혹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명백한 태도변화. 이미 그 자체 '부르주아 제도 언론'으로, 그것도 거대한 그것으로 성장해 버린 소위 '민주' 혹은 '진보' 언론의 경우, 두말할 나위 없이 이는 대자본의 광고에 명줄이 붙잡혀 있는 탓이고, 개별적인 '민주인사'나 '진보적 지식인들'의 경우 필시 '(군사)독재에서 민주로'라는 정세인식의 천박성 탓이겠기에 딱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위는 역시 범죄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범죄적 움직임에 과도하게 마음을 쓰지는 말자. 월드컵의 광기는 그것이 아무리 대중의 영혼을 사로잡아도 어차피 일과성일 것일지니.
그러나 대통령 아들들을 비롯한 권력 핵심과 그 주변의 추잡하고도 대규모적인 경제범죄, 그리고 이른바 '노풍' 등에 대한 보도를 둘러싸고 언필칭 '민주언론' 혹은 '진보언론'이 벌이는 범죄행위는 사정이 다르다. 주지하듯이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불리고 있는 이들 경제범죄에 대한 이들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그들이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는 '수구언론'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거니와, '노풍'과 관련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민주' 혹은 '진보' 이미지를 자산으로 또다시 범죄적 '희망 만들기'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아들들을 비롯한 권력 핵심과 그 주변의 거대한 부정부패, 경제적 범죄. 게다가 그것을 은폐하고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권력 핵심이 벌인 거짓말, 해외도피, 밀항 사주 등등.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도 -- 자신과 주변이 벌인 이른바 '세풍'·'총풍' 등등은 없었던 일이었던 듯, 그리고 지금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아무튼 -- "어느 놈의 나라가?"라고 개탄해 마지않았다지만, 정말 개탄해 마지못할 일이고, 당연히 엄중히 처벌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언론'의 고발적 보도와 개탄, 그리고 엄중한 처벌 요구는, 그리고 '수구언론'의 그것도, 그 자체로서는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권력과 얽힌 부정부패, 경제적 범죄가 어디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이고, 우연적인 사건인가? 그리고 고발이나 처벌, 정권교체, 세대교체 등등을 통해서 예방하고 일소할 수 있는 문제인가?
명백히 아니다. 널리 세계를 바라볼 것도 없이 50년 남짓의 우리 사회의 짧은 역사에서만 보더라도, 그리고 굳이 복잡한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부르주아 권력의 부정부패, 그 권력과 자본의 범죄적 유착은 부르주아 정치의, 부르주아 관료체제의, 한마디로 부르주아 사회·지배체제의 필수적 속성·구성요소임을 입증하고도 남을 충분한 경험을 해오지 않았던가?
'진보언론'의 경우, 백보 양보해서, 군사독재 하에서나 그와 태생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던 김영삼 정권 시절에야 '민주화된 사회'에서의 '깨끗하고 투명함'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고 변명할 수 있고, 그리하여 부정부패 등이 부르주아 사회·지배체제의 필수적 속성이자 부분임을 일반화하지 못했음을 변명할 수 있다 하자. 하지만, 사실상 '민주정부'라는 전제 하에 자신들이 그토록 지지·지원해온 '국민의 정부'에서조차(?) 벌어진 이 추악하게 일그러진 모습에, 진정 '진보언론'이라는 그들은 근본적인 자기반성과 함께 부정부패 등이 부르주아 사회·지배체제의 필수적 속성·부분임을 인정하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그렇게 하는 대신에 수구언론과 다를 바 없는 보도 태도와 내용으로 범죄를 지탄·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데에 머물고 있다. 마치 문제가 개인적이고 우연적이며 형사적 처벌을 통해서 다스리고 예방·일소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다름 아니라, '수구언론'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지배체제의 속성·본질의 은폐라는 범죄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범죄행위는 다른 한편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름 아니라 "'노풍' 띄우기"라는 범죄로서의 '희망 만들기'이다.
'수구언론들'은 정권의 부정부패를 규탄·고발하면서 그 영장선상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더 적극적·노골적으로 보장할 파쇼권력으로의 정권교체가 문제해결의 해법인 양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진보언론들'은 마치 김대중 정권에서의 부정부패 따로, '진보적'이고 '서민적'인 노무현 정권 따로인 양 양자를 분리하면서 노무현 정권으로의 이행이 해법인 양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차기 권력을 둘러싸고, 즉 잉여가치의 부르주아 정파간 분배를 둘러싸고 부르주아 정치세력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 선거국면에서의 '수구언론'과 '진보언론'간의 보도 태도·내용의 차이다.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무언가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없음은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별로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지만 설령 '노풍'이 태풍처럼 불어 노무현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불과 삼사 년 후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풍경과 사실상 똑같은 풍경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 곧 그 정권 하에서도 권력의 부정부패는 필연적이라는 것 역시 불문가지다. '진보언론' 역시 필시 이를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그것을 밝히고 명확히 하는 대신에 그들은 거꾸로 "'노풍' 띄우기"라는 기만적인 희망 만들기에 열심이다. 그들의 계급적 처지에서도 부르주아 사회·지배체제의 속성·본질은 은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풍'을 선도하고 그것에서 무언가 민중적인 활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자체, 즉 그것이 무언가 변화와 '진보'를 추구하는 민중적인 에너지에 의한 것임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의 김대중에 대한 이른바 '비판적 지지'--대부분 사실은 '꼴지'(구제불능의 꼴통적 지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부르주아 지배·사회체제로서의 우리 사회의 본질과 운동법칙이나 구체적 정세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의욕·열정·인식에 기초한 것이고 부르주아적 정치선동에 휘둘려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민중적 활로로서의 현실적 전망을 결코 가질 수 없고, 이는 이미 김대중 정권의 실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시쳇말로 하자면, 이미 "관을 본 것이다." 그런데도 "한겨레"를 위시한 '진보언론들'은 "'노풍' 띄우기"를 통해서 대중을 오도하고 있고, 이는
명백한 정치적 범죄행위이다.
한데, 이러한 범죄행위는 부르주아적 혹은 소부르주아적 언론에 의해서만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민중 내부에서도, 주지하는 것처럼,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사회적 의제(agenda), 독자적 정치를 '진보정치'라는 이름으로 부르주아적 의제, 부르주아적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실천이 집요하게 추구되고 있다. 그러한 실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집행자로까지 타락해버린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실천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의제, 독자적 정치를 확고히 해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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